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 때리기가 한창이다. 페미니스트들이 젠더 갈등을 조장하고 부풀린다고 한다. 페미니스트를 비난하는 온갖 혐오 표현뿐 아니라 페미니즘은 정신병이라는 말까지 듣다보면 마치 페미니즘이 모든 악의 근원같이 여겨진다.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던 문재인 정부도 기본적으로 페미니즘이 문제라는 시각을 공유하는 듯하다. 보도에 의하면,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는 ‘20대 남성지지율 하락요인 분석 및 대응방안’ 현안보고서에서 20대 여성을 “민주화 이후 개인주의, 페미니즘 등의 가치로 무장한 새로운 ‘집단이기주의’ 감성의 진보집단”으로 규정하면서 정권에 대한 지지도가 떨어지는 것을 페미니스트 20대 여성의 ‘집단이기주의’ 탓으로 돌린다.
이 보고서의 분석이 맞다면 21세기 페미니스트들은 주술과 마법으로 혹세무민 하던 중세의 마녀가 환생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촛불항쟁으로 등장한 정권에 대한 지지도조차 떨어뜨리다니 말이다.
이런 페미니즘의 ‘횡포’에 대항해 ‘남성성’ 회복 운동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최근 일부 기독교계 인사가 중심이 되어 남성운동 단체 ‘아빠의 약속’ 창립을 준비하고 있다는 보도를 보았다.
‘아빠의 약속’은 “페미니즘을 기초로 하는 악성(惡性) 동성애 문화, LGBTQ를 지지하는 문화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고 우려를 표하면서, “지나친 페미니즘은 젊은 세대 안에서 남성성(男性性)을 억압하고 남성들이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여 좋은 남편과 아버지로 성장하는 것을 더 어렵게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전통적 가정이 해체되고 출산율이 떨어지는 것도 급진적 페미니즘 탓이라고 한다.
따라서 이런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남성운동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정상적인’ 남성성을 회복하기 위해 남성들, 특히 “결혼하여 가장으로서 자녀들을 양육하는 아버지들”이 주도하는 운동이 필요하다며 아버지 운동을 시작하는 이유를 밝혔다. 그러면서 “아내를 사랑하고 가정을 지킨다; 퇴근 후에는 바로 귀가하여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여성 접대부가 있는 유흥 술집에서는 절대로 술을 마시지 않는다; 자녀에게 폭언과 폭력을 행하지 않으며 사랑으로 돌본다; 자녀에게 올바른 성윤리를 책임지고 가르친다”는 어찌보면 당연한 얘기를 ‘아빠의 다섯 가지 약속’으로 제시한다.
이런 움직임을 단순히 종교계 일부의 우스꽝스러운 제안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게, 실제 이런 기치를 내건 남성운동 단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주로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로 시작된 운동이다.
미국의 남성운동 단체 중 하나는 ‘아버지권리운동(Father’s Rights Movement)’이다. 가정폭력 피해여성을 대리하면서 자주 이들을 법정에서 마주친다. 이들은 가정폭력을 사소한 문제로 치부하고, 여성이 아버지와 아이 사이를 이간질 하려고 사건을 과장하거나 거짓말을 한다고 주장한다. 가정폭력이나 성폭력 피해자들을 보호하는 법들, 특히 양육권이나 양육비 관련법들이 지나치게 여성에게만 유리하고 남성을 차별한다며 법 개정을 위한 로비에도 힘을 기울인다.
몇년 전, 알콜중독자인 남편이 아이 앞에서도 폭력을 휘두른 가정의 양육권 소송에서 피해 여성의 대리인을 맡았을 때의 일이다. 가정폭력 전력 때문에 남편의 아이 접견은 사회복지사 입회 하에서만 이루어질 것을 요청했고, 판사는 이를 받아들였다. 이런 경우 몇차례 큰 문제 없이 접견이 이루어지면, 이후에는 제3자 없이 아이를 만날 수 있도록 해준다. 아무리 폭력적인 남성이라도 소송 기간에는 최대한 애정있고 부드러운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하는 법이고 보통 결국에는 제한 없는 접견권을 받는다.
하지만 이 의뢰인의 남편은 아이를 만나는 자리에도 술에 취해 나타나는 구제불능의 알콜중독자였다. 나는 아이의 안전을 위해 접견 중단을 요청해야 했고, 판사는 이를 받아들였다. 그날 아버지의 권리가 부당하게 침해되었다고 화가 난 상대 변호사는 내 의뢰인이 영주권을 받으려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며 이민국에 신고하겠다는 협박을 했다. 변호사인 내가 바로 옆에 있는데도 개의치 않고 남편측 변호사는 소리를 지르며 내 의뢰인에게 폭언을 해댔다.
