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현재 지방대 철학과를 다니고 있는 예비 실업자, 취업란에 마땅히 쓸 것 하나 없는 한국의 평범한 이십대들 중 하나로, 이런 자기 팔자를 어떻게든 뜯어 고치려고 노력 중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 ‘욘수’가 격주 수요일마다 대화로 풀어가는 철학 이야기를 연재한다.]
“100번이 넘게 이력서를 쓰고도 아무런 대답을 듣지 못합니다. 단과대학 수석을 하고도 문전박대를 당합니다. 지방대학 출신이고 또 여자라는 이유로 낙방에 낙방을 거듭합니다. 4년 뒤에도 사정이 지금과 같을까요?”
“앞으로 있는 힘을 다해 공부하겠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해 해외연수도 다녀오겠습니다. 제발 일자리를 주십시오!
저희는 일하고 싶습니다!”
-2007년 3월 20일 한남대 헌혈 시위 선언문 중-
학벌주의가 심해졌으면 좋겠어요.
가끔 고대숲에 학벌 관련 얘기가 올라오면 아직도 학벌로 사람 따지는 경우가 있냐는 댓글이 많이 보여요.
저는 동의 못해요. 내가 어떻게 고대에 왔는데..
저는 학벌주의가 더 심해져서 sky 출신이 더 대접받았으면 좋겠어요.
아예 진출할 수 있는 직업군이 분류되면 더 좋고요.
예를 들면 공무원시험에서 특정 직렬은 어떤 학교 이상 졸업해야 시험을 볼 수 있게 하는 거예요.
안 그러면 공무원은 학벌세탁의 가장 좋은 수단이 되니까요.
기업에서도 대학 순으로 짜르고, 연봉도 대학순서로 정해서 저보다 낮은 대학 출신이
더 높은 기업에 입사하게 되거나 더 많은 돈을 버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노력해서 고대에 왔으니, 과거에 노력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좀 덜 대접받아도 되지 않나 싶어요.
저만의 생각인가요?
-2017년 11월 12일 고려대학교 대나무숲-
11-1. 차별을 원하는 사람들
나: 흠…두려움, 겁쟁이. 네가 하는 말을 들어보니 나도 생각나는 게 하나 있는걸?
남: 그래? 그게 뭔데?
나: 차별을 원하는 사람들.
남: 차별을 원하는 사람들? 그게 대체 누구지?
나: 학교에서 남들보다 몇 배로 노력하며, 노력은 그에 합당한 보상을 준다고 굳게 믿었던 사람들. 명문대 진학에 성공한 소위 ‘엄친아’들
남: 그 사람들이 차별을 원한다고? 너는 왜 그들이 차별을 원한다고 생각하는 거지?
나: 차별 대우를 받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노력했으니까?
남: 뭐?
나: 너도 잘 알다시피, 요즘 취직하기가 좀 힘드니? 일자리가 있어도 최저임금 이상 주는 직장은 찾기 힘들고, 괜찮다 싶은 직장은 대부분 비정규직만 뽑지. 그마저도 다들 못해서 안달이고.
이런 살벌한 상황에서 ‘자신이 남들과의 치열한 취업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확실한 믿음은 가지기 어려워. 당연한 일이지. 좋은 성적으로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높은 영어 성적과 자격증을 몇 개씩 가진 사람들이 취업 시장의 요구 이상으로 많으니까. 그래서 소위 사회에서 말하는 높은 학벌을 가진 사람일수록, 소속 대학을 기준으로 사회에서 차별 대우를 받길 원해.
남: 근거가 있어?
나: 물론이지, 구직자 1,381명을 대상으로 한 통계 자료에 따르면(출처 데이터뉴스, 학력 블라인드 찬반 통계) 구직자 중 74.2%가 ‘학력 밑 학벌 블라인드 채용 제도’에 찬성하고, 지방도시 소재 대학 출신 80.7%가 찬성한 반면, 주요 명문대들이 대거 위치한 서울 소재 대학 출신 구직자들은 66.2% 정도만 찬성했어.
남: 아니, 블라인드 채용에 대한 찬반이 차별 대우를 원하는 것과 무슨 관련이 있어?
나: 그건 블라인드 채용이 학벌에 따른 차별적 채용을 방지하기 위해서 만든 제도이니까.
남: 학벌을 기준으로 채용을 하는 것이 어째서 차별 대우라는 거지? 네 말대로 남들보다 몇 배는 더 열심히 노력해서 명문대를 졸업한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비명문대생들, 고졸 등도 포함)보다 취업에 더 많은 해택받는 게 당연한 것 아니야? 노력의 을 비교해, 혜택을 차등적으로 준다는 점에서 그걸 차별이 아닌 평등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점에서 블라인드 채용이 오히려 차별인 것 같아.
나: 흠…일단 학벌이 노력의 양을 측정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다 생각해. 설령 학벌이 노력의 양을 측정하는 기준이 된다 해도, 노력을 많이 한 것과 직장을 얻는 것에는 절대적인 인과관계가 없다고 생각하고. 이 두 가지 이유에서 학벌은 남들보다 더 좋은 직업을 얻을 수 있는 절대적인 기준, 즉 차별의 근거가 될 수 없다는 거지.
남: 아니 어째서? 노력엔 그만한 보상을 받아야 하잖아?
나: ‘남’ 너는 입시에 쏟아부었던 ‘노력’의 양을 근거로, 명문대생들에게 더 많은 취직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말했지?
남: 그랬지.
