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그리고 매일 매일, 우리의 경제와 공동체 그리고 나라를 위해 여성들이 수없이 많은 기여를 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의 모든 여성들이 계속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힘을 키울 수 있도록 분투할 것입니다.”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올린 트윗이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조롱과 야유를 보냈다.
트럼프 정부가 여성을 위한다고? 여성들에게 수없이 저지른 성폭력에 대해 아무런 사과도 반성도 없는 트럼프, 폭로 여성들을 거짓말쟁이로 몰아가는 백악관이 여성들의 권익 신장을 위해 일을 한다고?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그런데 펜스의 트윗이 조롱거리가 된 이유는 단지 트럼프 때문만은 아니었다. 펜스 자신이 지금까지 보여준 여성혐오도 트럼프 못지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의 트윗을 ‘위선’이라 부른 것이다.
펜스는 자신을 ‘기독교인, 보수주의자 그리고 공화당원’이라고 소개한다. 독실한 복음주의 신앙을 지닌 대표적인 정치인으로 ‘티파티 운동(Tea Party Movement, 2009년 시작한 미국의 보수주의 정치 운동으로 작은 정부를 지향하며 부자에 대한 세금 부과 반대 등의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인종 차별 논란도 있었다)’의 지지자 이기도 하다. 그는 “신앙이 먼저이고 정치는 맨 나중”이라며 보수적 종교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해왔다.
특히, 여성 문제에 관해서는 트럼프와 펜스 중 누가 더 여성에게 해로운지 겨루기 힘들 정도다. 한 신문기사 제목처럼 펜스는 “세상을 1954년으로 되돌릴”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펜스는 일관되게 여성의 낙태권과 건강권을 공격해왔다. “나는 ‘로우 대 웨이드(Roe v. Wade-낙태권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가 역사의 잿더미로 사라지는 날을 고대한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다. 하원의원 시절 그는 낙태 시술 지원단체에 대한 연방정부의 지원을 중단하고 낙태를 더 제한하는 법안을 앞장서서 발의했다.
인디애나주 주지사로 재직 당시 펜스는 미국의 다른 어떤 주보다도 낙태권을 제한하는 정책을 폈다. 강간이나 근친상간으로 임신하거나 또는 임신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신체에 중대한 해가 되는 경우가 아니면 사설 의료보험이 낙태시술을 커버하는 것을 금지했다.
심지어 태아에게 선천적 장애나 유전적 기형이 있는 경우에도 낙태를 금지하고, 이를 알고도 낙태를 시술한 의사를 처벌하는 법에 서명했다. 또한, 낙태 시술 후 태아 조직을 의무적으로 매장 또는 화장하도록 했다.
다음 사건은 펜스의 반(反) 여성 정책 아래에서 여성에게 어떤 극단적인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펜스가 주지사로 있던 2015년 인디애나의 한 30대 여성이 ‘태아 살해법’ 위반으로 기소됐다.
유산이 돼 하혈하면서 응급실에 실려 온 이 여성을 의사가 경찰에 신고했다. 검찰은 그녀가 불법 낙태를 하려고 낙태 유도제를 썼다고 주장했지만, 약물검사 반응은 이를 뒷받침해 주지 않았다. 이 여성은 징역 20년 형을 선고받았다.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은 태아의 생명을 그렇게 소중히 여긴다는 펜스는 정작 아이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총기를 규제하는 것에는 반대하는 위선자이다.
펜스는 또 성소수자 혐오 정책을 일관되게 펴왔다. 반인권적인 ‘동성애 전환 프로그램’에 연방자금 지원을 주장했고, 동성 결혼, 성소수자 차별금지법, 성소수자의 군 복무 등 성소수자 권리 확대는 반대했다. 특히 회사나 업주가 종교적인 이유로 성소수자에게 서비스 제공을 거부해도 처벌받지 않는 이른바 ‘종교의 자유 법안’에 서명해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역사의 시계를 되돌리는 펜스룰
일부 남성들이 최근 거세어지고 있는 미투 운동에 관해 이런 보수 정치인 펜스의 신조라는 소위 펜스룰(Pence Rule)을 대처법으로 쓴다는 뉴스를 보았다. 직장 내 성폭력을 방지한다는 핑계로 회식이나 출장에 여자 직원을 배제하고 심지어 일상적인 업무 관련 대화에서도 여성을 배제한다는 소리가 들린다.
펜스룰은 2002년 한 인터뷰에서 자신은 부인이 아닌 다른 여성과는 절대로 단둘이 식사도 하지 않으며, 술이 나오는 자리에는 꼭 부인과 함께 간다고 한데서 나온 말이다. 보수적인 복음주의 기독교신자의 결혼서약을 지키기 위한 나름의 방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 펜스룰이 사생활이 아닌 직장 내 성폭력을 예방한다는 미명 하에 적용되었을 때이다.
펜스룰은 이성과의 접촉과 교류에는 반드시 성적 유혹이 따른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여성은 남성의 동등한 동료가 될 수 없고, 그저 성적 욕망의 대상일 뿐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남자 동료나 상사와의 만남이 제한되고 주요 업무에서 배제된다면 여성은 직장에서 주변화되고, 승진이나 커리어를 위한 정보에서 배제될 것이다. 이것은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게 일할 권리와 기회를 부정하는 따돌리기, 성차별일 뿐이다.
아직 납득이 안된다면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자. 여성인 직장 상사가 중요한 업무에서 당신을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배제한다고 가정해 보자. 같이 있으면 남성인 당신이 성추행할 수 있으니까 미리 그 가능성을 차단한다면서. 당신은 그게 당연하다고 받아들일텐가?
2차 세계대전 당시 후방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여성들을 일터로 나오게 독려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남성들이 돌아오자 노동력으로 동원됐던 여성들을 제일 먼저 직장에서 몰아냈다. ‘가정으로 돌아가라’는 구호와 함께. 여성의 이상적인 역할은 전통적인 가정 안에서 헌신하는 아내와 엄마의 모습으로 그려졌다.
펜스가 꿈꾸는 세상은 그런 1950년대의 ‘이상적인 가정’이 있는, 여성은 집에서 아이를 키우고 남성은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부인이 아닌 다른 여자와 교류를 할 필요가 없는, 남자들만의 세상이다. 펜스룰은 역사의 시계가 1954년으로 되돌아 갔을 때나 어울린다. 펜스룰은 여성차별과 혐오의 또 다른 이름일 뿐이지 이 사회에 만연한 여성에 대한 폭력을 막는 매뉴얼이 될 수 없다.
수잔 팔루디는 페미니즘의 고전으로 여겨지는 저서 <반격 Backlash>에서 “페미니즘에 반대하는 반격은 여성들이 완전한 평등을 달성했을 때가 아니라, 그럴 가능성이 커졌을 때 터져 나왔다”고 말했다. 미투 운동은 여성들이 사회 곳곳에서 차별을 딛고 평등을 달성하려는 거대한 움직임이고, 펜스룰은 그것에 대한 반격의 하나이다. 반격이 있다는 것은 동시에 여성차별과 혐오를 극복한 가능성도 커졌다는 뜻이다. 힘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