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돋보기] 그녀가 20년째 외국 항공사 승무원으로 일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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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국외여행할 때 국적기를 이용했다. 승무원의 서비스는 감사할 정도였다. 나보다 더 얇은 허리와 손목으로 나조차도 제대로 들지 못하는 캐리어를 번쩍 들어 옮겨주기도 하고, 기류가 심한 상황에서도 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기내서비스를 제공해주었다.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이 효도관광을 가시는지는 모르겠으나, 승무원에게 “이봐 아가씨, 맥주 하나만 더 갖고 와봐”라고 반말을 해도 흐트러짐 없는 외모에 미소로 응대하는 그녀들은 실로 대단해 보였다.

외국 항공사를 이용하기 전까지 모든 항공사 승무원은 다 그런 줄 알았다. 광고에서 만나는 승무원들은 미소가 아름다워야 했다. 그들은 한국의 얼굴이어야 했다.

친하게 지내는 언니가 있다. 그녀는 이제 곧 오십을 바라본다. 날씬하기보다는 건강하다. 예쁜 얼굴이기보다는 자신감이 넘치고 개성 있는 얼굴이다. 그녀의 직업은 승무원이라고 했다. 사실 전혀 승무원 같지 않았다. 우리 머릿속에 있는 승무원은 가녀린 몸매와 도자기처럼 하얀 피부와 반듯한 화장, 곱게 빗어 넘긴 머리와 환한 미소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외국 항공사 승무원이었고, 약 20년 이상 멋지게 일을 해왔다. 그리고 잠시 휴식을 가지고는 얼마 후 또 다른 외국 항공사의 경력직 선임 승무원으로 채용이 되어 떠났다.

▲외국 항공사에서 20년 넘게 승무원으로 일하는 그녀가 필자에게 보내 준 사진 [사진=Mink]

그녀가 처음부터 외국 항공사 승무원이 되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다고 했다. 당시 아시아나항공이 생긴지 얼마 되지 않아 승무원 공부를 시작해 시험을 보았지만, 국내 항공사에서는 다 탈락했다고 한다. 외모가 그들의 기준에 적합하지 않아서였다고 한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굉장히 유명하고 고급기종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고 전 세계 부호들이 이용하는 외국 항공사가 그녀를 단번에 채용했다. 훌륭한 어학 실력과 위기 대처능력, 그리고 승무원으로서의 체격 조건 모두가 훌륭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의 국적 항공사와 관련한 뉴스는 업데이트되면 될수록 가슴이 답답한 내용들 뿐이다. 땅콩(정확히 말하자면 ‘마카다미아’)을 이유로 자가용 후진하듯 비행기를 돌리질 않나, 그러면 안 된다는 승무원에게 반말과 행패를 부려대지를 않나, 그러고도 잊혀질만 하니 그녀의 동생이라는 이는 물컵을 던지지 않아도 깨어질 정도의 고성을 협력사 직원에게 쏟아내서 또 등장했다. 더불어 그녀의 어머니는 회사 내 직위가 하나도 없음에도 직원을 종처럼 부리고 심지어 폭행까지 행사했다.

우리가 자랑스러워 마지않는 아시아나항공마저 새로운 뉴스를 연신 쏟아 낸다. 사이비 종교의 찬양대회를 방불케 하는 회장님 찬가 동영상 뿐 아니라 출산하고 복직하면 복직시켜 줘 감사하다는 손 편지를 써야 했다는 내용이 밝혀졌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그녀들의 손에 지문이 없다는 뉴스였다. 장갑을 착용하면 모양새가 나쁘다는 이유로 뜨거운 기내식을 맨손으로 서빙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승무원이라는 직업은 제한된 공간에서 장시간 다수 승객의 안전과 생명을 책임져야 한다. 그들의 노동은 전문성이 높을 수밖에 없으며 인정받아 마땅한 가치이다. 대한민국 항공사의 오너와 운영진들은 승무원에게 이러한 노동의 전문성이 아닌 기업의 부속품 혹은 성적 상품으로 인식하고 대우했다. 특히 승무원 90% 이상이 여성인 점을 감안하면 전문직 노동자로서 대우하기 보다는 상품화된 여성으로 취급해 왔다. 항공사 운영진뿐만 아니라 대다수 국민들 역시 승무원은 하늘을 나는 꽃이라며 차별적인 인식에 동행해왔다.

그들에게도 노동법이 있었으며 근로기준법이라는 것이 존재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조직 문화는 이러한 법 작동을 노동자 스스로 포기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부당한 조치는 노동자에게 해고만큼이나 두려운 것이었을 테다. 국적항공기 역사 50년 동안 너무나 당연히 행해져온 인권 침해와 차별의 현장이다.

지금이라도 드러난 사태가 또다시 수면 아래로 내려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 법은 있으나 법에 명시한 권리를 포기할 수밖에 없게 하는 조직 문화는 국가 권력에 의해서라도 중단되어야 한다. 조직 내 ‘을’들이 얼굴을 가리고 혹은 목숨을 걸고 투쟁해야만 밖으로 알려지고 그러다가 어느 순간 잊혀져버리는 상황을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 직무 이상의 것들이 ‘을’들에게 당연하게 요구되고 기업 가치로 포장되어서는 안 된다.

▲기내서비스 중인 승무원들. [사진=Mink]

몇 년 전 아시아나승무원노동조합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승무원에 대한 과도한 외모 및 복장 규제(치마 착용, 바지착용 불허, 안경착용 불허 등)라는 차별 문제였다. 사측의 답변은 유니폼을 치마로 한정하는 것은 고급스러운 한국의 아름다움을 강조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승무원의 용모나 복장이 서비스 품질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며, 고객만족을 위한 기본적인 서비스 제공의 일부이며 기업 경영활동으로 보아야 한다고 했다. 더 나아가 글로벌 경쟁시대에 회사 경쟁력 확보를 위한 필수적인 수단이라고까지 했다.

이 답변에 반문한다. 대한민국 항공사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가 과연 승무원의 아름다운 용모와 고급스러운 이미지의 치마유니폼으로 얻어지는 것인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