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질 통장 만드세요”…‘무신용’, ‘자율이자’ 대구청년연대은행 출범

[인터뷰] 대구청년대안은행을 만드는 사람들
스스로 해결하는 ‘자조 금융’, 공동체 기반 ‘관계 금융’
오는 11일 창립 총회 후 본격 활동 시작

20:42

대구 청년들이 직접 만드는 금융 공동체 ‘대구청년연대은행(준)’이 11월 문을 연다.

지난 6일 오후 대구시 중구 동성로 ‘이후’ 사무실에서 최근 청년생활경제 상담사 양성 과정을 마치고, 청년연대은행 설립을 준비하는 이들을 만났다. 대구청년빚쟁이네트워크(대구청빚넷) 최유리(32) 대표, 성민아(31) 사무국장, 김효주(31), 김형미(26) 씨다.

이들은 지난달 2018국민해결프로젝트 지원으로 청년생활경제 상담사 양성 과정 48시간을 이수했다. 앞으로 12시간 인턴십 과정을 거치면 정식 상담사가 된다. 최유리 대표는 이미 지난 5월 서울에서 양성 과정을 수료해 지금은 대구 유일의 청년생활경제 상담사다.

▲왼쪽부터 김효주(31) 씨, 대구청년빚쟁이네트워크(대구청빚넷) 최유리(32) 대표, 김형미(26) 씨, 성민아(31) 사무국장.

오는 11일 창립 총회를 여는 대구청년연대은행은 청년 스스로 금융 문제를 해결하는 ‘자조 금융’, 청년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관계 금융’이다.

지난해 대구 청년유니온이 빚이 있는 대구청년 4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평균 부채는 2,603만 원이었다. 올해 대구청빚넷이 무작위 청년 400명을 대상으로 실태 조사를 했는데, 부채가 3천만 원을 넘겼다고 한다.

유리: 올해는 무작위 청년을 대상으로 조사했는데, 부채가 400만 원가량 늘었어요. 작년보다 상황이 더 안 좋아졌다는 거죠. 

민아: 조사를 나가보면 30대 청년 대부분 주거비 부채예요. 20대는 학자금 대출, 생활비 때문이고요. 1년 내에 돈을 빌린 경우 대부분 지인 대출이거나 현금 서비스를 받았어요. 생활비였고요.

유리: 청년 부채 문제가 안타깝지만 도덕적인 해이 때문이라고 이야기하잖아요. 사실 개인 문제가 아니에요. 부모님이 용돈을 줄 상황이 안 돼서 부모님 요청으로 학자금 대출을 받는 경우도 많아요. 이걸 개인의 도덕적 해이라고 할 수 있냐는 거죠.

민아: 빚을 지고 싶어서 지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대출 제도를 잘 몰라서 고금리에 시달릴 수도 있고, 지금 저처럼 계약이 종료됐는데 생각보다 일자리가 안 구해질 수도 있어요. 청년들은 일자리가 쉽게 구해지지 않는다는 거에 공감하는데, 기성세대는 ‘공장이라도 가면 되지’라는 식으로 이야기하잖아요. 우리 문제를 해결하는 건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효주: 겪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고 해야 할까요? 우리는 정말 절박한데, 저분들이 보기에는 노력을 안 하는 거로 보이는 건가 싶더라고요. 우리 스스로 이야기하고 터놓을 수 있는 무언가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청년연대은행은 ▲무신용 ▲무담보 ▲자율 이자 ▲관계 금융이 원칙이다. 은행 조합원이 되면 특별한 신용이나 담보는 필요 없다. 조합 활동 정도 등 ‘관계’가 중요한 대출 기준이다. 이자도 꼭 돈이 아니라 재능 기부로 낼 수도 있다.

이들은 현재 목표한 초기 자본금 80%를 모았다. 12월부터 조합원을 모집하고, 1월부터 본격 대출을 할 예정이다. 대출을 받기 위해서는 최소 3개월 조합 활동을 해야 한다. 대출 상한액은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았다.

긴급 대출이 필요하면 상담을 두 번 거쳐야 한다. 청년연대은행 상담은 일반 금융권 상담과 다르다. 금리 좋은 대출 상품을 안내하거나, 재무 상품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자신의 상담 설계 내용을 보여주는 성민아 사무국장

민아: 저는 서울 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에서 상담을 받았었어요. 7월 중순에 계약직 일이 끝나서 일을 빨리 구해야 하나, 실업급여로 얼마나 살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었거든요. 분명 빨리 돈 벌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그런데 상담받고 나서 욕구에 따라 생활해도 괜찮다는 위안을 받았어요. 이 좋은 걸 만방에 알리자고 생각했죠.

유리: 청년생활경제 상담은 재무 상담은 아니에요. 4가지 부(사회적 부, 경제적 부, 생태적 부, 정신적 부)를 이야기해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익숙한 돈벌이가 아니라, 4가지 부를 골고루 갖추어야 한다고 해요. 욕구에 맞는 생애 설계와 솔루션을 배치해주죠. 만약 스페인 여행을 간다고 하면, 돈만 모으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시간, 같이 갈 친구 이런 것도 다 고려해야 하잖아요. 돈이 목적인 삶이 아니라, 돈은 욕구를 이루기 위한 수단인 거고, 욕구를 이루기 위한 설계를 같이하는 거죠.

민아: 저는 그동안 ‘지금 행복’에 돈을 많이 썼어요. 공연을 자주 보러 다니는데, 비용이 많이 드는 거예요. 상담을 받고 전체적인 설계를 보니, 공연을 보러 다녀도 (통장 사정이) 괜찮은 거예요. 목적에 맞게 통장도 만들고, 계획대로 지출하면서 그런 불안을 없앨 수 있었어요.

효주: 요즘 말하는 ‘덕질 통장’을 하나 만드는 거예요.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라고 하잖아요. 하루 더 벌어서 잘 사는 것도 좋겠지만, 청년들이 지금도 즐기고, 미래도 계획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들더라고요.

유리: 보통 청년들이 돈을 100만 원, 200만 원 이런 식으로 모아 놓잖아요. 그냥 모으는 거예요. 그러면 쓸 때도 그냥 써요. 돈을 생애 설계에 맞게 세분화하는 거죠. 신화 콘서트 갈 통장, 독일 여행 갈 통장, 이런 식으로. 인생 욕구를 찾는 것부터 상담이에요.

▲대구청빚넷 팜플렛

이들은 청년대안은행 설립 후, 청년생활경제 상담을 전담하는 ‘대구 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도 내년 3월 설립할 예정이다. 현재 서울, 광주에 센터가 있다. 또, 신용회복위원회, 서민금융진흥원 등 부채 문제 해결을 위한 관계 기관과 지역협의체 구성도 논의 중이다.

최유리 대표는 “청년 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지역에 자조 금융이라는 은행, 건강하고 자립적인 경제 생활을 상담해주는 센터, 지역협의체, 청빚넷의 사회적 활동도 필요하다”며 “우선 은행과 상담센터를 안정화하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여기를 찾는 청년들 문제를 사회적으로 풀어내는 일도 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한편, 대구청년연대은행 오는 11일 창립 총회를 연다. 28일 ‘대구청년연대은행 시작하는 날’ 행사로 정식 이름을 공개하고, 올해 실시한 대구 청년 부채 현황 실태조사 결과 발표도 할 예정이다. 직접 부채 상담을 받고 싶으면 페이스북 ‘대구청년빚쟁이네트워크‘로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