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번에는 (지금) 구청장이 한 번 더 하고, 다음엔 나갈라고(그만둔다고) 했으니까 그다음에 하면 돼” 김영롱(가명, 여, 61) 씨는 시종 밝은 표정으로 응원했다. “맞아, 맞아” 박회장(가명, 남, 80)은 별말 없이 온화하게 웃으며 맞장구쳤다. 이영재 북구의원 후보는 “으하하하” 호탕하게 웃었다.
4일 오후 2시 대구에서 진보정당 정의당 소속으로 3선 구의원에 도전하는 이영재(51) 대구 북구의원 후보 사무소를 찾았다. 막 점심식사를 마치고 돌아온 이 후보와 정의당 북구의원 비례대표 후보 정유진(40) 씨가 사무실을 지키고 있었다. “어, 왔나?” 친근하게 이 후보가 인사를 건네왔다.
이 후보의 장점은 친근함에 있다. 진보라고 하면 으레 떠올리는 날 선 느낌을 별로 받을 수 없는 것은 푸근한 외모도 한몫한다. 어쩌면 그 친근함이 진보정당 소속으로 대구에서 구의원 재선에 성공하고 3선에 도전하는 원동력이 된 건지도 모른다. 더구나 이 후보의 지지 기반은 젊은층 뿐 아니라 노인층까지 아우른다. 보수정당에 굳건한 신뢰를 갖고 있는 대구 노인도 이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가 뭘까?
4일 오후, 이영재와 함께 하는 ‘경로당 투어’
시장-구청장-시의원은 2번, “구의원은 5번”이라는 청도댁
오후 2시 35분께부터 이영재(51) 대구 북구의원 후보를 따라 ‘경로당 투어’를 시작했다. “선거는 세 달 남가놓고(남겨놓고) 하는 게 아니고, 4년 동안 준비해야 여유가 있지” 사무실을 나서면서 이 후보는 너스레를 떨었다.
사실 이 후보는 동행 취재 요청을 할 때부터 ‘이미 선거는 끝났다’고 했다. 기초의원 선거는 소위 큰 ‘바람’ 타지 않고 동네 일꾼을 뽑는 선거이기 때문이다. 평소에 얼마나 동네를 다니며 주민들과 관계를 쌓아뒀느냐가 성패를 가르지, 선거 기간 반짝 인사를 하는 게 큰 영향을 미치진 않는다는 거다.
사무실에서 차로 약 3분 떨어진 한 경로당으로 향하면서 이 후보는 “어른들을 존중하고, 그분들 말씀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내 이야길 하면, 다 받아주시지”라면서 “그런데 이런 관계가 최소 10년은 걸리는거라. 지금 가는 곳에 어른들이랑 거의 말 놓고 지내지”라고 친분을 과시(?)했다.
3분 만에 도착한 경로당은 문 앞에서부터 환대로 시작했다. “아이고, 어서 오이소. 수고 많십니더” 경로당 회장은 반색하며 이 후보를 맞았다. 열 명 안팎의 할머니들이 고스톱을 치거나 이야길 나누고 있었다. “오늘이 이제 (선거 앞두고) 마지막으로 오는 거라, 명함을 크게 해가지고(만들어서) 왔어요” 이 후보는 ‘어르신을 잘 모시겠습니다’라고 크게 쓴 명함을 할머니들에게 건넸다.
이곳에선 청도댁(76)이 가장 적극적인 이 후보 응원군이다. “이리 줘보이소” 뭉탱이로 명함을 받아든 청도댁은 방금 전까지 쥐고 있던 화투패 대신 명함을 쫙 펼쳐 들고 필요한 만큼 세서 챙겼다. 그 사이 이 후보는 다른 할머니들과 이야길 나눴다. “아까 여 온다고 도로 건너께네, 운전수하고 차밖에 없데요” “어데요?” “이리 가는데, 거 서 있더만. 그래가 손만 이래 흔들어주고 왔지”
“투표할 때 안 헷갈리게 들고 가서 보고 할끼라” 명함을 챙긴 청도댁이 말했다. 청도댁은 적극적인 자유한국당 지지자다. 지난달 31일 권영진 한국당 대구시장 후보가 넘어진 사건을 언급하면서 “병문안 가고 싶더라, 솔직한 심정으로, 너무 안타까웠어요”라고 말할 정도다. 청도댁은 “내 소원은 시장은 2번, 구청장도 2번, 시의원도 2번, 구의원은 5번”이라면서 구의원만큼은 이 후보를 지지한다고 강조했다.
“왜요? 어디가 좋아서요?”
