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가 시작됐다. 지난 학기 대자보와 시위가 벌어졌던 한동대학교(총장 장순흥) 모습은 사라졌고, 대자보가 있던 자리에는 동아리 리쿠르팅 포스터가 자리하고 있었다.
대자보 도장 받으러 갔더니…“안 된다”
페미니즘 강연 징계 사태 후
집회 규정에 주의사항 생겨
“기독교 정신 부합…어길 시 중단”
‘젠더’, ‘퀴어’ 등 발언 자기검열도
지난 4월 한동대 재학생 십여 명이 모여 ‘그래도, 내사랑 한동’을 결성했다. 페미니즘 강연 후 벌어진 학생 징계를 비판하는 활동을 시작했다. 이들은 징계가 사상 검증 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징계를 결정한 보직교수들의 사퇴를 요구했다.
한동대는 지난해 12월 학생학술모임 ‘들꽃’ 주최로 열린 페미니즘 강연을 ‘동성애 가득한 모임’이라고 규정하고, 학생 5명에게 진술서를 요구했다. 5명 중 1명인 석지민(27) 씨는 최종 무기정학 처분을 받았다.
징계통지서에 적힌 징계 이유는 ▲교수에게 부적절한 언행을 한 점 ▲학생처가 불허한 강연을 강행한 점 ▲기독교 이념을 따르는 본교 이념과 반대되는 강연 실황을 중계한 점 ▲언론 인터뷰 등으로 학교 명예를 손상한 점이 이유였다. 학교는 교육부에 보낸 답변서에 석 씨의 성적 정체성을 “학교의 교육이념으로 용납될 수 없”다며 문제 삼았다.
당시 이찬석(25) 씨는 징계 사태를 비판하는 대자보를 썼다. 지도교수 날인을 받은 대자보를 들고 학생처에 갔지만, 승인을 받지 못했다. 같은 시기 익명을 요구한 A(23) 씨도 지도교수 날인을 받은 대자보를 학생처에 들고 갔지만, 역시 승인받지 못했다.
이 씨는 대자보 승인 거절 이유조차 듣지 못했다. “안 된다”는 말만 들었다. 대자보에 함께 적힌 지도교수 이름이 무색해졌다. A 씨는 “학생들이 너무 학교 마음을 몰라준다”, “그들(징계 대상자)을 구제하려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동대학교 학생간행물발간규정에 따르면, 대자보는 내용 원고를 첨부해 지도교수나 학과(부)장 승인을 받아 학생처장에게 제출해야 한다. 학생처장은 게시를 허가하는 검인을 날인한다. 이단 종교 관련 내용이나 상업적인 홍보물은 허가하지 않는다.
규정에 따라 지도교수 날인을 받은 대자보는 학생처장이 게시 허가만 하면 된다. 내용 확인을 마친 대자보를 학생처에서 거부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던 두 사람은 결국 ‘허가받지 않은’ 대자보를 붙였다.
이 씨는 “지도교수에게 내용을 확인받는 것도 웃기지만, 절차를 지키기 위해 (지도교수의) 사인받은 것도 거부됐다. 그냥 붙이면 징계하겠다고 하는 식이었다”며 “80년대도 아니고 학교에 비판하는 목소리를 대하는 방식이나 과정이 너무 저열하다”고 꼬집었다.
A 씨도 “학칙에도 학생처장의 권한은 지도교수나 학부장 교수에게 사인받은 홍보물은 날인하는 거라고 돼 있다. 그런데도 이런 내용은 안 된다며 학생처장 선에서 잘랐다”며 “전반적으로 (학생들의 목소리가) 제한되고 있는 거 같다. 사실 모두 이해할 수는 없지만, 순종적인 것이 덕목이 되는 분위기도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지난 5월 학내 가두시위를 벌이기도 하고, 징계 대상자와 함께 토크 콘서트도 진행했다. 학교에 징계가 부적절하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전하고 싶었으나, 돌아온 것은 규정 위반 통지서였다. 지도교수와 학생처장이 승인하지 않은 집회를 연 것이 징계 사유였다.
지난 2월에는 학생 집회 규정에 “한동대가 추구하는 기독교 정신 교육목적에 부합할 것”이라는 주의사항이 더해졌다. 이를 위반하면 학생처가 집회를 중지할 수 있다. 신학교가 아닌 한동대의 기독교 정신은 누가, 어떻게 정할 수 있을까.
가두시위와 토크콘서트에 참석했다가 규정 위반 통지서를 받은 류태광(26) 씨는 “기말고사를 앞두고 통지를 받아서 스트레스가 심했다. 지도교수님께서 의견서를 제출하지 않긴 했지만, 학교가 이대로 가는 게 맞는가 생각이 들었다”며 “기독교의 정체성, 퀴어나 페미니즘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없는 분위기가 됐다”고 말했다.
이번 2학기에 신설된 과목 ‘젠더포용적 공학 입문’은 ‘여성관점 공학 입문’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한동대 커뮤니티에 게시된 과목 소개 글에도 “본 과목 젠더란, 다양한 성적지향성과는 관련이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이 글이 게시되자 성소수자를 반대하는 기독교 커뮤니티에서 공격을 받았다.
류 씨는 “페미니즘을 이야기해도 선별적으로 이야기해야 한다. ‘성평등’은 안 되고 ‘양성평등’은 된다는 식이다”며 “학생들도 교수님들도 점점 자기검열이 심해진다”고 꼬집었다.
