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철의 멋진 신세계?] ‘유전자 편집 아기’와 한도를 넘어선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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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5일, 중국 선전남방과학기술대학 허젠쿠이(賀建奎) 교수가 유전자 편집 기술로 쌍둥이 아기가 태어났다고 발표했다. 불임부부 7쌍으로부터 얻은 배아를 통해 한 부부가 임신에 성공했고 ‘룰루’, ‘나나’라는 이름의 여자 쌍둥이가 태어났다는 것이다.

허젠쿠이 교수는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을 활용해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 면역력이 있는 아기를 만들어냈다고 밝혔다. 이 발표가 사실이라면 인류 역사상 최초의 유전자 편집 아기가 탄생한 셈이다.

허젠쿠이의 이번 발표에 대한 정확한 검증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연구 성과가 학술지에 발표되지도 않았고, 실험에 대한 별도의 검증작업이 진행되지도 못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실험의 진위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실제로 허젠쿠이 연구팀이 연구를 진행하고 쌍둥이 아기가 태어났다고 알려진 병원은 이와 관련된 모든 사실을 부인했다.

하지만 아기가 태어났다는 사실을 발표한 이상 그의 주장을 허위라 단정할 근거도 없다. 지금까지 유전자 편집 아기 탄생 사례가 없었던 것은 이 기술이 지니고 있는 여러 가지 난점과 윤리적 문제로 실행에 옮기지 못한 것일 뿐,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유전자 편집 아기’의 탄생과 생명공학 기술의 폭주

아직까지 대부분의 나라가 인간 배아의 유전자 편집을 금지하고 있는 현실에서 허젠쿠이의 실험은 생명공학계 내부에서도 충격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선전남방과학기술대학은 허젠쿠이 교수가 휴직 중이며, 실험에 대한 어떤 보고도 하지 않아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이 대학의 생물학과 학술위원회는 허젠쿠이 교수의 연구가 학문적 윤리와 행동 강령을 심각하게 위반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중국 과학자 120명도 공동성명을 통해 인간 유전자 편집 실험을 강력하게 비난했다. 이들은 인간 유전자 편집 실험 결과와 추이를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실험을 강행한 것은 중국 생명의학 연구에 큰 타격이라고 말했다.

논란이 들끓자 중국은 허젠쿠이 교수의 실험을 전혀 모르고 있었으며 해당 연구팀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고 발표했다. 당국은 허젠쿠이 연구팀의 실험은 유전자 편집 실험을 금지하고 있는 중국의 법과 윤리 규정을 위배한 것이라고 지적하고, 관련 연구 중단 요구와 실태 조사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이 발표가 있은 후 공교롭게도 허젠쿠이 교수의 행방이 묘연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허젠쿠이 교수는 이번 발표 이후 종적을 감췄으며 그가 소속된 대학에 보안요원이 배치되는 등 경계가 삼엄해졌다고 한다. 언론에서는 당국이 허젠쿠이 교수를 구금하고 조사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살펴봐야 할 점은, 중국의 태도가 매우 이중적이라는 사실이다. 중국은 지금까지 유전자 편집 기술을 전폭적으로 지원해 왔고, 이번 사태를 일으킨 허젠쿠이 교수는 중국정부로부터 막대한 지원금을 받아왔다. 올해만 해도 중국 과학기술성에서 기금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허젠쿠이는 이미 중국 내에서 유명한 인물이었다. 젊었을 때부터 ‘중국의 아인슈타인’으로 불릴 만큼 촉망받는 과학자였고 중국 젊은 과학기술자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5,500억 원 이상의 가치로 평가받는 7개의 바이오 스타트업의 실질적 주인이기도 한 허젠쿠이는 지금도 중국 중앙정부의 최고 과학 프로그램 계획인 ‘천인계획’의 일원이다.

