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백 원만~”하던 시절이 있었다. 백 원이면 학교 앞 분식집에서 십 원에 떡 하나씩 치는 떡볶이를 사 먹을 수 있고, 연탄불에 쫀득이, 쥐포, 달고나도 할 수 있었다. 오락실에서 보글보글, 너구리도 한 판씩 하고, 구멍가게에서 깐도리, 아폴로도 사 먹고 뽑기도 할 수 있는 제법 큰돈이었다. 백 원, 요즘에는 사탕 하나 사 먹기 힘든 돈이지만 그때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든든한 ‘자금’이었다. 이제 백 원은 고사하고 천 원으로도 턱없이 부족하지만.
아이가 부모와 떨어져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생기면서 용돈을 줘야 하는 일이 늘어났다. “백 원만” 하던 아이가 “얼마 필요해?”하는 어른이 되어버린 것이다. 보통 천 원 정도를 주는데 생각보다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그래도 할인을 많이 하는 아이스크림은 한 두개 사 먹을 수 있지만, 봉지만 빵빵한 ‘질소과자’, 음료를 파는 건지 장난감을 파는 건지 모를 음료수는 ‘그림의 떡’에 불과했다. 친구들과 용돈을 모아 ‘공동구매’를 하기도 하고, 동네마트에 적립해놓은 포인트를 야금야금 쓰기도 했지만, 항상 모자라고 여전히 배고팠다. 체크카드에 용돈을 넣어줄까 생각도 해봤지만 금방 잃어버릴 것 같았다.
필요할 때마다 용돈을 타서 쓰던 아이는 쪼들렸는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어느 날 ‘용돈 모으기 표’를 만들더니 대가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나름 인생 최초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셈이다. 집 안 심부름 200원, 영어 공부하기 300원, 목욕하기 500원, 동생 돌보기와 거실 정리하기는 600원이다. 책상 정리하기 700원, 빨래 개기와 베란다 청소하기는 제일 높은 금액인 1000원이다. 베란다 청소하기에 주의사항으로 ‘깨끗하게’가 명시되어 있다.
화장실 청소하기도 넣었다가 위험하고 아이들이 할 일이 아니라는 만류에 빼기도 했다. 용돈 모으기 목록에 있는 일들은 평소 하기 싫어하는 일이다. 당연히 하기 싫은 일일수록 금액이 높았다. “백 원만” 하던 시절에는 흰머리 하나 뽑으면 십 원, 신발 정리하면 몇십 원 받는 게 용돈벌이의 전부였는데 글로벌 시대(?)에 맞게 집안일 아르바이트도 다양해지고 규모가 많이 커졌다.
그 후로 아이는 뭔가를 해야 할 때마다 틈만 나면 “얼마 줄 거야?” 되물었다. ‘용돈 모으기 표’를 대단한 계약서라도 되는 양 들이밀면서 말이다.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은 용돈을 주는 것이 부당하다고 호소했지만 소용없었다. 어떻게든 용돈을 모으겠다는 의지는 단호했다. 본인의 힘으로 사고 싶은 것을 꼭 사고야 말겠다는 계획도 있었다. 그래서 약간의 불만도 있었지만 기특하기도, 재밌기도 해서 아르바이트에 협조하기로 했다. 때로는 옥신각신 실랑이가 있고 ‘네고’를 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한동안 용돈 모으는 재미가 쏠쏠해 보였다. 뭘 해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부모자식 간에도 계산은 철저했다. 간식 사 먹으라고 준 돈은 또 딴 주머니를 차면서 말이다. 하루하루 정산을 하고, 목표액에 얼마를 달성했는지 점검했다. 장부를 작성하며 기뻐했고, 쌓여가는 저금통을 보며 만족했다. 정말이지 대단한 부자라도 될 기세였다. 빨리 돈 모아서 엄마아빠도 맛있는 걸 사달라고 엄살을 부리면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서는 걱정 말라며 호언장담을 했다. 혹시 또 아는가? 정말 부자가 되면 콩고물이 떨어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딸의 아르바이트는 얼마 가지 않았다. 한동안 악착같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돈을 모으더니 흥미를 잃은 듯했다. 굳이 돈을 벌지 않아도 엄마아빠가 원하는 것을 해준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장난감을 사 달라 조르면 못 이긴 척 하나만 사준다 했다. 치과 가기, 숙제하기와 같은 싫어하는 일을 할 때면 달콤한 제안을 하며 사탕발림을 했다. 먹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온갖 종류의 과자와 음료수로 싱크대와 냉장고가 터져 나올 지경이다. 가만있어도 다 해주는데 당연히 아르바이트를 할 필요가 없다. 가끔 돈 없다고 하소연하면 무슨 걱정이냐며 “카드 있잖아.” 할 지경이니 말이다.
풍요와 빈곤의 시대에 살고 있다. 물질이 넘쳐난다. 장난감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집안 곳곳을 어지럽히고 있고, 온갖 책들이 책장에 빽빽이 꽂혀 있다. 먹을 것은 넘쳐나서 반은 먹고 반은 버린다. 순간을 모면하는 데 필요 없는 것들을 너무 많이 사고 소비한다. 그래도 만족하기는 쉽지 않다.
항상 모자란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신상은 쏟아져 나오고 유튜브 채널에서는 자랑질하며 빨리 사라며 재촉한다. 과자도 장난감도 다 비슷한데 약간만 바꿔서 다르다고 한다. 희한하게도 자기에게 없는 것을 친구들은 꼭 가지고 있다. 끝도 없는 경쟁이다. 부모는 돈벌이에 아이들과 함께할 시간이 줄어드니 적절한 보상을 찾게 된다. 마음을 헤아리기보다는 적당히 때우기 바쁘다. 그래서 넘쳐나지만 모자라고, 풍요롭지만 또 가난하다. 거품 속에 허우적거리는 동안 누구도 만족을 모른다.
아이가 뭔가를 고를 때마다 “이거 비싼 거야?”라고 묻는다. 그렇게 돈, 돈 거리며 산 것 같지는 않은데 신경이 쓰인다. 솔직히 아이들이 원하는 많은 것들은 한 시간 꼬빡 일해도 벌기 힘든 돈인 것은 확실하다. 용돈 백 원이면 든든했던 시절보다 얼마를 손에 쥐더라도 넉넉하지 않다. 물가는 무서운 줄 모르고 수직 상승을 하는 동안 임금은 거북이걸음을 했다. 월급도 용돈도 아무리 벌어도 부족하다. 조금 더 넉넉해도 괜찮다. 물론 지금 용돈 모으기 아르바이트는 좀 과한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