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자와 재벌 등 교육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교육에 관여하면 안 됩니다. 다행히 박정희는 어쨌건 간에 학교의 외형을 키워 놓기는 했으니까 그것을 기회로 박근혜가 이를 사유화 하려는 생각을 하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공명한 자세로 돌아가기를 바랍니다.”
3일 오후 2시 대구시 대구향교 유림회관 ‘(구)대구대와 한국현대사’를 주제로 강연에 나선 최염(86) 씨는 이렇게 말했다. 최 씨는 영남대의 전신인 옛 대구대학 설립자인 최준(1884~1970) 선생의 손자다. 경주최부자민족정신선양회, 영남대정상화대책위원회 주최로 열린 강연에는 서훈, 이부영 전 국회의원, 정지창 영남대 전 부총장 등 400여 명이 참석했다. 강연이 대구향교에서 열린 것도 대구대학 설립 당시 모금에 참여한 대구경북지역 유림가문이 뜻을 모았기 때문이다.
최 씨는 “박정희 정권은 청구대학과 대구대학을 강제로 탈취하여 영남대학으로 합병한 것도 모자라 스스로 돈 한 푼 낸 것 없이 막강한 권력만으로 대학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교주(校主)라는 이름을 대학 최초로 쓴 유일한 사람이 박정희이기도 하다”며 “ 1980년 박근혜가 이사장에 취임한 다음 해에 정관 1조를 개정하여 ‘교주 박정희 선생의 창학정신에 입각하여…’라는 식으로 변경하였다. 사유화를 위한 포석은 물론 대한민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부끄러울 큰 사건이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영남대를 운영하는 영남학원 정관 제1조에는 ‘이 법인은 대한민국의 교육이념과 설립자 박정희 선생의 창학정신에 입각하여 교육을 실시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돼 있다.
최 씨는 “박정희는 삼성으로부터 학교를 가로챘을 뿐이고 박근혜는 또 다른 군사 쿠데타의 주역인 전두환으로부터 학교를 선사 받았을 뿐이면서도 대학설립자도 모자라 ‘교주’라는 표현을 쓰고 수십 년간 학교가 자신의 것인 양 재단이사들을 임명해 온 것은 납득이 되지 않는 일”이라고 말했다.
최 씨는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학교를 되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든 학교법인을 설립했다고 해서 그 자손이 언제까지라도 운영주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할아버지께서 당신 자신에게조차 냉엄하게 지키셨던 뜻”이라며 “대구시민과 경북도민의 대학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합니다. 혹은 ‘대구시립대학’이나 ‘경북도립대학’으로 재편되어 서울시립대학처럼 올바른 인재들이 등록금 부담 없이 마음 놓고 공부할 수 있도록 조성되는 것이 가장 좋은 방안”이라고 말했다.
영남대는 1967년 옛 대구대학과 청구대학을 통합해 설립했다. 대구대학은 1947년 독립운동을 한 최준 선생의 주도로 뜻 있는 유림들의 모금으로 ‘민립 대학’으로 출범했고, 청구대학은 최해청(1905~1977) 선생이 시민대학으로 설립했다. 1960년대 “한수(한강) 이남에서는 제일 좋은 학교로 가꾸겠다”는 삼성그룹 이병철의 제안에 대구대학 운영권을 넘겼다. 그런데 이병철이 청구대학 경영권을 가진 박정희에게 넘기면서 영남대 설립자로 박정희가 등장한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1980년 4월 영남학원 이사장을 맡았다가, 학내 반발이 심해지자 이사장에서 물러난 후 이사로 있었다. 그러나 입시 부정 사태가 터지면서 1988년 11월 이사 자리에서 물러났고, 영남학원은 관선·임시 이사 체제로 운영됐다. 하지만 2009년 6월 교육부 사학분쟁조정위원회가 설립자의 유족이자 종전 이사라는 이유로 박 전 대통령에게 영남학원 이사 4명(전체 7명) 추천권을 다시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