6일 한동대 캠퍼스에서 만난 B(25) 씨도 “대자보를 쓰더라도 긍정적인 대자보일 수도 있는데, 글을 쓰는 사람도 신변에 위협을 받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가지게 된다”며 “사실 ‘폴리아모리’라는 단어도 수업시간이나 동아리 모임에서 사용하는 걸 꺼리게 된다. 수업을 하고 공부를 하다 보면 그런 주제가 다뤄질 수 있는데, 교수님들도 피하려고 하는 거 같다”고 말했다.
기독교 정신 누가, 어떻게 정할까
“합의된 것 없고, 생각 다를 수 있어”
학교 통제에 자퇴 결심한 학생도
B 씨는 “기독교 정신이라는 것을 학생들에게 물어본 적도 없고, 합의하지도 않았다. 물론 그게 성경의 관점이라고 하지만, 기독교 신자라고 해도 생각이 다 다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페미니즘 강연 후 사건 진술서 제출 요청을 받은 5명 중 한 명인 김호수(23) 씨는 결국 자퇴를 결심했다. 3학년 1학기를 마친 김 씨는 휴학계를 내고 해외로 유학을 떠났다. 학교는 김 씨가 SNS에 강연 후기를 쓴 이유에 대한 진술을 요구했다.
김 씨는 “겨울방학 내내 학생처에서 전화가 왔었다. ‘다른 학생에게 물들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 ‘네가 하는 일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등 다그치는 말을 많이 들었다. SNS와 관련해서는 명예훼손을 걸 수도 있다고 했다”며 “이런 상황이 계속 반복됐다. 한 가지를 해명하면 또 다른 게시글을 끄집어내 해명하라는 식으로 끝이 없어 보였다. 어떻게든 저에게 압박을 가하려고 하는 것이 두려웠다”고 말했다.
김 씨는 “기독교가 추구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를 완전히 잊은 채 학생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통제하는데 급급한 한동대의 모습에 크게 실망했다”며 “표현의 자유나 민주주의, 헌법과 같은 단어를 꺼내는 것조차 망설여진다. 이런 권위적인 공간을 어떻게 하나님의 대학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갈수록 의문이다”고 말했다.
반면, ‘기독교적 제한’이 필요하고 주장하는 학생도 있었다. 이날 학교에서 만난 C(24) 씨는 “요즘 학교에서 좀 예민한 문제라 대놓고 말하긴 어렵다. 의견이 정말 다양하다”면서도 “한동의 가치만 따지면 오히려 강경하게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C 씨는 “물론 ‘기독교는 어떻다’라고 정의할 수는 없을 거 같다. 어떤 자유이든 비판받기보다 우선 들어보고 그 후에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면서도 “정말 누가 봐도 아닌 이단의 문제 등을 아무런 절차나 규칙 없이 이야기해 버리면 곤란하다. 우리가 모든 의견을 안 된다고 하는 건 아니다”고 덧붙였다.
대자보·집회 사전 허가 괜찮을까?
인권위, “학생 게시물 불허는 표현의 자유 침해”
대한민국 헌법은 표현의 자유(제21조)를 보장한다. 모든 국민은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를 가지고, 이를 허가하거나 검열하는 것은 인정되지 않는다.
세계인권선언 역시 사람은 누구나 의견 및 표현의 자유를 누릴 권리를 가진다(제19조)고 명시했다. 간섭받지 않고 의견을 지닐 자유도 포함된다.
고등교육법은 학생의 자치활동을 권장, 보호하고, 그 세부사항은 학칙으로 정하도록 한다. 한동대는 학칙 제2조에서 “대한민국의 교육이념에 입각하여 국가사회 및 기독교적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하여 지성·인성·영성의 고등교육을 실시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밝혔다.
지도교수에게 승인받은 대자보 게시를 거부하는 것 또는 대자보 게시와 집회 주최를 허가하는 것은 헌법과 법률에 어긋나지 않을까.
권영국 ‘한동대 학생 부당징계 공동대책위원회’ 상임대표(경북노동인권센터장)는 “대자보에 도장을 찍게 만드는 거 자체가 검열에 해당한다”며 “단순히 장소를 일정하게 제한하는 시설관리권 차원을 넘어서 승인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헌법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권 상임대표는 “기독교 교리에 대해서도 논쟁이 가능하다. 그것을 금지하거나 배척하지 않고 공론의 장에서 다루고, 누가 타당한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교육의 목적에 부합한다”며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듯이 표현의 자유도 같은 기본권으로서 지켜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올해 1월 국가인권위원회는 강원도 한 중학교가 학생이 게시한 게시물을 불허한 진정 사건을 표현의 자유 침해라고 결정한 바 있다. 인권위는 “학생이 학교 안에 게시물을 게시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 행사이며, 학교의 불허는 기본권 제한에 해당한다”며 “교내 게시물 게시 원칙을 정함에 있어서 학생들의 의견도 충분히 수렴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교육부 고등교육정책실 관계자는 “학교 측은 건학이념에 위배되는 걸 그냥 둘 수는 없다는 입장이고, 학생과 입장이 첨예한 상황이다”며 “해당 학칙이나 행위가 명백히 법에 위배된다면 교육부 차원에서 조처를 할 수 있지만, 헌법에서 대학의 자율성 또한 보장하고 있어서 신중하게 판단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뉴스민>은 지도교수 승인받은 대자보를 불허한 이유와 학내 표현의 자유가 침해된다는 주장에 대해 학생처의 입장을 확인하려 했다. 학생처장실 관계자는 “학생지원팀에 문의하라”고 답했고, 학생지원팀장은 자리를 비웠다는 이유로 연락이 닿지 않았다. 대외협력실 역시 <뉴스민>과 통화에서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답변했고, 현재(9월 7일)까지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