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어떤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를 상황이 있다. 친구라면 그저 소주 한잔하자고 하면 그만이겠지만, 상대가 취재원이라면 그마저도 쉽지 않은 일이다. 2017년 9월 27일, 해고된 지 7년2개월 만에 공장으로 돌아간 금속노조 발레오만도지회 조합원 신시연(45) 씨가 그랬다. 취재 현장에서 마주치거나, 발레오전장 소식을 전해올 때면 입을 떼는 게 어려웠다. 달리 할 말을 찾기도 어려워서 “올해는 꼭 복직할 겁니다” “이제 얼마 안 남았습니다”라는 말을 4년 내내 건넸다.
복직을 하루 앞둔 26일 저녁, 경북 경주에서 신시연 씨를 만났다. 집 근처에서 조합원과 가볍게 소주 한잔했다는 시연 씨 얼굴이 밝았다. 발레오전장과 시연 씨의 인연은 그가 고등학교 3학년이던 9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장실습으로 발레오전장(구 만도 경주공장)에 왔고, 실습을 마친 91년 2월부로 정규직이 됐다. 국방의 의무도 발레오전장에서 특례병으로 3년 근무해 마쳤다. 인생의 절반 이상이 담긴 공장 담벼락 앞에서 보낸 7년이었다. “축하드린다”는 인사를 먼저 건네고 치킨집에 들어가 맥주를 마셨다.
노동조합이 있으면 근무 환경도 좋아지고 여러 좋은 점이 있다지만, 대한민국 시민들이 노동조합 가입을 꺼리는 이유는 단 하나다. 노조에 가입했을 때 돌아올 불이익 때문이다. 정점은 직장에서 쫓겨나는 일이다. 2010년 창조컨설팅이 금속노조 탈퇴가 포함된 노조파괴 시나리오를 들고 전국 곳곳을 누빌 수 있던 이유도 그 때문이다. 노조라는 이름 아래 하나라고 믿었던 동료들이 하나둘 회유에 넘어간 것도 결국, 먹고 사는 문제가 컸다. 회사가 지원한 기업노조 설립에 나선 이들 상당수는 금속노조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는 이들이었다. 그렇게 경주 발레오 공장은 노조파괴 시나리오가 가동된 첫 타깃이 됐다.
어떻게 7년 넘는 시간을 버텼느냐는 물음에 시연 씨는 고민하지 않고 “경주지부 힘이 제일 컸죠”라고 대답했다. 금속노조 신분보장기금 지급 1년이 끝난 후 복직하기 전까지, 금속노조 경주지부 전 조합원 3천여 명은 매달 1만 원 씩 기금을 내 해고자들의 생계비를 지원했다. 넉넉지는 않았지만, 28명의 해고노동자가 버티는 큰 힘이었다. 옆의 동료에게 전한 힘은 고스란히 자신의 힘으로 남았다.
“한 지회장이 그랬다고 하더라. 회사와 만날 때면, ‘우리는 금속이 있다. 지회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 파업하라고 하는 거면 파업하면 된다’고 했다더라.”
다행히 버틸 수는 있었지만,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은 어쩔 도리가 없다. 시연 씨가 직장폐쇄와 징계해고를 당했던 2010년 초등학교 3학년, 일곱 살이던 두 아들은 이제 고등학교 1학년, 중학교 1학년이 됐다. 시연 씨 목젖이 울먹거리며 얼마 전 이야기를 들려줬다.
“해고자라서 돈이 없다 이런 이야기는 안 했다. ‘임마, 아빠 돈 있어’라고 하면 ‘아빠 돈 없잖아’라고 농담 아닌 농담을 한다. 자전거, 컴퓨터 등 사 달라는 걸 원하는 만큼 못 해줬다. 얼마 전 둘째가 중학교에 들어갈 때 재활용 교복을 사줬다. 그걸 입고 학교에 갔는데 친구들이 눈치를 준 거지. 눈물을 많이 삼켰다. 복직이 확정되고 해고 기간 급여를 받고 교복을 새로 사줬다.”
필요한 물건을 사 주지 못한 일보다 가슴 아픈 건 ‘분노’와 ‘아픔’이 전이되는 일이었다. 2013년이었다. “명절을 맞아 처가인 대전을 다녀오는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가 일어난 걸 보면서 첫째가 저 차에 강기봉(발레오전장 대표이사)이 탔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서글펐어요. 아이들에게까지 그런 감정이 박혀있다는 게….”
2017년 10월 10일 6년11개월 만에 대구시 달성군 상신브레이크 공장으로 돌아간 조정훈(42) 씨도 다르지 않았다. 성서공단에서 특례병으로 병역을 마치고 2000년 상신브레이크에 입사한 정훈 씨는 금속노조 대구지부 사무국장으로 있던 2010년 12월 ‘불법파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해고됐다. 그렇게 상신브레이크는 창조컨설팅의 노조파괴 시나리오 두 번째 희생양이 됐다.
정훈 씨와도 복직한 며칠 후 그의 집 근처에서 맥주 한 잔을 마셨다.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딸은 올해 대학생이 됐다. 생계 문제는 버틸 수 있었지만, 해고 기간 딸과 보낼 수 없었던 시간은 보상을 받을 수도 없는 일이다.
“딸이 중학교 1학년 때였어요. 차상위계층으로 선정되고 무상급식을 신청했어요. 선생님에게 아무도 모르게 해 달라고 이야기했는데도 다 알아버렸어요. 딸이 집에 와서 ‘쪽팔려서 학교 못 다니겠어. 돈 내고 먹을래’라고 화를 냈어요. 그러고는 2년이 지난 3학년 때는 ‘친구들이 부러워한다고요. 어떻게 하면 무상급식 신청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고 말하더라고요.”
