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선우(映畫選祐)’는 손선우 전 영남일보 기자가 읽은 영화 속 세상 이야기입니다. 스포일러보다는 영화 속 이야기를 뽑아내서 독자들의 영화 감상에 도움을 주고자 합니다.]
올 초 개봉한 <빌리어네어 보이즈클럽(Billionaire Boys Club)>은 1984년 미국 남부 캘리포니아에서 벌어진 금융사기 사건을 소재로 만든 영화다. 영화는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뒤 영화계에서 사실상 퇴출된 케빈 스페이시의 출연작으로 알려지면서 흥행 부진을 면치 못했다.
30여 년 전 범죄 실화를 다룬 <빌리어네어 보이즈클럽>을 보면 묘한 기시감이 든다. 수십 년이 지나도 유사한 범죄들이 판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조 헌트(안셀 엘고트)와 딘 카니(테런 에저튼)는 조가 만든 사교클럽 ‘BBC’을 통해 다단계 금융사기 범죄를 저지른다. 수법은 1920년대 찰스 폰지(Charles Ponzi)가 벌인 사기 행각에서 유래한 ‘폰지 사기(Ponzi Scheme)’다. 특징은 투자금을 돌려 실제로 나지 않은 수익을 난 것처럼 속여 투자자를 끌어모으고 투자금을 가로챈다. 짧은 시간 내에 투자금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지만, 투자자들이 투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하면 사업은 순식간에 몰락하게 된다.
조와 딘은 비버리힐스의 재벌 2세 친구들에게 ‘금 투자’를 유도하는 설명회를 열고, 소액의 투자금을 지원받는다. 그런데 조의 예상과 달리 금값이 폭락하면서 투자금은 반토막 난다. 결국 이들은 투자자들에게 절반이 남은 투자금을 수익금이라고 속인다. 3주 만에 50%의 수익률을 거둔 것으로 안 친구들은 더 많은 금액을 투자하고, 급기야 가족까지 투자에 끌어들인다. 하지만 사기 행각은 길지 않았다. 투자자들이 투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하면서 파산하게 된다.
희대의 사기꾼 조희팔은 폰지 사기로 약 4조 원을 가로챘다. 2004년부터 2008년까지 의료기기 대여업으로 30~40%의 고수익을 보장한다고 투자자들을 끌어모았다. 새로운 회원이 가입하면 그 가입비로 먼저 가입한 사람들에게 이자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운영했다. 이렇게 모은 투자자만 3만 명에 달했다. 조희팔은 사기 행각이 드러나자 중국으로 밀항하면서 자취를 감췄다.
조와 딘은 투자금으로 호화생활을 누린다. 고가의 차량을 사거나, 큰돈을 들인 파티를 매일같이 연다. 투자금으로 사업을 하거나 재투자를 하지는 않는다.
이후 업계 큰손인 론 레빈(케빈 스페이시)까지 엮이면서 둘의 사기극은 점점 규모가 커지고 감당할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닫게 된다. 사치와 호사에 물든 조와 딘은 더욱 대담하게 판을 벌려 투자자들을 속일 궁리를 하고 사업 실패의 책임을 또 다른 사기범죄자 론 레빈의 탓으로 돌린다.
하지만 창립 1년 만에 BBC의 실체가 페이퍼 컴퍼니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BBC는 실제 인물인 조셉 헨리 헌트가 자주 가던 시카고의 레스토랑 ‘봄베이 바이시클 클럽’의 머리 글자였다.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을 주식에 투자해 400억 원대 재산을 모은 것으로 알려진 ‘청년 버핏’ 박철상 역시 사기 범죄자다. 고수익을 내준다며 지인들에게 주식 투자금을 받아 기부금과 생활비로 써버린 것이 드러나 법정 구속됐다. 그는 처음 모교의 발전기금 1억 원을 약정 기부하기로 한 게 언론에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탔다. 1천500만 원을 주식에 투자해 10년 만에 400억 원의 수익을 거둬 ‘천재 투자가’라는 별명을 얻었고, 투자금을 장학금으로 꾸준히 기부하면서 ‘청년 기부왕’이라는 명예도 누렸다.
하지만 그의 거짓말은 또 다른 주식 투자자의 의혹 제기로 들통이 났다. 투자 수익금이 과장됐다는 지적에 실체가 드러난 것이다. 그는 연 30%의 고수익을 약속하고 주식 투자자들에게 18억여 원을 받은 뒤 돌려주지 않았다. 받은 돈을 주식 등에 투자하지 않고 기부나 장학사업 등에 임의 사용했다. 본인에 대한 과장된 언론 보도를 활용해 적극적으로 피해자를 속였고, 채무 수습을 위해 투자금을 돌려막았다. 젊은 영웅의 신화는 무너진 게 아니라 애초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진짜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찰스 폰지와 조셉 헨리 헌트, 조희팔, 박철상의 사기 범행이 가능했던 건, 그들의 지인을 자처하는 이들이 범행에 가담하거나, 적극적으로 동조했기 때문이다. 조금만 이성적이었다면 그들이 번 돈이 비정상적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의심하지 않았다. 친분이 있다는 이유로, 모교 동문이라는 이유로, 그들의 사치와 호사를 보니 그럴듯하다는 이유로, 급전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선행을 한다는 이유로, 그들의 사기 행각을 신화로 만들었다.
더 허망한 건 눈을 감고 귀를 닫은 집단의식 속에 누구 하나 사과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성과 성찰은 하지 않고 자신도 피해자라는 변(辯)을 늘어놓는다. 마음 한편이 씁쓸해지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