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집에 불이 났다. 동지 팥죽을 쑤어먹었으니, 추웠던 날은 분명하다. 세 들어 사는 집의 사위가 술을 먹고 곤로를 발로 차 흘러나오는 석유에 불을 얹었다고 했다. 금세 불길이 타올랐고, 아빠는 아래 가게 전화를 빌려 119에 신고했다. 엄동설한에 소방 호스가 얼어붙어 물이 한 방울도 떨어지지 않았다고 했다. 다른 소방차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집이 전소하고 난 후였다. 아직도 아빠는 40년이 다 된 얼어붙은 소방 호스를 이야기하면서 나랏놈들 욕을 내뱉으신다.
2014년 4월 16일, 출근길 지나던 어느 가게 안 텔레비전의 자막이 긴급했다.
“진도 앞바다 여객선 침몰”
“수학여행 중인 안산 단원고 학생 338명 전원 구조”
대통령이 해외순방 때 입은 옷의 색깔조차 빨간 자막 위에 띄우는 속보 경쟁의 종편이 넘쳐나고 있었던터라 속보 같지도 않았다. 여객선 사고는 날 수도 있으나, 우리나라 재난방재 시스템은 당연히 전원 구조할 능력이 있으니 한 점 의심도 없는 속보였다.
그날 저녁, 전원 구조를 의심하지 않았던 국민들의 영혼이 무너져 내렸다. 구조되어야 할 사람들이 배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그리고 구조작업이라는 것도 실체가 없었다. 국가는 40년 전 소방 호스처럼 얼어 있었다.
세월호 사건은 당사자를 넘어 국민들에게 트라우마로 새겨졌다.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나도 자동차 안에서 소리 내 울었다. 울지 않으면 죄를 짓는 것 같았다.
어느 날부터 상황이 변해갔다. 유가족을 비난하는 정치인들이 늘어갔고, 일부 정치인들은 정쟁의 도구로 활용하기도 했다. 세월호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유가족을 사회 통합과 발전을 저해하는 주범처럼 몰아갔다. 세월호는 단순한 교통사고일 수도 있는데 국가를 상대로 너무 과하게 요구한다는 주장도 흘러 나왔다.
그날처럼, 사회는 유가족에게 강요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국가의 잘못이 아니라 그날 그 배를 탄 너희들의 잘못이라고. 대통령 탄핵을 앞두고도 그랬다. 그게 왜 대통령의 잘못이냐고. 오늘도 언급하기 힘겨운 그들의 잔인한 이야기는 이어진다. ‘위안부’가 지겹다고 이제 그만 좀 우려먹어도 되지 않느냐고 말하는 일본 극우 세력을 보는 기분이다.
나는 그날 이후 인권 강의 때마다 세월호를 말했다. 헌법 10조에 반하는 국가의 모습은 슬프지만, 명징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강의 중에 세월호를 언급하는 게 불편하다는 민원이 제기됐다. 강사가 너무 정치적이라고 했다.
그들이 잔인해지면 질수록 더 독하게 기억하고 되새겨야 할 것 같다. 국가는 그날 헌법상 국가의 의무를 내팽겨쳤고, 304명의 존엄함을 방치했다. 국가는 국민의 기본권을 확인하고 보장해야 하는 의무를 분명히 가지고 있다.
재난 피해자들은 권리를 요구할 수 있다. 40년 전 불타는 집을 지켜만 봐야 했던 책임은 소방 호스가 얼어붙은 날씨 탓이 아니라, 하필 사위가 개차반인 그런 집에 세 들었던 아빠의 잘못이 아니다. 소방 호스가 얼어붙도록 방치한 소방서가 잘못한 것이 맞다.
혹여 닥칠지 모를 다음 재난에서 내가, 혹은 우리 아이들이 당연히 살아야 하고, 죄를 지은 이는 법에 따라 마땅히 처벌받아야 하고, 피해를 입은 이들의 상처는 치유되고 배상받아야 한다고, 대한민국 헌법 제10조에 새겨져 있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보장할 의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