실제로 허젠쿠이의 발표가 있자 중국 인민일보는 “유전자 편집 기술의 중대한 마일스톤(이정표)”라고 극찬했다가 해외 언론과 과학계가 비난하자 기사를 삭제했다. 아울러 유전자 편집 실험과 관련된 정보를 담은 웹페이지들이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볼 때 중국이 허젠쿠이의 실험을 모르고 있었다는 발표를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렵다.

중국은 그동안 생명공학 분야에 국가적 차원의 막대한 투자를 진행해 왔다. 중국이 ‘기술 굴기’라는 이름으로 진행하고 있는 국가프로젝트에 생명공학 분야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은 지금까지 기술 중흥을 통해 세계 최강국으로 약진하려는 열망을 숨기지 않았다. 중국 과학기술은 국가주의와 애국주의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로 인해 과학기술 혁신과 개발과정에서 기술의 윤리적 측면은 우선적인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과학기술의 안전성과 이에 따른 윤리적 고려는 기술의 성과에 가려 늘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중국 당국이 허젠쿠이 연구팀의 ‘유전자 편집 아기’ 실험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고 발표한 것을 우리는 납득하기 어렵다. 중국 과학계는 그동안 여러 차례 과학기술의 국제적 윤리 규정을 위반해 온 전례가 있다. 2016년 이전까지만 해도 중국 과학계의 연구 성과는 국제적으로 검증되지 않았다. 그 이후 국제적으로 공인된 연구 성과를 내기 위해 권위 있는 과학저널에 논문을 게재하려는 노력하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논문표절이나 증거 조작 등의 비윤리적이고 위법 행위도 늘어났다.

2016년 하베이과학기술대학교 한춘위(韓春雨) 교수 연구팀이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보다 더 효과적인 유전자 편집 기술 ‘NgAgo-gDNA’를 개발했다는 논문을 발표하고 세계를 놀라게 한 적이 있었다. 중국은 이 연구팀에 막대한 연구 자금 지원을 승인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 세계 수백 개 실험실에서 이 연구 논문을 바탕으로 실험한 결과, 동일한 결론을 얻지 못하면서 논문의 진위 논란이 일었다. 결국, 한 교수 연구팀은 논문을 철회하기에 이르렀다. 중국판 ‘황우석 사태’로 불리는 한춘위 교수 사태는 결국 의도적 조작이 없다는 결론으로 귀결됐지만, 중국 과학기술계가 안고 있는 윤리 불감증을 보여준 사건으로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다.

한도를 벗어난 기술의 규제는 가능한가?

이번 ‘유전자 편집 아기’ 사태는 우리에게 심각한 고민을 안겨 주고 있다. 우선 생명공학 기술이 사회적 합의와 규제를 벗어나 누군가의 독단적인 판단에 의해 얼마든지 마음대로 무분별한 실험을 감행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사실 이번 허젠쿠이 연구팀의 ‘유전자 편집 아기’ 문제는 갑작스럽게 돌출된 것이 아니다. 이 문제에 관한 쟁점을 잘 정리해 놓은 『송기원의 포스트 게놈 시대』에 따르면,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을 이용해 인간 배아를 대상으로 한 최초의 유전자 편집을 시도했던 사례는 이미 2015년에 중국 중산대학교 황쥔주 교수 연구팀이었다고 한다.

