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성희롱 단톡방’이다. 단순 폭행 사태에서 시작된 이른바 ‘버닝썬 게이트’는 사건 연루자인 가수 승리 단톡방에 있던 가수 정준영과 그의 휴대폰에서 발견된 불법 촬영물 공유 단톡방으로 불이 옮겨붙었다. 이른바 ‘정준영 단톡방’이 SBS에서 보도되고 난 이후 포털은 관련 검색어와 해당 사건 연루자로 의심되는 연예인들의 해명으로 가득 찼다. ‘정준영 동영상’은 이틀 내내 포털 실검 1위를 차지했고, 평소 정준영과 친한 연예인으로 소문난 이들의 과거 언행과 불법 촬영물에 등장하는 피해 여성이 본인이 아니라는 여자 연예인들의 단호한 입장문이 포털을 가득 메웠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버닝썬 사건의 핵심은 정준영 단톡방이 아니다’라는 댓글이 하나, 둘씩 달리기 시작했다. 버닝썬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권력과 결탁한 일명 VIP들의 마약, 성접대 사건인데, 이 거대한 카르텔을 한 명의 부도덕한 연예인의 범법행위와 그와 관련된 찌라시로 입막음하려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 정준영 동영상 파문과 관련된 기사의 많은 공감을 받은 댓글 대부분은 ‘누가 정준영으로 버닝썬 게이트를 막으려 하나’와 같은 내용이다. 승리 단톡방에 ‘경찰총장’이 이들을 비호해주었다는 내용까지 등장하면서, 이 모든 배후에 있는 거대한 권력을 밝혀내는데 다 같이 집중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는 모양새다. 물론 이들의 유착관계를 파헤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동시에 정준영 단톡방은 그러한 거대한 권력 카르텔을 입막음하는데 쓰인 하나의 장치, 대중들이 ‘애써 무시해야’ 옳은 하나의 에피소드로 전락해버렸다.
‘정준영 단톡방’에 집중하는 것은 거대 악인 ‘공권력 게이트’를 대중의 눈으로부터 돌리기 위한 수작이 아니다. 마약, 물뽕으로 점철된 클럽 문화, 범법행위를 눈감아 주는 수단으로 사용되는 성접대 문화, 불법촬영물을 촬영하고 공유하는 단톡방, 이 모든 것들은 여성을 매개하지 않고는 이루어질 수 없는 남성문화를 대변하는 것들이다. 그 중에서 ‘단톡방 성희롱’은 권력과 자본을 매개하지 않고도 일반 남성들이 가장 쉽게 향유할 수 있는 ‘남성끼리’문화다. 여성 지인들의 외모를 품평하고, ‘좋은 야동’을 공유하며, 아무 맥락 없이 여성의 신체가 노출된 사진을 올리고, ‘섹스’라는 단어를 문장 끝마다 의성어처럼 사용하는 곳. 이처럼 일반 남성들의 단톡방과 정준영 단톡방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여성을 그들의 문화를 향유하고 공고히 하는 매개수단으로 이용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이 지점에서 ‘정준영 단톡방’은 되려 ‘버닝썬 게이트’의 핵심이다. 자신의 욕구와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남성들의 소통 문화에서 남성 유대를 형성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여성을 물화(物化)시켜 그들의 소통 매개로 삼는 것이다. 자본 권력을 갖지 못한 남자 대학생에게 이것은 ‘성희롱 단톡방’의 형태로, 자본력을 어느 정도 갖춘 남자 회사원들에게는 ‘성매매’의 형태로, 나아가 ‘성접대’의 형태로, 좀 더 대담하고 변태스러운 욕구를 가진 이에게 이것은 정준영과 같이 ‘불법 촬영물’의 형태로 행태만 달리할 뿐이다. 이처럼 ‘버닝썬 게이트’는 초대형 권력 비리에 ‘성’이 개입한 것이 아니라, 애초에 존재해왔던 차별적인 성별 정치학에 ‘권력’이 개입해 몸집을 키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태를 ‘초대형 권력 비리’로 굳이 명명하고자 하는 이유는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남성 단톡방 문화’의 참혹함이 낱낱이 고발되고 있는 지금, 그로부터 자신을 유리시키고자 하는 자동적인 욕구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욕구가 개입되는 동시에 누군가는 또다시 아무런 죄의식 없이 유출된 동영상을 찾아보고, 공유하며 낄낄대고 있을 것이다. 정준영으로부터 불법촬영물을 공유받았다고 시인한 가수 용준형은 ‘그동안 그런 사실을 알았으면서도 너무나도 쉽고 안일하게 생각하였고 그런 행동으로 인해 다른 수많은 피해자들이 생길 수도 있는 이 심각한 문제에 대해 묵인한 방관자였다’라고 고백했다. 이번 사태로 그와 같은 최소한의 성찰을 해야 할 이들이 수도 없이 많다. ‘정준영 단톡방 게이트’는 이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