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남북, ‘하나의 혈육’ 인준 이후가 진짜 문제다 /이택광

12:48

지난 4월 27일 남북 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나 그동안 얼어붙어 있던 관계를 한순간에 녹여 버리는 이른바 한반도 비핵화와 종전을 포함한 ‘판문점 선언’을 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내외 인사들이 ‘기적의 120분’이라는 말까지 동원해서 환영의 메시지를 전하기에 바빴지만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이른바 한국의 냉전 보수는 여전히 북한을 믿을 수 없다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물론 이런 의심의 눈초리는 워싱턴포스트나 포린폴리시에 실린 몇몇 칼럼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입은 여러 개였지만, 사실 이들이 공유하는 논리는 어슷비슷했다. 북한이 이번에도 이런 식으로 남한을 이용해서 한미동맹을 흔들고 미국을 우롱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이른바 ‘적화야욕’을 여전히 버리지 못한 북한에 남한 정부가 순진하게 놀아나고 있다는 것인데, 돌다리도 두드려 가야 한다는 취지에서 경청할 구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적절하게 해석할 새로운 관점이 부재하다는 점에서 하나마나한 소리처럼 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픽. 손을 들고 기뻐하는 남북정상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위원장이 27일 오후 경기도 파주 판문점에서 ‘판문점 선언문’에 사인, 교환한 뒤 서로 손을 잡고 활짝 웃고 있다 모습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

무엇보다도 이들은 지금 ‘세계정세’가 상당히 과거와 달라져 있다는 사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이 ‘세계정세’는 한 마디로 2차 세계대전 이후 구축되었던 미국 주도의 전후체제가 더 이상 과거처럼 유지될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당선은 이 사실을 간접 증명하는 사건이었다. 예외주의로 복귀해서 ‘강한 미국’을 다시 건설하자는 주장은 과거에도 있었지만, 트럼프처럼 대외관계에서 지금까지 추구했던 노선에서 미국이 후퇴함으로써 예외주의를 실현해야 한다고 생각한 경우는 없었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심사는 오직 국내 정치라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지금 한반도의 긴장을 해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평가도 있다. 미국의 갈팡질팡 행보가 결과적으로 한국 정부에 개입의 공간을 열어준 셈인지도 모른다. 흥미롭게도 미국의 정치학자 임마누엘 월러스틴은 2006년에 발표한 「미국적 힘의 변곡점」이라는 논문에서 이미 동요하는 전후체제와 다가오는 전환의 시기에 대한 예측을 내놓고 있다. 돌이켜보면 세부적으로 맞는 것도 있고 틀린 것도 있겠지만, 거시적인 차원에서 그가 제기한 미국 헤게모니의 붕괴는 맞아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월러스틴의 입장에서 냉전체제의 종식은 미국을 유일 강대국으로 만들어준 사건이라기보다 전후체제가 무너지기 시작한 시발점이다. 특히 두 번에 걸친 이라크 전쟁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월러스틴에 따르면, 미국의 이라크전은 북한과 이란 같은 나라에 핵무장의 필요성을 강변하는 구실을 제공했다. 말하자면,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것은 “이라크가 핵무기를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갖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교훈을 준 것이고, 이렇게 핵무장은 곧 체제유지의 방편이라는 공식이 자연스럽게 성립되어서 북한의 미사일 개발까지 오게 된 것이다.

이런 월러스틴의 예상이 얼마나 정치하게 맞아 떨어졌는지 논한다면 서로 의견들이 엇갈릴 수 있다. 다만 필자가 그의 주장을 환기시키면서 하고 싶은 말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한반도의 상황을 상당 부분 필연적인 결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냉전을 지렛대로 삼은 전후체제에서 탄생한 국가이다. 미국 중심의 체제로 진입하기 위해 한국은 ‘정상적인 민족-국가’를 포기해야했다. 이른바 평화체제는 냉전체제를 해체하고 ‘정상적인 민족-국가’로 가기 위한 민족주의적 기획이다.

지난 4월 27일 회담은 이 기획에 새로운 전기가 열렸음을 시사해줬다. 다가오는 북미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북한이 체제보장과 핵폐기를 맞바꾸기만 하면 월러스틴의 예상은 현실화될 것이다. 냉전 보수는 이 현실화가 한미동맹의 해체로 이어질 것이라고 강변하지만, 월러스틴의 주장처럼 동북아평화체제가 실현되더라도 미국을 배제하는 일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불가능할 것이다.

오히려 지금 걱정해야할 것은 다른 문제일지도 모른다. “하나의 혈육”으로 다시 인준받은 남과 북이 민족주의 이외에 다른 대안의 이념을 가질 수 있을지 이것이 진짜 문제라는 생각이다. 경협이 가져올 경제효과를 예측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리지만, 정작 이제부터 고민해야 할 것은 거대한 전환 이후에 어떤 세계를 만들어 나아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