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포항제철소 협력업체에서 기계정비를 하던 박정수(가명) 씨는 손가락이 잘리는 부상으로 퇴사했다. 당시 협력업체와 포스코 모두 산업재해 처리를 꺼렸다. 공상 처리하고 치료 후 협력업체에서 다시 일할까도 생각했지만, 박 씨를 향한 협력업체 사장의 첫마디에 마음을 정했다. 사장은 박 씨에게 “나는 니만 보면 화가 치밀어오른다”라고 했다.
협력업체는 소속 노동자가 재해를 당하면 근로감독관의 산업안전 감독을 받는 데다가, 원청업체로부터 나쁜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원청업체인 포스코는 ‘KPI(핵심성과지표) 평가’를 통해 외주협력업체를 평가한다. 포스코는 ▲재해발생 ▲노사관계 ▲QSS혁신활동 실적 ▲경영실적 등을 점수로 환산한다. 때문에 협력업체는 재해 사실이 공식적으로 기록되는 ‘산업재해’처리보다는 ‘공상’처리를 선호하게 된다.
포스코 하청노동자들은 정수 씨처럼, 재해가 발생하면 관리자로부터 공상처리 압박을 받는다고 입을 모았다.
금속노조 포스코사내하청지회에 따르면 산업재해 은폐는 현장 관리자들 선에서부터 나타난다. 인사고과에 반영될 수 있기 때문에 재해자를 회유하거나 압박한다는 것이다.
김모환 포스코사내하청지회 롤앤롤분회장은 “현장에서 일어나는 사고를 회사가 다 파악하지 못한다. 현장 책임자가 은폐하기 때문”이라며 “하청업체의 경우에는 업체 사장 대부분이 포스코 본사 임직원이었던 사람들이라서 포스코가 그만두라면 그만둬야 한다. 회사 눈치만 본다”라고 말했다.
노조에 따르면, 이번 달 최소 2건 이상 중대재해가 발생했다. 지난 12일 오전 7시 30분경, 롤 구동·테이핑 작업 도중 인원 부족에도 작업을 강행하다 하청업체 노동자 한 명의 팔이 롤에 말려 들어가는 사고가 벌어졌다. 이 사고로 재해자는 손목이 절단됐다. 같은 달 25일 오후 7시경, 롤 교체 중이던 하청업체 노동자의 손가락 2개가 끼여 잘린 사고도 있었다.
포스코, 안전사고 왜 나는가
“안전교육은 요식행위, 안전장비 부실, 과도한 작업량”
재해자, 하청노동자 비율 압도적···”위험의 외주화”
포스코에서 발생하는 재해는 ▲형식적인 안전교육 ▲안전장비 부실 ▲과도한 작업량 탓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박 씨는 근무 당시 매일 오전 툴박스미팅(현장 근처에서 작업 개시 전에 감독자를 중심으로 작업자들이 모여 해당 작업의 내용과 안전에 대해 서로 확인 및 의논하는 활동)을 통해 안전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실제 작업 현장에서는 교육받은 대로 일하기 어렵다. 작업량이 많고, 보호장비가 부실한 경우도 있다. 중장비로 중량물을 취급하는 특성상 위험 요소가 많은 점도 문제다.
원청업체와 달리 하청업체 직원은 한 대뿐인 출퇴근 차량 배차 시간에 맞춰야 한다. 박 씨는 사고 당시 배차 시간에 맞추기 위해 남은 작업을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당시 박 씨는 주변에 응급구조 신청을 요청했으나 포스코 원청업체 직원은 신고 없이 자가 차량으로 박 씨를 병원에 이송했다.
박 씨는 접합수술에 성공했지만, 목숨을 잃는 동료들도 있었다. (관련 기사=다쳐도 신고 없었던 포스코, 26년 하청노동자는 목숨을 잃었다)
2013년부터 2018년 8월까지 포스코 포항제철소 내 재해로 사망한 노동자는 10명(하청 9명, 원청 1명. 문진국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실)으로 나타났다.
김모환 분회장은 “사고는 현장 작업 시간을 촉박하게 잡아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시간이 곧 생산량이라고 생각한다”라며 “인원도 부족하다. 안전 개선을 확실하게 하고 인원보충도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한편, 포스코는 재해 예방을 위해 3년 간 1조1050억 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올해 안전전략사무국을 신설했고 안전 담당 부서 편제를 제철소장 직속으로 격상했다. 또한, 안전 담당 인력을 채용하고 중대 재해 위험이 있는 설비 위주로 개선에 나섰다. 외주협력사의 재해 사고 예방을 위해서는 연 22억 원을 들여 안전 조직·인력 확충 등에 나설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