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히글라스 해고자 향한 故김용균 어머니 김미숙의 포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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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김용균 씨의 어머니인 김미숙(51) 씨가 아사히글라스 해고노동자들과 만났다.

김미숙 씨는 결혼 전부터 경상북도 구미시에 정착해 비정규직 일자리를 전전했다. 가장 오래 일한 곳은 전자 부품 공장이다. 7년간 그곳에서 PCB 회로를 검사했다. 그 회사 사내하청 업체 소속이었다.

구미에 있을 때 미숙 씨는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해고 사건에 대해, 지역에서 좋게 쳐주는 직장 정도로만 알았다. 주야 맞교대로 일하던 미숙 씨는 아사히글라스 해고 사태가 일어나도 깊게 알지는 못했다.

용균 씨가 지난 12월 사망하자, 미숙 씨의 삶은 바뀌었다. “조금만 더 아이에게 관심을 가졌더라면” 하는 죄책감에 빠졌다. 밥을 먹을 때는 용균 씨 생각에 삼킬 수도 없었다. 그때, 미숙 씨는 아사히글라스 해고자들과 같은 비정규직, 세월호 유가족 등, 아픔을 겪은 이들로부터 힘을 얻었다. 더 이상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다른 공장에서도 일하다가 사람이 죽어서는 안 된다. 그 생각으로 미숙 씨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김용균법은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해, 올해 1월부터 시행됐다. 1990년 이후 28년 만의 개정이다. 미숙 씨는 법이 구체적이지 않고, 실제로 산업 현장에서 노동자 안전을 증진시키는지도 의문이라며, “아직 못마땅하다”라고 한다. 부족한 점은 국회에서 보완하기를 기대했지만, 정쟁에만 몰두하는 모습을 보며 결국 “우리가 뭉쳐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21일 오후 3시, 김미숙 씨는 구미를 찾아 아사히글라스 해고자, 제천 간디학교 학생들과 간담회를 열었다.

▲김미숙 씨(중간)와 차헌호 아사히글라스 지회장(우측)
▲김미숙 씨, 아사히글라스 해고자, 제천 간디 학교 학생들이 22일 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김미숙 씨는 “용균이가 죽기 전에 (태안화력발전소에서) 12명이 더 죽었다. 그때 다 개인의 실수로 몰아갔다”라며 “그때 현장근로감독이 제대로 됐다면 우리 아들은 죽지 않았을 것이다. 그게 힘들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제라도 누군가가 나서야 했다. 사회 구조적으로 (노동자를) 죽이게 되는 현실에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분했다”라며 “우리가 뭉쳐야 해결할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끝으로 “아사히글라스처럼 어렵게 노조를 만들어서 힘들게 싸우고 있는 모습은 우리에게도 귀감이 된다. 정말 대단하다”라고 말했다.

차헌호 아사히글라스지회장은 “우리 비정규직 노동자가 외롭게 싸우는데 어머님이 함께 해주셨다”라며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도 다 자기 자식으로 생각한다. 용균 씨 죽음이 끝이 아닌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미숙 씨와 제천 간디 학교 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