부당노동행위가 남긴 벌금·배상금으로 사라지지 않는 상처
2017년 6월에서야 발레오전장 강기봉 대표이사는 부당노동행위로 1심에서 벌금 500만 원과 징역 8월을 선고받았다. 2016년 상신브레이크 김효일 대표이사도 부당노동행위로 벌금 200만 원형이 최종 확정됐다. 법원은 금속노조가 창조컨설팅과 발레오전장, 상신브레이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도 3천만 원씩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외에도 여러 재판에서 노동자들 손을 들어주는 판결이 계속 나오고 있다. 회사는 창조컨설팅에 자문비를 지급하고, 용역경비를 동원하는 데 억대가 넘는 돈을 썼다. 그래서 무엇을 얻었을까. 회사가 얻은 이익만큼 노동자들의 상처는 깊숙하게 패였다. 연고를 바른다고 아물 상처가 아니다.
상신브레이크는 5명의 해고자 가운데 4명이 복직했다. 당시 지회장이었던 이덕우 씨는 ‘불법파업을 주도해 징계가 정당하다’는 판결을 받았다. 정훈 씨는 “이덕우 지회장을 자른다고 회사가 얻을 게 뭐가 있나. 사람을 폐인으로 만들고 있다.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조합원 명예회복과 치유, 그리고 이덕우 지회장 복귀를 꼭 이루고 싶다”고 말했다.
현장에 복귀해 포장 업무로 발령받아 일을 시작한 정훈 씨는 삭막한 공장 분위기가 아프다고 했다. 민주노총 간부직을 맡았던 정훈 씨는 현재 상신브레이크에서 유일한 금속노조 조합원이다. 노조파괴 직후 생겨난 제2노조는 이제 2명만 남았고, 새로 설립한 제3노조인 기업노조가 다수를 이루고 있다. 민주노조 성향의 조합원들이 집행부 선거에서 이겼지만, 위축된 분위기가 단숨에 바뀌지는 않았다.
“처음에 공장에 들어가서 어용노조 위원장을 했던 사람과 실랑이를 벌였다. 그러니 조합원들이 처음부터 그러지 말라고 말렸다. 직장폐쇄 기간 공장바닥에 갇혀서 스티로폼 깔고 강제합숙 당했던 기억, 이 부서, 저 부서 뺑뺑이 돌던 트라우마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거다. 진상규명과 사죄가 없으면 이 트라우마는 없어지지 않는다.”
발레오전장도 마찬가지다. 복직 한 달째인 지금도 복직한 노동자들은 제품, 안전 등 여러 교육만 받고 있다. 시연 씨는 “7년 넘게 이렇게 있다 보니 힘들다. 분노조절 장애, 우울증, 화병까지. 자기 사안에 대해서 상당히 민감하다. 당장 부서 배치가 될 것이 아니라면, 회사가 치유 프로그램 운영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시연 씨도, 정훈 씨도 당시에는 직장폐쇄, 금속노조 탈퇴, 제2노조 설립으로 이어졌던 노조파괴 시나리오를 몰랐다고 한다.
시연 씨는 “당시에 우리는 싸우면 이긴다고 생각했어요. 현대차 부품업체가 1주 이상 직장폐쇄를 버틸 수 없다는 불문율 같은 게 있었거든요. 그런데 6백 명인 공장에 경찰 3천 명이 투입됐어요. 또, 대구노동청으로 발레오 진행 경과를 2번이나 묻는 전화가 대검찰청에서 걸려왔다고 하더라고요. 창조컨설팅은 아예 생각도 못했는데 말이죠”라고 말했다.
정훈 씨도 이렇게 말했다. “하나씩 찍어가면서 노조를 파괴하는 창조컨설팅이 발레오랑 상신을 예시로 들면서 홍보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서야 들었어요. 우리는 싸움을 제대로 못해서 노조 말아먹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스스로 위축되어 있었는데 말이죠.”
시연 씨는 이후 타깃이 된 구미 KEC 공장 앞에서 밥을 먹다가 인사하는 용역경비를 만났다. 경주 공장에서 봤던 이였다. 어이가 없었지만, 창조컨설팅-컨텍터스-회사 그리고 정권이 한 몸으로 노조파괴에 나섰다는 큰 그림이 머리에 박혔다. 그 용역경비업체는 이후 유성기업에서도 만날 수 있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라는 노래가 있다. 정훈 씨는 “지난 촛불을 보며 굉장한 힘을 느꼈어요. 조직된 노동자들은 이명박근혜를 거치면서 많이 위축돼 광장에 많이 참석을 못했어요. 이제는 직접 정치의 시대가 왔다, 정치세력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노조 활동보다는 정치운동에 적극 나서겠다”고 말했다. 어쩔 수 없이 지난 총선에 무소속 민주노총 후보로 대구 달성에 출마했지만, 직접 후보가 되고 싶지는 않다는 말도 덧붙였다.
시연 씨는 “자본의 탄압은 당연하지만, 노조 간부했던 이가 노무과장으로 가고, 이런 게 참 아쉽죠. 꼭 우리 공장이 아니라 지역에서 학습하고 토론하는 모임을 만들고 싶어요. 3번이나 낙선했지만, 지회 선거에 출마할 때 꿈이 간부들과 매주 학습 시간을 갖는 거였거든요”라며 학습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지역 노동자들에게 밀알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2년 넘게 싸우고 있는 차헌호 아사히비정규직지회 지회장을 보며 희망을 얻고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창조컨설팅, 컨택터스에게 책임을 물어야겠지만, 그의 말처럼 회사의 부당노동행위에 동조했던 정부기관과 그 최종 책임자, MB는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이 기사는 워커스 36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