“너무 고마웠어요. 일일이 다 말 못 하고, 의원님하고 청장님하고 고마워서요. 되고 안 되고는 의원님 복이고. 그러나 우리는 도리를 해야 한다. 이 생각입니다. 구의원은 당을 보고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쨌든 사랑해주니까 고맙고, 노인을 알아주니까 고맙고”
처음 만난 기자는 알 수 없는 ‘고마움’을 청도댁은 마음 깊이 갖고 있는 듯했다. 청도댁은 “구의원은 한나라당(자유한국당) 둘, 그다음에 5번 이영재 씨! 1등으로 됐으면 좋겠지만 한나라당 ‘가’가 있으니, 2등도 좋다 이거라”고 이 후보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재차 드러냈다. 이 후보가 “아이고, 눈물이 날라고 한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아무 걱정 마이소, 여는 더 안 와도 돼요”
“다음에 구청장 하면 돼요···당은 상관 없어”
이영재, “노령층 고민 없이 당선 바라기 힘들어”
30분 남짓 이야길 나누고 돌아서 나오는 길을 경로당 회장은 따라 나오며 배웅했다. “아무 걱정 마이소, 여는 더 안 와도 돼요” 회장은 문밖 까지 나와 배웅하며 든든한 지지를 약속했다. 다시 차로 7~8분 거리에 있는 경로당으로 이동했다. 이 후보는 “여가 칠곡(대구 북구 금호강 북쪽 지역을 통칭하는 지명)에서 젤 오래된 경로당이라”라고 말했다.
두 번째 경로당에선 청도댁 만큼 적극적으로 이 후보를 응원하는 사람을 만날 순 없었다. 다만 이곳에서도 이 후보는 “아이고, 어서 오이소”라는 인사말을 들으며 안으로 발을 들였다. ‘아이고, 어서 오이소’라는 인사말에 이 후보와 노인들의 관계가 유추됐다. 이곳에선 짧게 머물다가 세 번째 경로당으로 향했다.
세 번째 경로당으로 차를 몰며 이 후보는 “어디서든 어르신을 상대하는 건 비슷하잖아. 자기들을 나이 먹었다고 무시하지 않고, 인정해주는 거. 이건 이념도 필요 없는거라”라며 “농촌 부락단위로도 경로당이 많거든. 대 여섯 개 있는데 거(기)도 경로당 회장님들이 다 내 지지자라. 깜짝 놀랄 정도일 거라”라고 다시 너스레를 떨었다.
이 후보는 또 “기본적으로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젊은층에 플러스알파가 되어야 하는데, 노령층도 비중이 높아지고 있자나? 이 사람들 고민하지 않곤 앞으로 선거에서 이길 가능성 거의 없다고 봐야지”라고 노령층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세 번째 경로당에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함께 ‘점 십 원’ 고스톱을 치고 있었다. 김영롱, 박회장 씨를 만난 건 이곳에서였다. 김 씨는 진행중이던 ‘점 십 원’ 고스톱이 끝나자마자 일어나 “뭐 시원한 거 줄까요”라면서 이 후보에게 다가왔다. 61살 김 씨는 경로당에서 가장 어린 축에 들었다. 의자에 앉아 고스톱을 구경하던 박회장도 의자를 돌려 이 후보를 마주 봤다.
김 씨도, 박 씨도 첫 경로당에서 만난 청도댁처럼 한국당을 지지하면서 이 후보를 지지했다. 김 씨는 “경상도는 아직, 한국당 믿고 가는 게 있어요. 여론조사하곤 안 맞아”라면서 “젊은 아덜이나 그렇지(바뀌었다고 하지) 나(이) 많은 사람들은 안 그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씨는 이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에 대해 “하루 아침에 되는 게 아니거든. 우리가 뭐 할 때마다 얼굴 내밀고, 맨날천날(매일) 일하러 오고. 다른 사람 한 발 뗄 때, 여(이영재)는 두 발, 세 발 뗀다”라고 설명했다.
김 씨는 내친김에 이 후보의 구청장 도전까지 응원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접촉이 많아야 해. 관계를 잘 맺어야 해. 여(이영재)는 정말로 자기 두 발로 열심히 뛰거든. 구청장도 이번에 한 번 하고 바꿔야 해. 요번에 한 번 더 하면 자기 하던 일은 마무리 지으니까. 그다음에 (이영재가) 하면 돼” 김 씨가 말했고, 박 씨가 “맞아, 맞아”라고 맞장구쳤다.
“정의당으로 구청장 나와도 찍어줄 거예요?”
“한국당이고 뭐고 상관없어” ‘경상도는 아직 한국당을 믿고 간다’던 김 씨가 단박에 말했다. 이 후보가 “으하하하” 호탕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