이 문제로 전 세계 학계는 찬반의 논란이 거세졌다. 영국의학연구위원회는 “법적으로 정당한 경우,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를 이용한 인간 배아 편집은 가능하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영국의 관련 연구소는 인간 배아 유전자 편집 실험에 대한 승인을 영국 정부에 요청했고, 영국의 관련 당국은 “이미 인간 배아를 파괴하는 많은 실험이 진행되고 있는데,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을 사용한다고 해서 승인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라며 결국 승인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2015년 12월에는 ‘국제 인간 유전자 편집 회의’가 열려 “생식을 목적으로 하는 인간 배아의 조작 연구는 자제하는 것이 좋지만, 유전자 교정 연구를 당장 중단하지는 말자”라는 합의안을 도출했다. 인간 배아의 유전자 교정에 적극 찬성하는 대표적인 과학자, 조지 처치 하버드대학교 교수는 인간 배아의 유전자 교정 연구를 금지하더라도 누군가는 하게 될 것이기에 이왕 하는 것이라면 공식적으로 허가하고 인정하는 것이 금지를 피해 밀실에서 음성적으로 실험이 진행되는 것보다는 더 안전하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이러한 흐름은 2016년 중국 광저우 의과대학의 판용 박사가 인간 배아에서 HIV 감염을 억제할 수 있는 유전자 편집에 대한 연구를 발표했을 때 학계와 사회가 보인 반응으로 이어졌다. 1년 전 황쥔주 박사 연구 발표 때와 비교해서 인간 배아의 유전자 편집에 대한 인식은 훨씬 관대해졌다. 영국과 스웨덴에서 잇따라 인간 배아 유전자 편집에 찬성하는 논평을 하거나 실제로 기술 사용을 승인하고 허가하는 분위기가 이어졌다.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을 활용한 인간 배아 유전자 편집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생명공학 연구에서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의 위치는 독보적이다. 오죽했으면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을 일컬어 ‘DNA혁명’이라 불렀겠는가? 기술이 가져오는 엄청난 파급에 비해 비용이 싼 데다가 연구 방법이 널리 공개되어 있기 때문에 커다란 어려움 없이 이 기술에 접근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기술은 아직 정확성과 안전성이 결코 검증되지 않았다.

기술 선점을 노리는 과학자들과 그 배후에 있는 자본, 국가 시스템은 인간의 생명을 담보로 한 이 같은 무모한 경쟁을 아무 부끄러움도 없이 자행하고 있다. 이번 허젠쿠이 사태에서 보듯이, 생명윤리위원회(IRB)의 심의 규정은 무력했다.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과학기술연구가 인권을 침해할 우려가 깊기 때문에 만들어놓은 생명윤리위원회 심의 규정은, 생명공학의 질주 앞에서 아무런 힘을 갖지 못하고 유명무실했다. 윤리와 규제를 지키려 하다가는 결국 경쟁에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현실 인식이 과학기술계를 지배하고 있다.

생명을 유린하는 기술에 대한 전면적인 거부

실험실에서 자르고 오리고 붙여서 만들어진 생명이 태어났다. 풍문이기를 바라지만 지금으로서는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 되어 가고 있다. 영화 <가타카>(1998)가 불길하게 그렸던, 생명공학이 지배하는 시대가 이처럼 빨리 우리 곁을 찾아올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미증유의 사태가 이제 겨우 시작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그동안의 전례에 비추어 보자면 이번 ‘유전자 편집 아기’ 사태도, 지금이야 온통 비난 일색일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제2, 제3의 허젠쿠이가 등장하는 것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이러한 사태가 우리 곁을 찾아올지도 모르겠다.

제아무리 윤리 규정과 규제를 새롭게 만들고 합의하더라도, 한도를 넘어선 기술 자체를 모두가 포기하지 않는 한, 누군가는 계속해서 이 기술을 더욱 극악하게 발전시킬 것이다. 인간의 생명을 아무렇지도 않게 ‘조작’하고 ‘편집’한다는 사실 자체에 그 어떤 거부감도 들지 않는 사람들과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라면 이 문제의 해결은 요원하다.

한도를 넘어선 기술 문제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우리가 아직 갖고 있을지도 모르는, 생명을 유린하는 기술에 대한 전면적인 거부감을 기억해내고 되살려야 한다. 우리가 분명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었을 원초적인 거부감을 복원해야 한다. 인공이 생명을 압살하는 풍경에 대한 이 같은 근본적인 거역이야말로 우리가 우리에게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라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모든 것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