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이야기) “아시아에 장편 애니메이션이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국을 점령하고 미국 진주만을 폭격한 일본은 의기양양했지요. 그들은 그들의 체제를 선전하는데 열을 올렸고,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아시아 최초의 만화영화가 일본의 체제를 선전해주길 기대하면서요. 그들의 바람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한편, 중국은 몸부림 중이었습니다. 일본의 횡포는 날로 더해갑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중국인들은 서로 뭉치고, 또 뭉치려 애썼습니다. 민족주의가 부상했지요. 이와 함께 떠오른 질문이 있었습니다. ‘우리 민족의 성격은 무엇인가?’ 그 답을 얻기 위해, 각계각층 많은 이들이 밤을 지새웠습니다. 그중에는 중국의 월트 디즈니, 만(萬)씨 형제도 있었습니다. 중국 첫 애니메이션이 이들의 손에서 탄생했지요.
그러던 어느 날, 만화계에 대박 사건이 터집니다. 1937년, 미국 월트 디즈니사의 야심작, <백설공주>의 등장이었습니다. 당시, 월트 디즈니 하면 흔히들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었습니다. 몸개그에 오케스트라 배경음악이 한 묶음으로 따라가는 단편이었지요. 사람들의 머릿속에 ‘만화영화란 가볍게 보는 짤막한 설정’이라는 이미지가 있었습니다. 만화영화 하면 월트 디즈니인 시절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백설공주>가 그 생각을 확~ 뒤집어버렸습니다. 만화영화가 스토리를 담을 수 있다니~! 지구촌이 들썩일만한 소식이었지요. <백설공주>를 본 만씨 형제는 오오 이거다 싶었습니다. 만씨 형제는 중국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스토리를 찾았습니다. 그게 바로 <서유기>입니다. 그 속에는 온갖 수난과 극복의 과정이 있었습니다. <서유기>는 중국의 현실과 꼭 닮아 있었습니다.
서유기를 펼치자, 온갖 모험이 튀어나왔습니다. 그중 철선(鐵扇)공주가 만씨 형제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그것은 마법의 강철부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부채의 주인은 공주였습니다. 그녀가 사는 동굴 근처에 산이 하나 있었지요. 계속 불타오르는 산이라 하여 화염산(火焰山)이라 불렸습니다. 근처 농부들은 열기에 발만 동동 굴러야 했지요. 화염산 불길은 오로지 공주의 부채로만 가라앉힐 수 있었습니다. 욕심쟁이 공주는 불길을 잡아주겠다며 농부들에게 대가를 요구합니다.
한편 손오공 일행의 서역 가는 길, 화염산이 떡하니 가로막고 있네요. 그들은 물어물어 공주를 찾아갑니다. 그러나 공주는 부채를 내어주지 않습니다. 손오공 일행은 한명씩 각자의 도술로 부채를 얻어 보려하지만 번번이 실패합니다. 공주도 만만치 않거든요. 답은 협동에 있었습니다. 모두가 지혜를 모았더니, 공주가 두 손 두 발 들고 말지요. 마침내 부채가 손에 들어왔습니다. 뭉쳐야 산다는 교훈이었지요. 마을에는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이 이야기는 땅따먹기에 빠진 욕심쟁이들에게 일침을 날리고, 오랜 점령과 수탈로 피폐해진 국민들에게 용기를 주기에 안성맞춤이었습니다.
만씨 형제는 로토스코핑(Rotoscoping)을 사용했습니다. 로토스코핑은 실제 인물의 사진 위에 그림을 그리는 기법입니다. 일제강점기의 어려운 시절이었습니다. 자금과 기술력이 부족했습니다. 움직임도 어색하고, 인물 속에 사람의 눈알이 보이기도 했지요. 3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200명 이상의 예술가들이 참여했습니다. 이만여 개의 장면이 나왔습니다. 각 씬들을 타타타타~하고 돌리자, 마침내 73분 분량의 장편 애니메이션, <철선공주>가 탄생했습니다.
1941년 1월 1일, <철선공주>가 세상에 나왔습니다. 아시아 최초 장편 애니메이션이 나왔습니다. 위대한 탄생이었습니다. 중국의 전통 이야기와 선율에 지구촌의 시선이 모입니다. 중국의 사기가 올라갑니다. 일본은 뒤통수 맞은 기분입니다. <바다독수리 모모타로>는 아직도 제작 중! 게다가 중국의 장편은 73분짜리인데, 일본 장편은 그 숫자를 뒤집은 37분입니다. 사실은 장편에 가까운 중편이었지요. 빠직~! 우욱~! 욱일기의 자존심에 흠집이 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건으로 인해 일본 만화 산업에 불이 붙습니다. 1942년, <철선공주>가 일본에 상륙합니다. 많은 일본 대중의 사랑을 받았지요. 그중에는 열여섯 살의 오사무 데즈카도 있었습니다. 중국의 장편에 감동 받은 그는 결심을 합니다. 만화가가 되어 <철선공주>와 같은 작품을 만들어보겠다~! 그렇게 아톰, 밀림의 왕자 레오를 만든 일본 망가의 아버지가 탄생했고, 그를 발판 삼아 일본 만화의 세계는 한결 풍부해졌지요.
