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의 벽 무너질까? 경북 첫 진보교육감 후보 이찬교

교육감 직선제 이후 3번 선거 동안 진보후보 없었던 경북
1981년부터 시작한 36년 평교사 생활 끝내고 교육감 선거 출마
고교평준화, 혁신학교 도입, 무상급식 등 공약 제시
"교육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 경북 교육 바꾸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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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이 찬스다, 교육을 바꾸자.”

▲2월 12일 경북교육감 출마를 선언한 이찬교 경북혁신교육연구소 ‘공감’ 소장

오는 6.13지방선거 경북교육감 선거에 출마한 이찬교(59) ‘경북교육연구소 공감’ 소장이 시민들을 만나 하는 이야기다. 정년 3년 반을 남기고 교직을 나와 선거에 나선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정치적으로 보면 경북은 자유한국당의 본진이라 불릴 만큼 보수적인 색채가 강하다. 경북은 전국 17개 시·도 중 유일하게 국회의원 전원이 자유한국당 소속이다. 교육도 보수적 색채가 강하기는 마찬가지다. 정당공천이 없는 교육감 선거에서도 보수를 자처하는 후보들만 출마했다. ‘명품교육’을 내건 3선 이영우(73) 현 교육감 재임 동안 경북은 유일한 성과가 많았다. 유일하게 국정교과서 시범학교를 신청한 학교가 있는 지역, 유일하게 24만 이상 도시 가운데 고교평준화를 실시하지 않는 지역이었다. 무상급식, 혁신학교, 공립형 대안학교는 가장 뒤처지는 지역이기도 했다.

이 상황을 바꿔보고자 전국농민회총연맹 경북도연맹 등 40여 개 시민사회단체는 ‘경북교육희망만들기’를 결성했다. 영덕 축산중학교에서 국어교사로 있던 이찬교 소장도 시민단체들의 움직임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포항 고교평준화 운동, 경북 무상급식 운동에 앞장섰던만큼, 책임감도 느꼈다. 교감, 교장도 관심밖이었던 이찬교 소장은 지난해 12월 11일 경북교육희망만들기가 선출한 ‘혁신 경북교육감 후보’로 선출됐다.

▲22일 포항 선거사무소에서 만난 이찬교 예비후보

22일 오전 포항시 장성동 선거사무소에서 만난 이찬교 소장은 “다른 지역에서는 진보 후보들이 나와 교육감에 당선되면서 학교에 활기를 불어넣는데 경북은 후보도 못 냈던 게 안타까웠어요. 워낙 보수적인 지역이라 선뜻 나오기 어려웠죠. 주변의 권유와 이번에도 안 나오면 어려울 것 같단 생각에 결심했어요”라고 말했다.

영덕에서 교사 생활을 마치고 팔공산자락 대구 공산동 고향집에서 북카페를 열려던 이찬교 소장이 ‘진보교육감’ 후보로 선거에 뛰어든 것도 이 때문이다. 교육에서 진보주의는 일방적이고 수동적인 학습이 아닌 이해와 흥미 등 종합적인 학습방법을 중시하고, 능동적인 학습을 통해 개개인의 개성을 발현하는 데 중점을 두는 것을 말한다. 진보교육감인 지역에서 25명 이하 학급과 교육과정에 자율성을 부여하는 ‘혁신학교’를 도입하려는 이유기도 하다.

그래서 이찬교 소장은 “학교는 교장 중심 운영이 아니라 학생, 교사, 학부모가 민주적인 공동체로 만들어야 한다”면서 초중학교부터 시범적으로 혁신학교 도입을 강조했다. 이는 36년 교직 생활을 통해 경험 때문이기도 했다.

경북대 사범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한 직후 1981년 영주 부석고등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시작한 이찬교 소장도 열정적이었지만, 성적을 내기 위한 강압적인 교육방법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동료 교사들로부터 ‘너무 강압적으로 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다고 한다. 군대를 다녀와 1983년 7월 구미여고에서 이어진 교직 생활에서 ‘자율학습’, ‘보충수업’ 등 강제적인 교육 속에 고민이 많을 때쯤 교육민주화 운동을 지켜보면서 생각을 바꾸게 됐다.

“당시 교육을 비판적으로 보던 민중교육지 사건(1985년 5월 교육현장의 문제점을 드러낸 잡지 ‘민중교육’ 발간에 참여한 교사들에 대해 정부가 해직 등의 징계를 내린 사건)을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내가 하는 교육이 부를 대물림하고, 내 아이, 우리 반 아이만 챙기는 교육이었다는 걸 알게 된 거죠”

구미교사협의회를 시작으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활동을 시작한 이찬교 소장은 1998년 포항지역고교평준화시민연대회의 집행위원장, 2002년 포항고교평준화추진위원회 공동대표로 활동하면서 포항지역 고교평준화(2008년 입학생부터 평준화)를 끌어내기도 했다. 그러나 구미, 경산, 경주는 여전히 고교 비평준화지역이다.

이찬교 소장은 “누군가는 중간성적을 받고 다른 누군가는 꼴찌를 할 수밖에 없는 현재의 교육 상황에서, 고교 서열화는 상당수 학생들이 불쾌한 사회적 시선을 받도록 만들고 소외감을 느끼도록 자극하는 결정적 요인 중 하나라고 본다”며 고교평준화를 필수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찬교 소장은 교실 밖을 다니면서 교육의 중요성을 더 절실히 느끼기 시작했다. 의성에서 농민 20여 명과 이야기를 나누던 자리였다. 이야기를 들으러 간 자리에서 한 농민이 눈물을 글썽였다고 한다. 농촌에서 다른 정책 이야기는 많이 하지만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여태껏 없었는데 고마워서라는 이유였다.

“귀농한 분이었어요. 농촌 학교라면 아이들이 자연에서 뛰어노는 등 이상적인 모습을 떠올리는데 전혀 아니었던 거죠. 지역과 학교, 교사와 학생, 학부모와 교사 간 소통이 잘 안 됐죠. 교사에게 과다한 행정업무와 교장 중심의 수동적인 문화를 바꾸지 않으면 농촌학교도 도시와 다르지 않겠죠”

이찬교 소장은 ▲교장내부형공모제 ▲교직원 노동기본권 보장 ▲작은학교 살리기 ▲공립형 대안학교 설립 등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이 소장은 선거권이 없는 청소년들과 만난 자리에서 ‘학교, 생활규정, 자율학습 등에 대한 변화’ 요구를 들었다면서, ‘교문현답-교육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는 말을 되새기고 있다고 한다.

“선거운동을 하면 예전과 분위기가 달라져서인지, ‘진보냐, 보수냐’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진보교육감 후보라고 자랑스럽게 말합니다. 이번에 경북교육도 꼭 한 번 바꿔 달라며 지지하는 분들을 많이 만납니다. 구석구석 이야기를 듣고 ‘진보교육’을 알릴 생각입니다”

▲포항시 한 식당에서 시민을 만나고 있는 이찬교 예비후보.

현재(3월 23일)까지 경북교육감 선거 예비후보로는 이찬교 소장을 포함해 임종식(62) 전 경북교육청 교육정책국장, 권전탁(64) 전 경북교육청 정책국장, 이경희(65) 전 경북 포항교육지원청 교육장, 안상섭(54) 경북교육연구소 이사장, 김정수(64) 자유교육연합 상임대표 등 6명이 등록했다. 이 가운데 임종식 예비후보와의 단일화를 한 권전탁 예비후보는 곧 물러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