스웨덴의 16세 소녀 그레타 툰베리를 실은 요트 ‘말리지아 2호’가 지난 14일, 영국 해안도시 플리머스에서 뉴욕을 향해 돛을 올렸다. 다음 달 23일에 열리는 ‘유엔기후행동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툰베리 일행을 태운 말리지아 2호에는 태양광 발전을 위한 패널과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수중 터빈이 장착돼 있다고 한다. 툰베리는 이산화탄소 배출을 최소화하기 위해 비행기 대신에 이 같은 이동 수단을 선택한 것이다.
툰베리는 지난해 8월 스웨덴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후 위기 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1인 시위를 벌였다. 툰베리가 금요일에 학교 가는 일 대신에 시위를 선택한 것은 스웨덴처럼 기후변화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부유한 나라 정부에 항의하고 대책을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그의 용기 있는 행동은 스웨덴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연대와 실천을 끌어내고 있다.
툰베리가 우리에게 던진 질문
툰베리는 몇 차례의 연설을 통해 인류사회에 경종을 울렸다. 진솔하고 명료한 그의 연설은 ‘기후변화’라는 거대한 재앙을 애써 무시하고 외면해온 주류사회뿐만 아니라 지금의 사태를 있게 한 기성세대들에게 커다란 자성의 울림을 주었다. 툰베리가 전하는 메시지에 못마땅한 반응을 보인 정치인이나 기득권자들이 없진 않았지만, 조금이라도 생각과 감정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툰베리의 이야기를 듣고 기후변화가 가져올 인류의 미래에 대해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툰베리는 지난해 11월 스톡홀름에서 있었던 테드 강연(TED Talk)에서 자신이 어떻게 기후변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그리고 왜 이렇게 직접적인 행동에 나서게 되었는지를 분명하게 설명했다. 툰베리는 여덟 살 쯤에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라는 말을 처음 알게 되었으며 이러한 현상은 우리 자신의 생활방식에서 비롯된 것임을 배웠다고 한다. 그런데 인류 생존을 위협할 정도로 심각한 결과를 가져오는 기후변화에 대해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거나 언급조차 하지 않는 것을 툰베리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마치 세계대전이 진행 중인데도 아무도 전쟁에 관해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처럼” 무관심하더라는 것이다.
“화석연료를 태우는 것이 그렇게 나쁜 일이라면, 그래서 우리의 생존 자체를 위협한다면, 우리가 어떻게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계속 살아갈 수 있나요? 왜 아무런 규제가 없는 건가요? 왜 화석연료 사용을 불법화하지 않는 거죠?” 툰베리는 이런 의문을 갖게 되었고 그 영향 때문에 열한 살이 되던 해에 우울증과 선택적함묵증, 그리고 아스퍼거 증후군 강박 장애라는 진단을 받게 된다. “모든 사람들이 기후변화는 실존적 위협이고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말하고 있어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전과 같이 행동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걸 이해하지 못하겠어요. 이산화탄소 배출이 중단되어야 한다면, 우리는 이산화탄소 배출을 멈춰야 합니다.”(《녹색평론》 167호, 그레타 툰베리, “행동을 해야 희망이 찾아옵니다” 번역 참조)
툰베리가 갖게 된 의문은 실은 너무나 명료하다. 기후변화가 인류생존에 그토록 중대한 문제라면 왜 우리는 기후변화를 가져오는 우리의 잘못된 삶의 방식을 고치려 하지 않는가. 그가 말한 바대로, 이산화탄소 배출이 중단되어야 한다면 이산화탄소 배출을 멈춰야 하는 게 당연하다. 기후변화가 지구생태계와 인류의 공멸을 가져올 재앙의 근원이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를 막아야 하는 게 상식적인 생각이다. 이토록 분명한 진실 앞에서 스스로 정상이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보이는 이중적이고 모순된 태도는, 장애 병력을 지닌 툰베리에게는 오히려 비정상적인 모습으로 비쳤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툰베리가 “자폐성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흑 아니면 백입니다.”라고 말한 것은 우리에게 진실을 분명히 마주하라는 준엄한 경고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말대로 “생존이 걸려 있는 문제에서는 중간지대란 없”기 때문이다.