나: 상대적으로 명문대생들에게 취직 기회를 더 많이 준다는 건, 비(非)명문대생들에게 명문대생들보다 더 적은 취직 기회를 준다는 것이고.
남: 그렇지. 노력이 보상받도록 말이야.
나: 그럼 네가 말하는 그 ‘보상받아야 할 노력’의 기준은 뭐지? 네 말대로 입시를 위한 노력도 노력이지만, 대학에 들어간 후, 아니 설령 대학을 들어가지 않았더라도 취직을 위해 열심히 토익을 공부하고, 높은 학점을 받거나 희망 직업과 관련된 자격증을 따기 위한 노력들도, 네 말처럼 ‘보상받아야 할 노력’이 아닌가? 왜 입시를 위한 ‘명문대생들의 노력’만을 노력으로 인정하고 사회가 보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거지?
한남대 헌혈 시위에서 말하는, ‘취직을 위해 과 수석을 하고, 영어 점수를 쌓으며 이력서를 100번이 넘도록 쓰는 사람들’의 노력은 명문대생들의 노력보다 더 적다고 단언할 수 있는 거야? 과연 입시 성적이 모든 사람들의 노력을 객관적으로 측정하는 절대적인 평가 기준이 될 수 있을까?
남: 그건 아니지만…그래도 명문대를 들어가고도 높은 스펙을 쌓기 위해 노력하는 명문대생들이 대체로 스펙만 쌓는 다른 비(非)명문대생들보다 더 노력했다고 볼 수 있으니까…
나: 그래, 설령 네 말대로 명문대생들이 다른 비(非)명문대생들보다 더 노력했다 해도(1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 9를 노력해 9점을 받고, 10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 1을 노력해 10점을 받았다 치자. 현실에서 높은 학벌을 가진 사람은 1의 노력만으로 10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겉으로 드러난 점수만 보고 후자가 전자보다 더 많은 노력을 했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대체 왜 사회가 그 노력에 보상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거지?
남: 뭐? 당연한 것 아니야? 남들보다 더 많은 노력에는 반드시 남들보다 더 많은 보상을 줘야지!
나: 나는 취직, 또는 취직 기회를 보상을 보는 너의 관점 자체가 이해가 안 돼. 어떻게 직업이 보상이 될 수 있다는 거지? 직업은 보상이 아니라 ‘일’이야. 그것도 해당 분야에 따라서 각기 다른 능력과 다양한 능력을 요구하는 일.
예를 들어, 네가 지원한 직업이 외국인 바이어를 만날 일이 잦다고 치자. 그럼 너에겐 어떤 능력이 필요할까? 영어 능력, 수능이나 토익 성적이 아니라 영어회화 능력이 뛰어나야겠지. 외국인에게서 계약을 따내려면 제한 시간 안에 가장 많은 영어 문제를 풀고 맞출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한 게 아니라, 상대를 정면으로 보고 일대일 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니까.
그렇다고 영어회화 능력만 뛰어나면 그 직업에 적격인 걸까? 아니지. 외국인 바이어와 대화가 가능한 것만이 목적이 아니라, 대화를 통해 네가 속한 회사에 최대한 이익이 되는 쪽으로 계약을 성사시키려면, 타인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설득할 수 있는 ‘설득의 능력’이 필요하지.
그런 능력을 가지려면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서 어떤 말을 해야 바이어가 나의 제안을 받아들일지 스스로 알 수 있게끔 만드는 ‘공감 능력’, 처음 만난 사람을 낯설어하지 않는 동시에 상대방이 부담감을 느끼지 않고 자신과 비즈니스에 관심을 가지게 만드는 ‘친화성 능력’, 업무 대화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상대가 대화를 지루하게 느끼지 않게 만드는 ‘재치 있는 대화 능력’ 등이 필요하고.
외국인 바이어를 상대한다는 이 ‘일’ 하나를 잘하기 위해서도 이렇게 많고 다양한 능력이 필요한데, 단순히 남들보다 노력을 더 많이 했다는 이유만으로 회사가, 더 나아가 사회가 명문대생들에게 기회를 몰아줘야 한다는 말이야?
직업은 보상이 아닌 일이야. 그리고 일은 당연히 ‘그 일을 가장 잘할 수 있는 사람에게 먼저’ 주어야 하고. 과연 학벌이, 다른 직업마다 각기 다른 능력을 요구하는 사회의 요구를 온전히 충족시킬 수 있을까?
너는 정말 학벌이라는 단 하나의 기준이 다양한 직업이 요구하는 모든 능력들을 충족시킬 수 있다고 생각해? 언제나 서울대 나온 사람의 노동이 지잡대 나온 사람의 노동보다 더 많은 효율을 내니? 글쎄, 내가 알기론 공사판에서 일하는 명문대생의 노동 대비 성과가 지잡대, 고, 중졸들의 노동 대비 성과보다 더 많은 것 같지는 않던데?
남: 그래도 최소한 과거 명문대생들의 노력을 고려해서도, 비슷한 능력을 가진 경우 명문대생들이 우선적으로 선발될 수 있게끔, 적어도 대학에 따라 가산점이라도 부여해줘야지.
나: 그러니까, 대체 누가 ‘입시를 위해 했던 너의 노력을 보상해준다.’고 약속했어? 너는 왜 사회가 차별을 해서라도, 명문대생들의 이익을 보장해야 한다고 믿는 거지? 대체 누가 너에게 높은 학벌을 가질수록 남들보다 더 많은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그런 절대적인 믿음을 준거지?
남: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어…엄마? 그리고 학교 선생님?
나: (매우 깊은 한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