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에서 민주노총 소속 노동조합이 출범했다. 포스코는 1988년 조합원 1만8천 명인 노조가 3년 만에 와해된 후, 30여 년 동안 사실상 무노조 경영을 이어왔다. 금속노조 포스코지회는 지난 9월 출범 이후 포스코의 노조 탄압 의혹 문건을 폭로하고 사내 부당노동행위·인권침해 의혹도 제기하며 본격적인 노조 활동을 시작했다.
새노조 출범 전에도 기존 노조(포항제철노조)를 재건하려는 노력이 있었다. 노조 와해 사건 이후 조합원이 대거 탈퇴했지만, 노조에 잔류한 일부 노동자들은 징계를 받았고 결국 노조는 10여 명 규모로 ‘휴면노조’ 상태로 운영됐다. 복수노조 제도 시행(2011년) 전 노동자들은 휴면노조 상태의 포항제철노조를 재건하려 했으나, 이들은 인사발령, 징계 등을 받았다.
협력업체 노동자 투쟁으로 박태준 전 회장 노조 인정
1988년 노조 설립 시도하자 구사대 300명
위원장 직선제 이후 본격적인 노조 활동…91년 사복 출퇴근 투쟁
91년 노조 와해 사건 전말
포스코(당시 포항제철) 첫 노동조합은 1988년 6월 29일에 설립됐다. 포철노조는 협력업체와 계열사의 투쟁으로 박태준 전 회장이 노조 설립 인정 담화문을 발표하며 설립됐다.
앞서 협력사 노동자들의 노조 설립 시도가 있었다. 포항제철 협력업체(제철정비, 삼풍공업, 선일기업) 노동자 76명은 1988년 6월 27일 오전 9시, 포항시청에 노조 설립을 신고하려 했다가 회사 직원들에게 저지당했다. 이들은 같은 날 오전 11시 20분경 평민당 포항지구당사에 들어가 농성을 시작했다.
당시 <한겨레> 보도를 보면, 다음날 새벽 2시, 구사대 3백여 명이 당사에 난입해 당사 지붕 등을 부수고 농성 중이던 노동자를 모두 끌어냈다. 노동자 10여 명이 중 경상을 입었다.
평민당은 당시 최영근 부총재를 단장으로 현지 조사단을 파견했고, 정부가 나설 것을 촉구했다. 사태가 확산되자 29일 박태준 전 회장은 노조 설립 인정 담화문을 발표했고, 포항제철소 직원 노조인 포철노조도 이날 설립됐다.
박태준 회장은 담화문에서 “본인은 노조가 없이도 직원의 권익이 보호되고 원만한 노사협의가 유지된다면 그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라며 “본인의 노력이 직원들의 자유로운 노조활동을 탄압한다면 불신의 소지를 불식할 것”이라고 밝혔다.
포철노조는 1990년 3기 위원장 선거에서 직선제를 도입했고, 조합원 53.1%의 지지를 받은 박군기 위원장을 선출했다. 위원장이 활동을 시작하자 포항제철소와 정부의 노조 탄압이 심화됐다. <한국경제>는 안기부가 노조원을 불법 연행했다고 보도했다. (한국경제, 1990.10.09 보도)
1990년 12월, 노조는 현대중공업, 대우자동차 등 16개 대기업노조 연대회의에도 가입했다.
정부와 포항제철소를 자극했던 사건은 1991년 1월에 일어났다. 서울대 보건대학원이 포항제철소 작업장에서 발암물질이 다량 검출됐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자(서울신문, ‘「포철 발암물질」 공방 가열’, 1990. 12. 27) 노조는 사복을 입고 출퇴근을 하는 ‘준법 투쟁’을 벌였다.
당시 노조 대의원이던 한 포스코 해고자는 “코크스(석탄 가공물) 공정에서 발암물질이 다량 검출됐다. 노조는 항의 차원에서 출퇴근 시 입게 돼 있던 제복을 입지 않고 사복을 입었다. 이 일로 대량 징계를 받았다”라고 설명했다.
회사는 조합원들에 대한 징계를 이어갔지만, 조합원 규모 2만여 명에 달했던 포철노조가 본격적으로 와해된 것은 노조 준법투쟁 직후인 1월 중순 노조 간부가 사기 혐의로 구속되면서부터다.
