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돋보기] 왜 생리대를 까만 비닐봉지에 담아줬을까

21:00

국민안전처에서 적십자 재해구호물자에서 생리대를 제외하는 2016년 7월부터 시행하는 시행규칙 개정안을 제출한 적이 있었다가, 최근 다시 검토하면서 다행히도 생리대가 포함됐다.

세상 절반의 사람들이 생리를 경험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생리는 매우 불편하나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세상 구성원 절반의 사람들이 피해갈 수 없는 불편한 생리현상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인식은 어느 정도 수준일까 고민해봤다.

국민안전처는 생리대를 필수 구호물품 목록에서 제외한 이유에 대해 유효기간이 짧고 생리대는 각자의 취향을 반영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 대답에 공감할만한 여성은 많지 않을 듯하다. 생리대는 보통 2~3년을 사용기한으로 보고 있으며, 아무리 취향이 중요하다 하더라도 긴급 재해 상황에서 취향을 주장하면서 생리대를 바꿔 달라는 여성은 없을 것이다.

또, 남성에게 필수적으로 지급하는 목록에 포함된 면도기 역시 취향과 수염 스타일에 따라 다르게 선택하지만 이를 이유로 배제하지는 않았다. 더 험하게 오해하자면, 여성은 산사태가 나고 불이 나고 홍수가 덮쳐도 생리를 하지 않거나, 생리를 하더라도 자급할 수 있는 요긴한 물건을 언제나 구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인가 싶다.

국민안전처에서 해당 정책을 제안하고, 결정한 자가 과연 여성이었을까 의문을 제기해본다. 여성이라면 이끌어낼 수 없는 조치라고 판단된다.

2016년 마음을 아프게 한 뉴스 중 하나가 ‘깔창 생리대’였을 것이다. 청소년들이 생리대 살 돈이 없어서 운동화 깔창으로 생리대를 대신한다고 했다. 생리를 처음 시작하는 시기는 주로 사춘기다. 사춘기의 정서적 예민함에 대해서 우리는 더 들여다보지 않았다. 단순히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된 대한민국 사회에서 가난한 아이들이 세상에 생리대 살 돈이 없어서 깔창으로 대신했다.’는 경제적 빈곤에만 초점이 맞추어져서 다루어지고 있었다.

생리대 살 돈이 없어서 겪었을 좌절감과 생리대를 깔창으로 대신하고 있을 때의 수치감과 불편함까지 들여다보지 못했다. 무상급식까지는 아니더라도 학교 보건실이나 학교 밖 청소년들이 이용하는 복지시설 등에서는 생리대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정책 정도는 나왔어야 했다.

2016년 구호물품에서 생리대 제외를 제안하고 있을 때 미국 뉴욕시의회는 학교, 교도소, 노숙자, 보호소 등 여성 위생용품을 무료로 배치하자는 안건을 만장일치 통과시켰다. 빌드라시오 뉴욕시장은 생리대에 부과하는 세금을 없애면서 이를 반대하는 이들에게 “생리대 등은 사치품이 아닌 필수품이다. 지금까지 여성은 필수품에 대해 부당한 세금을 부담해오고 있었다. 부당한 제도를 개선하는 것은 사회적, 경제적 정의에 관한 일이다”라며 반대 의견을 일축했다.

미국이 선진국이기 때문에 위와 같은 정책을 통과시켰다고 보지 않는다. 인권 강의를 가면 소수자 차별을 이야기하기 전에 남성들에게 가끔 질문한다. “생리하는 여성이 하루에 사용하는 생리대 개수가 몇 개 정도 된다고 생각하세요?”

남성들의 대답은 천차만별인데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잘 모른다’, ‘생각해 본 적이 없다’이거나 ‘1~2개?’의 경우다. 100번 질문하면 정답을 말한 남성은 2~3명 정도에 불과했다. 아마 주변에 있는 남성에게 같은 질문을 던져보면 금방 증명될 것이다. 이 질문을 하는 이유는 무지가 가지고 올 수 있는 편견과 그에 따른 차별을 알리기 위해서다.

▲생리와 생리대는 여성에게 감춰야 하는 것으로 여겨져왔다. [사진=ⓒ오마이뉴스]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학교는 초경이 다가오는 학생을 대상으로 생리대 사용 교육을 했다. 대부분 여성은 기억날 것이다. 학교 시청각실 같은 곳에 여학생들을 몰아넣고, 남학생들은 그 시간에 축구를 하도록 분리했다. 임신과 출산, 처녀막이 파괴되는 경우와 조심하는 방법, 생리대 사용법과 처리법 등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지고 돌아갈 때 아이들에게 생리대 샘플을 손에 쥐여주는 식이었다. 교실로 돌아가서도 절대 무슨 교육을 받았는지 이야기하지 않고 새침을 떼고 있어야 했다. 아마 그 상황에서 “야 생리대 교육받았는데, 하루에 생리대를 많게는 10개 가까이는 교체해야 한다더라, 너무 비싼 거 아니야?”라고 떠드는 여학생이 있다면, 조신하지 못하고 매너 없는 푼수로 취급받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우리 삶을 돌아보면, 슈퍼마켓에 남성 사장이 있으면 지나쳐서 조금 더 가격을 주고 여성이 약사인 약국에서 생리대를 샀다. 그 약사는 약국에서 잘 쓰지도 않는 까만 비닐봉지를 꺼내서 절대 들키면 안 되는 물품처럼 생리대를 담아 주었다. 생리대가 여성의 생리와 함께 남성들이 알면 안 되는 것으로, 여성이 지켜나가야 하는 부끄러움과 고귀한 것으로 취급되면서 아이러니하게 차별이 시작됐다.

그리하여 남성은 남성대로 ‘하루에 한두 개면 충분할 생리대를 깔창까지 깔아가면서 쓰느냐’, ‘보건실 가서 한두 개 달라는 게 그렇게 어렵냐’는 태도를 드러내게 됐고, 여성은 여성대로 마음은 쓰이고 아프지만 대 놓고 ‘그건 잘못됐다’, ‘생리대를 제대로 사용하게 지원하라’고 큰 소리내기에 주저하게 됐다. ‘생리’와 ‘생리대’는 까만 비닐봉지로 가려야 하는 부끄러움의 영역이었기에 주저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만약, 국민안전처 담당자가 하루에 여성이 생리대를 얼마나 쓰는지 알고 있었다면, 청소년 보건정책 담당자가 여성 청소년이 생리대를 구매하는 데 따르는 비용과 심리적 상황을 고려했다면 어땠을까.

다행히 생리대는 구호물품에 다시 포함됐다. 하지만 청소년의 깔창생리대는 여전히 답보 상태다. 어느 정책에서도 생리대에 부과하는 세금의 부적절함이나 생리대 지원에 대한 논의가 적극적으로 진행되지 않았다.

그동안 몰랐기 때문에 발생한 인권 침해가 많았다. 생리와 생리대는 여성에게 이야기 꺼내는 것이 금기시됐고, 남성은 여성에 대해 알 수 없는 환경이었다. 이제는 근거 없는 관습과 터부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세상의 반이 겪는 생리 현상에 필요한 상황과 물품에 대한 편견으로 발생하는 차별을 거둬들일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