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8월 13일 대구미문화원폭파를 빌미로 구금·고문받은 피해자들의 재심 사건 결심 공판이 열린다. 지난 2013년 5월 재심 청구로부터 6년 만이다. 결심에서는 재심 신청인들에 대한 검찰 구형과 신청인들의 최후 변론이 진행된다.
신청인 측 변호인에 따르면, 재심 사건에서 검찰 구형은 신청인들이 과거 유죄 판결을 받은 내용 중 일부 행위에 대해서만 유죄를 유지하거나, 백지 구형, 무죄 구형도 가능하다.
백지 구형은 검찰의 판단 없이 재판부에 판단을 맡긴다는 뜻으로, 과거사 관련 재심 사건에서 종종 나타난다. 일례로 고문 후유증을 앓다 사망한 故 김근태 전 국회의원의 재심 사건이 있다. 2014년 해당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재판부가 법과 원칙에 따라 선고해달라”라며 백지 구형한 바 있다.
다만 검찰은 최근 백지 구형을 지양하고 무죄를 구형하라는 내용의 ‘과거사 사건 공판 실무 매뉴얼’을 마련한 바 있어, 검찰이 이번 사건에서 무죄를 구형할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매뉴얼에는 검찰이 피고인을 위한 증거를 수집하고, 백지 구형을 지양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한편, 11일 오후 2시, 대구지방법원 형사2단독(판사 이지민)은 재심 신청인 박종덕(59), 함종호(61), 손호만(59), 안상학(57), 우성수(사망) 씨에 대한 공판 기일을 열었다.
이날 기일에는 검찰이 신청한 증인 유 모(56) 씨도 출석했다. 유 씨는 신청인들의 학교 후배로, 미문화원 폭파 사건 이후 밤중에 남성들에게 끌려가서 수일간 구금된 바 있다.
검찰은 유 씨에게 신청인들과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책으로 스터디한 적이 있는지, 신청인들이 고문이나 가혹행위를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는지, 구금 당시 작성한 진술조서를 자의로 작성했는지 등을 물었다.
유 씨는 “(신청인들이) 학교 선배라서 만난 적이 있다. 변증법적 유물론도 복사본을 읽은 적은 있지만, 그 책으로 스터디한 기억은 없다”라며 “(구금 당시) 회유와 협박이 있었다. 집에 가고 싶은데 7~10일 동안 속옷도 못 갈아입고 구금당했다. 다른 진술서를 보고 베껴 적으라고 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신청인들에 대한) 고문은 직접 (신청인들에게) 듣지는 못했지만, 몇 년 뒤에 당시 이근안이 (고문하러) 왔었고, 구타나 거꾸로 매달아 고문했다는 이야기는 건너서 들었다”라고 덧붙였다.
검찰은 재심 과정에서 과거 신청인들에 대한 유죄 취지의 진술서 등을 작성한 이들을 증인으로 요청해, 이날까지 5명을 신문했다. 오는 13일 결심공판에서도 검찰은 최대한 다른 증인 출석을 요구할 계획이다.
대구 미문화원 폭파 사건은 1983년 9월 22일 대구시 수성구 삼덕동에 있던 미문화원에서 폭탄이 터지며 경찰 등 4명이 중경상을 입고 고등학생 1명 사망한 사건이다. 공안 당국은 경북대학교에서 학생운동을 주도하던 이들을 주도자로 지목하고 신청인들을 연행했다. 이들은 영장도 없이 원대동 대공분실로 끌려갔다.
이들이 구금되어 있을 때 정작 이들에 대한 불법 구금과 가혹행위의 빌미였던 대구미문화원 폭파 사건은 수사가 종결됐다. 대구시경찰청 수사본부는 83년 11월 3일 ‘미문화원 폭파사건 수사상황 보고’를 통해 “관련 혐의자나 목격자를 발견할 수 없다”라며 “북괴공작원 2~3명이 직접 침투하여 폭파 후 복귀한 것으로 판단되어 더 이상 수사를 계속하더라도 성과가 없을 것으로 전망되므로 본사건 수사를 종결한다”고 밝혔다.
같은 해 12월 열린 공판에서 대구지법은 이들에게 국보법, 집시법 등 위반죄로 징역 1~3년 형을 선고했다.
2005년 박종덕 씨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설립되자 조사를 신청했다. 함 씨 등 피해자 5명은 진실위 조사에 응했다.
진실위는 이들에 대한 조사 결과를 2010년 조사보고서를 통해 밝혔다. 진실위는 “신청인이 약 30일간 불법 구금된 상태에서 잠 안 재우기, 구타, 관절 뽑기 등 가혹 행위를 당하는 등 인권을 침해받았고, 미문화원 사건과 달리 별건 반국가단체 고무 찬양 동조죄 등으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는 관련 법에 따라 재심사유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