담당 판사에게 상황을 알려 결국 그 변호사는 경고조치를 당했지만, 그 날 나와 내 의뢰인이 받은 충격은 엄청났다. 당사자인 의뢰인이 겪은 트라우마에 비교될 바는 아니지만, 나도 한동안 악몽에 시달리고 그와 비슷하게 생긴 남자만 봐도 소스라치게 놀랄 정도였다. 당사자보다 더 흥분한 문제의 변호사는 아버지권리운동의 열렬한 회원이었다.
남성운동은 종종 말 뿐이 아닌 물리적 폭력을 가져오기도 한다. 예를 들면, 작년 4월 캐나다 토론토의 번화가에서 차량 한대가 갑자기 인도로 돌진했다. 이 차량 테러로 10명이 숨졌는데, 그 중 8명이 여성이었다. 범인은 25세의 남성으로, 범행 직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인셀들의 반란은 이미 시작되었다”라는 글을 올렸다. 인셀은 영어로 비자발적인 순결주의자(involuntary celibate)의 약자로, 여성과 관계를 맺는 걸 원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남성을 일컫는 말이다.
인셀은 남성운동 내의 다양한 조류 중 하나로 남성우월주의 시각에서 이성과의 관계를 바라본다. 이들에 의하면 성관계는 남성에게 주어진 권리로, 여성이 이를 거절하는 것은 남성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행위다.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남성의 권리를 침해하는 불순한 생각이다. 따라서 자신을 거절한 여성을 혐오하는 것은 이 운동의 당연한 귀결이다.
남성성을 강조하는 남성우월주의는 극우 파시즘과도 연결된다. 2016년에 결성된 미국의 신나치 극우단체 프라우드 보이스(Proud Boys)의 예를 보자. 스스로를 “서구 쇼비니즘” 단체로 규정한 이 조직은 프라우드 보이스라는 다소 유치한 이름처럼 남성(특히 백인 남성)임을 자랑스러워하는 남성우월주의자 극우 조직이다. 여성과 트렌스젠더 남성은 가입할 수 없다. 이들은 남성들(특히 백인남성들)과 서구 문화가 공격당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의 해결을 위해 직접적인 폭력 사용을 부추긴다. 실제 이 조직은 각종 극우집회에서 회원들이 직접 행동부대로 폭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평범한 삶을 살아가려는 자신들을 ‘정신적으로 아픈 미치광이들’이 공격하기 때문에 조직을 만들었다는 설립자의 발언은 페미니즘이 정신병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떠오르게 한다.
이처럼 남성성이 공격받고 있다며 벌이는 남성운동은 여성혐오와 성소수자 혐오로 이어진다. 왜 그럴까? 올해 초 미국심리학회(이하 APA)가 발표한 남성과 소년에 대한 상담 공식 가이드라인에서 그 답을 찾아 볼 수 있다.
APA는 가이드라인에서 전통적인 남성성을 “금욕과 극기, 경쟁력, 지배욕,공격성”으로 규정하는 ‘남성성 이데올로기(Masculinity Ideology)’가 도리어 남성에게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전통적인 남성성 규범에 맞추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진솔하게 표현하는 것을 금기시 하고, 약한 모습을 감추어야 하고, 모험이나 공격적인 행동을 스스럼없이 하고, 도움을 청하는 것을 주저하게 하면서 결국 남성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남성 자살율이 여성보다 4배나 높고, 미국에서 일어나는 살인사건 범인의 90센트가 남성이고, 가정폭력도 대부분 남성이 저지르는 상황의 원인이 전통적인 ‘남성성’을 강조하는 것과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남성성 이데올로기는 이성애자 중심으로 이상적인 남성성을 규정하기 때문에 여성혐오 뿐 아니라 동성애 혐오로도 이어진다. 게이나 트렌스젠더가 어릴적에 가장 먼저 경험하는 억압은 “왜 남자답지 않냐”는 힐난이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인권을 위한 운동인 페미니즘이 동시에 전통적인 남성성을 허무는 것이라면 도리어 남성들이 두 손 들어 반겨야 하지 않을까? 남성에게조차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억압적인 ‘남성성’을 방어하는 것이 과연 보통 남성들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
이 시대에 필요한 남성운동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분법적인 남성성을 강요하는 이데올로기에 저항하는 운동일 것이다. 남성을 제한된 성역할과 젠더 규정에 가두는 것에 대항하는 운동이 필요하다. 분명한 것은 페미니즘을 적으로 겨냥하는 남성운동은 남성에게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여성 억압을 비롯한 모든 억압에 반대하며 성차별이 없는 세상을 위해 여성과 함께 싸울 때 남성의 존엄성도 지켜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