기후변화 문제를 지금처럼 방치하고서도 우리나 우리 후손의 미래를 논할 수 있을까? 지금 우리가 만들어내고 있는 재앙의 세계에서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야 할 툰베리와 그의 또래들이, 어떤 미래를 준비하고 계획할 수 있을까? 어떤 미래를 상상하고 꿈꿀 수 있겠는가. 툰베리에게 학교를 가라고, 학교에 가서 기후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기후과학자가 되라고 충고하는 사람들에게 그가 던진 반문은 정말로 의미심장하다. “왜 제가 더 이상 있지도 않을 미래를 위해서 공부를 해야 합니까? 아무도 그 미래를 구하기 위해서 아무런 일도 하고 있지 않은데도요?”, “학교에서 배우는 가장 훌륭한 과학이 알려주는 가장 중요한 사실들이 우리의 정치가들과 우리 사회에는 아무 의미가 없는데, 학교에서 지식을 배우는 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희망보다 더 필요한 행동
며칠 전 강연 요청을 받고 간 어느 자리에서, 그레타 툰베리 이야기를 함께 나누었다. 강연이 끝나고 난 뒤, 그 자리에 모인 분들은 한결같이 툰베리의 이야기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내게 말했다. 나는 무엇이 그토록 여러분의 마음을 움직이더냐고 되물었다. 그러자 어떤 분은 진실은 단순하고 명료한 데서 오는데 툰베리의 이야기가 그렇다고 말했고, 또 다른 분은 “희망보다 더 필요한 것은 행동”이라는 툰베리의 이야기가 너무나 가슴에 맺힌다고 했다.
기후변화와 같은 생태적 재앙에 사람들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거나 심지어는 무관심한 이유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태를 자신과는 전혀 관계없는 일처럼 생각하기 때문이다. 북극의 얼음이 녹아내리는 것을 북극곰의 비극쯤으로만 여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금 당장 내가 먹고사는 것과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진행된다면 이번 세기말에 인류가 생존하기 어렵다는데도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 별일 없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기후변화의 가공할 만한 위협을 알면서도 개인의 무력함을 탓하며 결국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삶의 방식을 취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공멸의 위기보다 편의와 안락이 현실에서는 사람들에게 훨씬 더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어려운 일이다. 안다는 것을 행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가 이런 고민을 하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기후변화와 위기에 대한 강력한 경고가 나온 것이 최근의 일은 아니다.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럼에도 우리는 결과적으로 그동안 기후변화와 위기를 근본적으로 막아내기는커녕 훨씬 더 가속화시켜 왔던 게 사실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툰베리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쉽고 간단하다. 명백한 재앙 앞에서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것은 재앙을 막아내는 일이다. 그 중간지대 혹은 회색지대를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다. 희망이 찾아오기를 바라지 말고 지금 당장 행동하라는 것이 툰베리의 간절한 호소다. 그가 말한 것처럼 우리가 지금 우리에게 남아 있는 가느다란 희망을 위해서조차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미래에 사는 사람들이 지금의 우리를 향해 “왜 여러분이 아직 행동할 시간이 있는데도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지 물을 것”이다.
오는 9월에는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행동이 전 세계 곳곳에서 펼쳐질 예정이다. 그 무렵 우리나라에서도 기후변화 대응 행동 조직이 결성되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고 한다. 이번 가을학기에 나는 우리학교의 학생, 선생님들과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행동’을 함께 도모할 작정이다. 개인적 윤리와 실천의 문제를 넘어서 어떻게 하면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고 기후변화를 멈추게 할 것인지를 함께 생각을 나누고 행동하고자 한다. 지금쯤 요트에 몸을 싣고 대서양을 가로질러 나가고 있을 그레타 툰베리를 응원함과 동시에 그의 진심어린 호소에 응답해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