한편, 일본 해군성은 세오 미츠요에게 긴급 명령을 내립니다. <철선공주>에 버금가는 장편 만화영화를 만들라는 거였지요. 미츠요는 할 수 없이 <모모타로와 바다의 신병>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또다시 모모타로가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모모타로와 동물 친구들은 해병 훈련을 받습니다. 가족의 품을 떠난 그들은 열대의 섬을 찾아가지요. 그 섬에는 여러 야생 동물이 살고 있습니다. 모모타로 일행은 그곳에 공군 기지를 건설하고, 동물들에게 일본의 문화와 언어를 가르쳐줍니다. 또한 근처의 섬을 영국군의 손아귀에서 구해 주지요.
일본의 인도네시아 점령, 미화였지요. 아픈 현실을 아름답게 치장하는 약물을 서서히 주입하고 있었지요. 일본군은 무적이다, 또한 자비롭다, 영국과 미국에 대항하여 반드시 승리를 거둘 것이다~! 이 영화 속 장면하나를 소개할게요. 군사 훈련 중 이었습니다. 한 동물이 날아가는 선원 모자를 쫓습니다. 쫓다보니 길을 잃고 위기를 만납니다. 결국 나머지 훈련병들이 이를 구하기 위해 나서지요. 그 속에는 개인보다 국가가 먼저라는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마치 세오 미츠요의 현실 같았지요.
그래서였을까요, 미츠요는 유난히 고향 풍경에 공을 들였습니다. 만화영화 속, 해군 병사들은 그의 고향에서는 누군가의 귀한 자식이었습니다. 부모는 무사히 훈련을 마치고 돌아온 자식을 환영했습니다. 고향의 강과 숲이 그들을 품었습니다. 그 속에서 노래하는 그들의 모습은 세오 미츠요가 바라는 평화를 그리고 있었습니다.
1945년, 해군성은 <철선공주>보다 1분 더 긴, <모모타로 바다의 신병>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미츠요가 그렸던 아름다운 고향에 원자 폭탄 두 개가 떨어졌습니다. 일본은 전쟁의 기록을 지우는 데 급급했습니다. 그 중에는 세오 미츠요가 만든 만화영화도 있었습니다. 대중의 머릿속에서 그의 작업은 잊혀 졌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세오 미츠요 본인이었습니다. 일본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 그것은 한때 일본의 자랑이었고, 미츠요의 부끄러움이자 트라우마었습니다. 일본 만화산업은 점점 불타올랐지만, 미츠요는 애니메이션 산업에서 발을 빼고 아동서적의 삽화를 그렸습니다. 그리고 2010년, 조용히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렇다면, <철선공주>로 일본 만화에 숨결을 불어넣은 중국 만화 산업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2차 세계 전쟁은 끝났습니다. 마오쩌둥은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웠지요. 그는 권력에 대한 욕심이 지나친 사람이었습니다. 자본주의를 지지하는 자들이 세력을 키우자, 그는 이들을 쳐내기로 결심합니다. 그러나 검은 속내를 그대로 드러내기엔 격이 떨어지지요. 그는 애국심을 명분으로 자본주의 기미가 엿보이는 모든 문화·예술 작품을 폐기하자는 운동을 벌였습니다. ‘현대판 분서갱유’가 시작된 것입니다. 중국 애니메이션계 역시 이에 직격탄을 맞고 휘청댔습니다.
문화혁명의 거센 폭풍이 휘몰아치는 동안 중국에는 프로파간다를 위한 애니메이션만이 남았습니다. 당이 요구하는 작업을 거부하면 혹독한 고초와 함께 노예와 같은 삶이 기다릴 뿐이었습니다. 자살을 선택하거나 더러 살아남은 이들은 집단농장에 보내졌습니다. 만씨 형제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이후, 무차별적인 가위질에 대한 자성이 일어났습니다. 중국 애니메이션계도 점차 숨통을 틀 수 있었지요. 새로운 작품들이 선보여지며 제2의 부흥기를 노렸습니다. 하지만, 이미 중국의 텔레비전은 그 사이 큰 발전을 이룬 일본 애니메이션이 장악하고 난 후였습니다. 중국 정부가 내놓은 대책이란 국산 작품의 비율을 의무화 하라는 것뿐 이었습니다. 현재 중국의 작품들은 새로운 도약을 시도하는 중입니다. 그러나, 중국의 만후아(漫画)가 일본의 망가만큼의 명성을 가질 날이 언제일지는, 안개 속입니다.
<철선공주>와 <모모타로 바다의 신병>, 이 두 만화는 애국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애국심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모아주기도 했고, 또한 누군가를 괴롭히기도 했습니다. 네에, 애국심은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편집적(偏執的)인 사랑도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요? 살인을 저지른 사람들도 가끔은 이렇게 말을 한답니다. ‘너무 사랑해서 그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