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 차 포스코맨, 포항노동청 앞에서 촛불을 들었다

포스코 노동자들의 첫 촛불집회···"부당노동행위 엄정 수사"

23:18

28년 차 ‘포스코맨’ 김창식(53) 씨는 몇 달 전까지 포스코에 다닌다는 이야기를 꺼내기 민망했다. ‘제철보국’이란 말에 사명감을 느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 언론에 나온 포스코는 ‘경영비리’, ‘정경유착’이 꼬리표처럼 붙었다.

2018년 8월, 회사 후배에게 문자 한 통을 받았다. ‘노조를 한번 해보자’, 김 씨는 경영비리, 수많은 사고, 불합리한 문화 앞에서 침묵했던 시절이 떠올랐다.

20일 오후 7시 30분, 김 씨는 동료 노동자 100여 명과 함께 대구지방노동청 포항지청 앞에서 촛불을 들었다. 30년 ‘무노조 경영’을 내세운 포스코에서 노조 활동에 나선 ‘포스코맨’들이다. 금속노조 포스코지회 조합원은 젊은 층이 주축이라, 김 씨는 이들 중에서도 장기근속자였다.

“저 정도 근속한 사람들은 대부분 양이었습니다. 양들의 침묵이었습니다. 저도 그 양 중의 하나였습니다. 잘못된 것에도 눈감았고 잘못된 지시에도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이제 포스코에 다닌다는 것이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경영진의 비리 때문에 자존심이 상합니다. 노조 활동으로 회사의 자부심을 다시 살리고 싶습니다”(김창식 씨)

▲20일 촛불집회에 참여한 김창식 씨

프소코 노동자들은 촛불을 들고 마이크를 잡았다.

조양래(29) 씨는 “입사하고 나서 현장 배정 전 연수를 받고 있는데 갑자기 광양으로 몇 명 가야 한다면서 제비뽑기를 하자더라. 제비를 뽑았더니 내가 광양에 걸리는 황당한 일도 있었다”라며 “재해가 발생하면 항상 재해자가 잘못한 것으로 된다. 다친 사람이 징계도 받는다. 이게 회사입니까. 노동자가 권리를 가져야 부당한 처우를 받지 않을 거로 생각해서 노조 활동을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구본혁(28) 씨는 “우리는 국민의 4대 의무를 잘 수행하고 있다. 특히 근로의 의무는 너무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다”라며 “여기 있는 누구도 부끄럽지 않다. 우리가 받는 부당한 처우를 더이상 숨기면 안 된다. 떳떳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이 돼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김용승(39) 씨는 “IMF 시절 아르바이트나 하다가 포스코에 들어올 수 있었다. 일만 열심히 하면 다 좋아질 거로 생각했다. 임금은 올라갔는데 마음은 항상 공허했다”라며 “회장들이 정치권력과 손을 잡으면서 직원을 힘들게 하는 모습을 보며 분노를 느꼈다. 회사를 바로잡을 대안은 노조밖에 없다. 노조 활동은 힘들겠지만 신념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후 9시 집회 막바지에 이르자 스피커에서 포스코 사가가 흘러나왔다. 사가를 제창하고, 곧이어 노동가요 ‘철의 노동자’를 부르며 집회를 마쳤다.

지난 10월 29일 금속노조는 대구지방고용노동청 포항지청에 포스코 특별근로감독을 촉구하며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포스코가 특정 노조 가입을 유도하는 부당노동행위를 하고 있다며 특별근로감독에 나서라는 요구였다.

같은 날 더불어민주당 경북도당, 정의당 경북도당도 포스코의 부당노동행위와 노동부 특별근로감독 실시를 요구했다.

포스코 부당노동행위를 내사 중이던 포항지청은 10월 25일부터 수사 단계로 전환했다. 포항지청은 수사 진행 과정에서 혐의점이 드러나면 특별근로감독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