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선우] 나랏말싸미, 우리 세종대왕을 돌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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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선우(映畫選祐)’는 손선우 전 영남일보 기자가 읽은 영화 속 세상 이야기입니다. 스포일러보다는 영화 속 이야기를 뽑아내서 독자들의 영화 감상에 도움을 주고자 합니다.]

<나랏말싸미>는 세종(송강호)이 승려 신미(박해일)와 비밀리에 한글을 창제했다는 가설이 바탕이다.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의 한글 창제라는 정설에서 벗어난 탓일까. 영화가 역사를 왜곡하고 세종의 업적을 폄훼하는 모독을 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역사 왜곡을 주장하는 측은 신미가 한글 창제에 참여했다는 문헌 기록이 없다는 것을 내세운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세종은 훈민정음 반포(1446년) 2년 뒤인 1446년에 신미를 알게 된다고 적혀 있다. 세종이 홀로 훈민정음을 창제했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하지만 영화가 역사적 기록과 거리가 먼 불교계의 주장에 기댄 이유가 있다. 유학의 성지인 집현전이 한글 창제에 나섰다는 게 비현실적이기 때문이다. 한자로 권력을 쥔 집단에서 새로운 글자를 만든다는 것은 권력을 스스로 허무는 것이다. 세종이 유언으로 신미에 ‘우국이세 혜각존자(祐國利世 慧覺尊者·나라를 위하고 세상을 이롭게 한, 지혜를 깨우쳐 반열에 오른 분)’라는 법호를 내린 기록도 힘을 보탠다. 숭유억불의 나라 조선의 임금이 승려를 추어올렸다는 게 한글 창제의 공로를 반영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또 조선 숙종 때 대제학을 지낸 서포 김만중의 수필집 ‘서포만필’에 적힌 훈민정음과 산스크리트어와 관계 등도 근거가 됐다. 영화는 세종이 중국의 각종 언어학 서적을 밤새 연구해서도 찾지 못한 한글 창제의 비밀이 불교 유산인 팔만대장경에 있고, 산스크리트어와 티베트어, 파스파 문자 등 소리글자에서 한글의 아이디어를 얻은 것으로 그린다. 또 훈민정음 해례본에 일부러 한 글자를 지워 불교의 법수(法數)인 총 108개 글자로 완성하는 것으로 묘사한다.

문제는 영화에서 근거가 희박한 가설을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고증한다는 점이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영화에도 상상력이 개입할 수는 있다. 세조의 왕위 등극 과정에 일개 관상가가 관여했다는 이야기를 담은 <관상(2013년)>과 광대가 심신이 피폐해진 임금 대신 용상에 앉아 선정(善政)을 한다는 상상력을 펼친 <광해(2012년)>도 허구지만 ‘역사 왜곡’이나 ‘허위사실’이라는 비판을 받지 않았다.

<나랏말싸미>는 <덕혜옹주(2016년)>나 <고산자-대동여지도(2016년)>, <군함도(2017년)>처럼 상상력을 허락받지 못했다. 이유는 영화에서 다뤄진 역사적 사실이 현실에 미치는 영향력 때문이다. <군함도>와 <덕혜옹주>가 역사 왜곡의 비판을 받은 배경에는 과거사 문제로 갈등을 빚는 현실의 한·일 관계가 있다. 과거사가 매듭지어지지 못한 상황에서 들어간 허구는 관객에게 당혹감을 준다. <군함도>는 강제노역을 하는 조선인이 일본인에 뇌물을 바치거나, 조선인끼리 대립한다는 점이 일제 탄압을 희석시켰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덕혜옹주>는 식민지 치하 황족으로서 고초를 겪었던 덕혜옹주를 역사적 사실과 달리 독립투사로 그려 대중이 외면했다.

<나랏말싸미>는 세종의 위대한 업적인 한글에 민족적 자부심을 느끼는 국민 정서에 부딪혔다. 이 때문에 신미가 세종의 조력자 수준을 넘어 거의 혼자 한글을 만들다시피 하는 것이 반발을 사게 됐다. 모든 백성이 글자를 읽고 쓰기를 바랐던 세종의 꿈이 영화 전반에 그려졌다면 익숙한 세종대왕의 영웅 서사가 깨져도 신성모독처럼 느껴지진 않았을 것이다. 또 조선 초기 불교와 유교의 갈등도 제대로 그려졌다면 영화가 좀 더 탄탄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세종과 신미가 갑자기 갈등하면서 한글 창제가 중단되고 소헌왕후의 죽음을 계기로 갈등이 해소된다는 설정에 개연성과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 밖에 등장인물들의 대사와 행동, 사고방식이 현대적인 점도 거슬린다. 극 전체의 진지함을 흩어내기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