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을 든 살인자” 패션센터 유족, “청탁 거절하자 보복 기사” 기자 검찰 고발

대책위, 고인과 A매체 B기자와 통화 내용 공개
고인 스스로 법적 대응도 준비해
해당 언론사, "위법 사실 밝혀지면 강력 조치할 것"

16:49

한국패션센터 노동자가 악의적인 보도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의혹이 일고 있는 가운데 유가족과 진상규명대책위가 해당 기자를 강요미수, 명예훼손 등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또, 고인이 사망 전 스스로 법적 대응을 준비했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고인이 법적 대응을 하지 못하도록 압박을 받았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9일 오전 10시 ‘한국패션산업연구원 노동자 사망 관련 진상규명대책위원회’는 대구지방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 후 대구지방법원 2층 전국공무원노조 법원지부 사무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고 손 모(57) 씨가 악의적 보도에 준비했던 법적 대응 자료, 고인과 기자와 통화 내용 등을 공개했다.

손 씨는 “대관 업무와 관련하여 무리한 요구를 하다가 거절당하자, 전화로 협박하고, 악의적인 기사를 게재해 명예를 훼손했다”는 취지로 대구수성경찰서에 제출할 고소장을 준비했다. 손 씨는 기사 내용과 함께 대관 현황, 대관 가계약 현황 등을 증거자료로 첨부했다.

이는 A 인터넷언론 B 기자가 지난달 16일 보도한 기사 중, 손 씨가 임의대로 대관 예약을 받고 있다는 내용을 반박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고발장을 접수하러 가는 대책위와 유가족 대표

또, 대책위가 공개한 지난달 27일 손 씨와 B 기자의 통화 내용에 따르면, 손 씨는 “나는 진짜 지금까지 세상을 그렇게 안 살았는데 사람을 매도하니까 서운하다”며 B 기자에게 억울함을 호소한다.

이어지는 대화 내용은 B 기자가 묻는 대관 일정에 대해 손 씨가 거절하는 내용이다. B 기자는 “무조건 안 된다고만 하느냐”, “만나서 이야기하자는데도 왜 오지마라고 하느냐”, “내 깡다구 테스트 하느냐”, “그 정도 융통성도 없느냐”, “내가 부탁도 하고 시간도 많이 기다렸다”는 등 대관이 안 되는 이유를 캐물었다.

이에 손 씨는 “12월에 선예약이 돼 있어서 해줄 수가 없는 상황인데…”, “(12월에는) 해줄 수가 없는데 어떡해요”라는 등 이미 선예약이 돼 있어 부탁한 대관이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대책위는 “고인의 휴대폰에 남아 있는 통화 녹음파일, 패션산업연구원 관계자와의 통화 등 자료를 검토하고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한 결과, B 기자의 기사작성 목적과 과정의 행위는 대관업무 청탁 거절에 대한 보복 행위”라고 꼬집었다.

이날 유족과 대책위는 강요 미수, 명예훼손 등 혐의로 B 기자를 대구지방검찰청에 고발했다. 이들은 검찰에 손 씨가 대관 업무를 하며 사례를 받았다는 등 발언을 한 취재원을 참고인으로 불러 사실 여부를 확인해 줄 것을 요청했다.

또, 대책위는 손 씨가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도 진행하지 못한 것에 대해 또 다른 압박을 받았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광오 공공연구노조 단체교섭국장은 “고인의 법적 조치를 시에서 원하지 않는다 취지의 표현이 담긴 블랙박스 영상을 확보했다”며 “여러 자료를 토대로 고인이 법적 준비를 못하도록 위에서 눌렀다는 합리적 추론이 가능하다. 관련 영상은 법률 자문을 검토한 뒤 공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창규 한국패션산업연구원 기획경영실장은 “내용에 따라 연구원에서 대응해야 할 부분이 있고, 개인이 대응해야 할 부분이 있어 협의를 했다. 명예훼손 부분은 고인이 진행하시는 걸로 했고, 언론중재위 제소를 위해 사실확인 등은 기관 차원에서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이런 협의를 해서 진행하는 중에 극단적인 사고 발생했다”며 “(대구시가) 지원 기관 입장에서는 확대가 안 되길 바랬던 부분이지 제소를 못하도록 압력했다는 건 아니다.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고인께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셔서 그런 의혹이 있을 수도 있지만 저희도 조심스럽다. 대응을 고인과 같이 해야할 부분이라 함께 협의해왔다”며 “오늘 검찰 고발이 있었느니 연구원 차원에서도 진실 규명에 적극적으로 대응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구시 섬유패션과 관계자도 “언론중재위 이야기는 들은 바가 없다. 그 부분은 연구원에서 진행하던 사안이다”고 해명했다.

현재 대책위는 A 인터넷신문과 B 기자의 강요, 협박 의혹 인정과 사과, 진상 규명 등을 요구하며 고인의 장례를 무기한 연기했다.

A 인터넷신문은 지난 3일 B 기자가 10월 16일, 30일 보도한 기사를 삭제하고 사고를 올렸다. 이들은 “본지는 도의적인 책임을 느끼며 고인과 유가족분들께 심심한 조의를 표한다”며 “이번 사고와 관련하여 경찰 등 수사당국의 명확한 진상 조사가 이뤄지길 바랍니다. 수사 결과에 따라 본지 기자의 위법사실이 밝혀질 경우 이에 상응하는 강력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B 기자는 <뉴스민>과 통화에서 “거기에 대해서 할 말 없고요, 경찰 조사 과정에서 다 밝히겠습니다”는 말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후 수차례 다시 전화했지만, 연락을 받지 않았다.

손 씨는 지난달 31일 12시께 대구시 북구 산격동 한국패션센터 지하 1층 주차장에서 본인 차량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손 씨는 사망 직전 B 기자에게 “당신이 쓴 글에 대해 책임질 것을 바랍니다. 당신은 펜을 든 살인자요”라는 문자메세지를 보냈다. B 기자는 대관 업무를 담당하는 손 씨가 갑질을 하고 있다는 보도를 두 차례 했고, 대구시를 통해 대관 관련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