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대의료원 본관 13층에서 보안 요원이 ‘관계자외 출입금지’라고 적힌 문을 열었다. 넓은 옥상 위로 작은 옥상이 하나 더 나왔다. 박문진(58, 현 보건의료노조 지도위원), 송영숙(42, 현 보건의료노조 영남대의료원지부 부지부장) 해고노동자가 붉은 현수막을 걷고 나와 기자를 맡았다. 19일, 까만 철제 간이 계단으로 이어진 70m 높이 옥상에서 50일째 고공농성 중인 두 해고노동자를 만났다.
검은색 차광막과 붉은 현수막 아래 농성장은 겨우 허리를 펼 수 있는 높이였다. 박문진 지도위원의 선배가 르완다에서 보내왔다는 알록달록 천이 바람에 들썩였다. 천이 들썩일 때마다 70m 아래가 보였다. 아찔했다. 난간은 겨우 무릎 아래까지 온다. 붙잡을 것이라고는 천막을 고정해 놓은 노끈뿐이다.
50일 동안 태풍과 폭염을 견딘 농성장은 청테이프로 도배됐다. 두 해고노동자가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농성장 보수다.
박문진 : 저희가 50일 됐잖아요. 그런데 책 한 권을 못 읽었어요. 비 오면 보수하고, 말리고, 어제도 현수막 설치한다고 바빴어요. 이게 다 뒤집어져요. 바람이 정신을 혼미하게 만듭니다.
송영숙 : 오늘은 정말 (바람이) 양호한 거예요. 여기서 매일매일 하는 게 농성장 보수에요.
환풍구와 정화조에서 나오는 소음과 악취는 날씨와 상관없이 지속됐다. 화장실 오수, 의료폐기물에서 나오는 악취, 가스 냄새가 두통을 불러일으켰다. 농성이 끝나면 호흡기내과부터 가겠다고 농담을 주고받았다. 바로 내려다보이는 호흡기질환센터에 오가는 환자를 보며 쾌유 기도를 올리기도 한다.
이틀 전부터 농성장에 수도를 연결했다. 수압이 낮아 마음껏 씻을 수는 없다. 온도계는 49.9도를 찍고는 먹통이 됐다.
박 : 어제도 오전 11시 52분에 49.6도를 찍었어요. 둘이서 화난 사람처럼 개 혓바닥 빼놓은 모습으로 있어요. 완전히 무장해제 돼요. 정말 저 계단으로 내려가야 하나 싶을 정도로.
송 : 온도계가 시커멓게 되더라구요. 지금은 저 양동이 두 동이만 봐도 좋아요.
오후 7시 투쟁 문화제가 끝나면 두 해고노동자의 하루도 끝난다. 전기가 없어 휴대폰 불빛으로 밤을 버틴다. 저녁 뉴스에 농성 소식이 나오는지 챙겨보는 것도 마무리 일과다. 이들은 50일 전 깜깜한 새벽 농성장에 도착했을 때, 마치 달에 착륙한 것 같았다고 한다.
박 : 여자들은 분만한 이야기, 남자들은 군대 이야기 평생 한다고 하잖아요. 저는 그날 새벽에 혁명이라도 하는 거처럼 올라왔어요. 이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보가 샐까봐 가장 우려됐어요. 무사히 옥상에 도착했을 때 정말 달나라에 착륙한 거 같은 전율이 있었어요.
고공농성을 시작한 후, 노사는 ‘제3자 사적조정’을 통해 문제를 풀기로 했다. 하지만 조정위원 선임부터 노사가 이견을 보여 논의에 진척이 없다. 최근 의료원은 창조컨설팅과 자문 계약을 맺은 사실을 인정했다. 창조컨설팅과 공모한 노조 파괴 의혹을 푸는 것이 이들이 고공농성을 시작한 이유다.
박 : 의료원장이 창조컨설팅과 자문 계약 한 건 맞지만, 노조 탄압은 안 했다고 했잖아요. ‘술은 마셨는데 음주는 아니다’는 말이에요. 당시에 간호사 7~80%가 조합원이었는데, 팀장들이 수첩에 적으면서 다녔어요. 노동조합 탈퇴 안 해서 남아 있으면 교수가 전화 오거나 만난다던가, 인수인계도 안 하고 이런 식으로 굉장히 악랄했어요.
송 : 이게 다 연결고리에요. 기획된 노조 탄압으로 해고자도 발생했고, 노동조합도 많이 무너졌고. 어느 하나를 콕 집어서 이야기할 수 없어요. 제일 중요한 요구사항이 제대로 이루어져야죠.
박 : 저희가 해고자 문제 때문에 올라온 건 아니에요. 물론 복직되면 개인의 명예, 조직의 명예가 회복돼요. 하지만 노조 파괴에 대한 단죄 없이 복직된다면, 그건 절반의 승리도 아니라고 봐요.
이날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정의당 여영국 의원은 김태년 의료원장과 만나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여 의원은 고용노동부가 제안한 중재를 믿고 따를 것을 요청했다.
여 의원은 “사적중재를 받아들이기로 했으면 믿고 따라야 한다. 노사 양측이 원하는 조정위원을 선임하는 것은 결국 노사 대립의 연장선이다”며 “정부 기관에서 나서면 한쪽만 만족하는 안은 나오지 않는다. 국회 교육위원회에서도 이 문제를 다루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