노조 법제안전차장 서모 씨는 납품업자 송 모 씨로부터 뇌물 수수 혐의를 받았다. 해당 사건으로 당시 노조는 도덕성에 타격을 받았고 조합원 대부분이 탈퇴했다. 당시 박군기 위원장도 같은 해 2월 사퇴했다. 하지만 송 씨는 이후 이 사건이 사측이 사주한 것이라고 밝혔다.
송 씨는 1994년 11월 월간 <말> 인터뷰에서 포항제철의 사주를 받아 노조 와해에 나섰다고 양심선언 했다. 송 씨는 회사의 공작금을 지원받고 서 씨 등 노조 간부들에게 접근했고, 사석에서 노조 간부들과 친분을 다졌다. 송 씨는 이후 노조 간부들에게 납품업자로 자신을 지목해달라고 요구했고, 노조 간부들은 1990년 11월 납품업자 선정위원회에 참여해 송 씨를 납품업자로 지목했다. 하지만 이는 회사가 기획한 것으로, 회사 측 선정위원 4인은 송 씨 납품업자 선정에 반대했다. 회사는 송 씨에게 노조 간부 고발을 사주했고, ‘비리’ 의혹이 불거지게 됐다.
포철노조 전 대의원은 “납품비리 사건 이후 포스코가 조합 탈퇴 압력을 가했다. 사원 병역혜택을 취소하겠다고 하고 주택융자지원도 안 하겠다고 압박했다”라며 “포항 사는 사람한테 광양에 보내겠다고도 협박해서 석 달 만에 1만 8천여 명이 대거 탈퇴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당시 탈퇴는 부끄럽게 여겨졌지만, 남은 조합원에 대한 징계와 탄압이 더욱 컸다. 너무 많은 조합원이 탈퇴해서 대거 탈퇴해서 남아 있는 사람이 이상하게 여겨질 정도”였다고 말했다.
노조 와해 이후 사내에서는 노조 재건 움직임이 있었다. 복수노조제도가 2011년 7월부터 시행됐기 때문에, 사내에 조합원 10여 명 규모의 노동조합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노조를 설립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앞서 88년 한국노총 소속이었던 포항제철노조는 와해 사건 이후 기업노조로 전환됐고, 사실상 휴면노조 상태를 유지했다. 당시 상황에 대해 한국노총 한 관계자는 “조합원이 9명까지 줄어들었다. 조합비를 의무공제 해야 하는데 내부 관계 때문에 조합비를 내지 않아서 (한국노총에서 노조가) 자동 제명이 됐다”라고 설명했다.
2003년, 노동조합정상화추진위원회(노정추)가 결성돼 노조 재건 운동을 시작했으나, 이들도 징계 등 조치를 당했다. 금속노조에 따르면, 노정추 회원들은 2006~8년 사이 가족 회유, 부당 인사 발령, 정직 등 징계를 받았다.
2018년 금속노조 소속 포스코지회 출범
“노동자 몰아세우는 회사에 불만 누적”
한국노총도 조합원 모집 가세
2018년, 포스코 내 군사문화, 산업재해 위험, 경영진의 부실한 회사 운영 등 문제가 이어지자 금속노조 포스코지회가 출범했다.
이후 회사의 부당노동행위·인권침해 사례를 폭로했다. 생산 장애가 생겼을 때 책임자를 색출해 책임을 지우는 ‘반성회’가 운용되고 있으며, 봉사활동이나 축구 경기 등에 강제동원이 빈번했다는 내용이다.
포스코지회 한 관계자는 <뉴스민>과의 통화에서 “과거에도 노조 설립 시도는 많았지만, 정부가 바뀌었고 삼성 등 다른 대기업에서도 부당노동행위가 드러나고 인정되는 걸 보며 용기를 얻었다”라며 “사내에는 반성회뿐만 아니라 시스템 자체가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묻는 방식으로 돼 있다. 경영과 회사 구조의 문제도 있는데 거기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반성회가 대표적이고, QSS(Quick Six Sigma)라고 회사 생활 매 순간 생산 방식 개선에 몰두하도록 하는 시스템도 있다. 이런 회사 시스템에 대한 사내 불만이 누적돼 노조 필요성을 공감하는 사람이 많아졌다”라고 설명했다.
한국노총도 조합원 모집에 나섰다. 사실상 휴면노조였던 포항제철노조는 지난 9월 노조 위원장 사퇴 이후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했다. 비대위는 한국노총 금속노련과 함께 포스코노조 재건추진위원회를 만들어 조합원을 모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