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총기난사 사건을 막을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또다시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초가을 밤 컨트리 뮤직을 즐기려고 야외 콘서트장에 모인 사람들을 향해 가해진 무차별 총격. 300m 떨어진 건물 32층에서 쏟아진 총탄에 영문도 모르는 사람들은 혼비백산 흩어졌다. 10분간 계속된 총격으로 화려한 라스베가스 거리는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10월 1일 라스베가스에서 벌어진 총기난사 사건으로 59명이 사망하고 500여 명이 넘게 다쳤다. 작년 6월 49명의 목숨을 앗아간 플로리다 올란도의 한 게이클럽에서 벌어진 총기난사 사건이 지금까지 미국에서 일어난 최대 규모의 총기난사 사건이었다. 약 1년 4개월 만에 그 기록을 깨는 최악의 총격 사건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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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베가스 참사 다음 날 <뉴욕타임즈>는 한 기사에서 작년 6월 12일 올랜도 총기난사 사건 이후 라스베가스 사건이 일어나기 전 477일 동안 일어난 총기 난사 사건을 집계했다. 사람이 죽거나 다친 크고 작은 모든 총기사건을 포함한 게 아니라 단일 사건에서 4명 이상이 목숨을 잃은 사건들만을 추적했다. 477일 동안 521건의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나 적어도 585명이 죽고 2,156명이 다쳤다.
끊임없이 일어나는 총기난사 사건들을 보면 무차별 대중을 향한 총격에 안전한 곳은 그 어디에도 없는 것 같다. 그리고 그 규모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많은 이들에게 이 심각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강력하고 유일한 방법이 총기규제인 것처럼 보이기 쉽다.
하지만 과연 총기 규제가 비극을 막을 수 있을까?
먼저, 총기난사 참사가 벌어질 때마다 매번 등장하는 총기규제론은 기본적으로 총기 소유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잠재적 범죄자들이 총기를 쉽게 살 수 없도록 규제하자는 것이다.
물론 모두가 총기 규제를 지지하지 않는다. 현재 가장 대표적으로 총기 규제를 반대하는 세력은 전미총기협회(The National Rifle Association of America, 이하 NRA)이다. NRA는 회원 5백만 명을 가진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이익단체 중 하나이다. 원래 남북전쟁 후 사냥과 사격 동호회로 출발했다가 1970년대 우익 정치세력으로 성장했다. 2016년 한 해에만 로비와 정치헌금으로 400만 달러를 썼고, 작년 대선에서는 트럼프를 공개 지지해 선거캠프에 3,000만 달러 이상을 기부했다. 트럼프뿐 아니라 존 매케인을 비롯한 공화당 정치인들은 대부분 NRA로부터 정치자금을 받고 있다.
NRA는 일부 범죄자가 저지르는 총기난사 사건을 막기 위해선 더 많은 ‘선량한’ 미국인들이 총기를 소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총에 맞서기 위해 더 많은 총이 필요하다는 논리이다. NRA가 후원하는 정치자금 대부분을 받는 공화당은 당연하게도 그들의 입장을 지지하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 4월 현직 대통령으로는 레이건 이후 처음으로 NRA의 포럼에 참석해 헌법이 보장하는 ‘총기 소유의 자유’ 수호를 다짐했다. 이번 사건 직후 라스베가스를 방문했을 때 총기 규제와 관련한 질문에 “오늘은 그 얘기를 안 할 것”이라며 답변을 회피했다. 백악관 대변인 또한 지금은 희생자들을 추모해야 할 때이지 성급하게 총기 규제 같은 정치적 논의를 할 때가 아니라고 일축했다. 바로 몇 달 전인 6월 초 런던에서 테러 소식이 들리자마자 트럼프가 자신의 반무슬림 반이민 행정명령을 옹호하는 트윗을 날리며 비극적인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했던 것과 사뭇 대조된다.
라스베가스 참사를 기회로 강력한 총기 규제 필요성이 대두하면서 민주당을 중심으로 총기 규제 움직임이 다시 본격화하고 있다. 특히, 범인인 스티븐 패덕이 범프 스탁(Bump Stock)이라는 장치를 이용해 자동 연사 기능을 가능하게 만들어 반자동소총을 자동소총으로 개조해 썼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100달러 정도면 구입이 가능한 범프 스탁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민주당에서 지금 얘기하는 것이 바로 범프 스탁 판매 규제다.
NRA도 이전과는 조금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다른 총기난사 사건 때처럼 10월 1일 이후 침묵으로 일관해 온 NRA는 사건 후 나흘 만인 지난 5일 드디어 침묵을 깨고 범프 스탁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데 동의한다고 했다. 공화당 하원의장인 폴 라이언도 범프 스탁에 규제를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따라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제한적이나마 총기 규제 법안이 통과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조심스레 점쳐지고 있다.
공화당과 민주당이 총기 규제를 두고 지금까지 상반된 듯한 입장을 취하면서 흔히 미국 우파는 총기 규제에 반대하고 진보 진영은 총기 규제에 찬성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총기 규제론에 대한 입장은 단순하게 갈라지지 않는다. 리버럴이 대부분 총기 규제를 찬성하는 것과 달리 미국 급진 좌파의 다수는 총기 규제가 진정한 문제 해결이 아니라고 본다.
총기 소유에 대한 인종주의적 이중 잣대
총기 소유는 자유 백인들만의 권리였다
먼저, 지금 논의되는 총기 규제 방안은 총기로 인한 사상자를 막는데 실질적으로 큰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총기 사고로 목숨을 잃는 사람들은 연간 약 3만3천 명에 달한다. 그중 3분의 2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다. 사람들을 자살로 내모는 사회의 변화 없이 총기 규제만으로 이들의 죽음을 막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인종주의와 소수자에 대한 혐오는 또 어떤가? 작년 올랜도 펄스 나이트클럽 총기난사 사건은 성소수자 혐오가 진짜 원인이었다. 2012년 콜로라도 스프링스의 낙태 옹호단체나 위스콘신의 시크교 사원, 그리고 2015년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의 한 흑인교회에서 벌어진 총기난사 사건들처럼 인종 혐오가 동기인 사건들도 부지기수다. 하지만 주류 언론과 정치인들은 사회에 뿌리 깊게 박힌 소수자 혐오와 차별, 인종주의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총기 규제를 해법으로 들고 나왔다. 점점 더 커지는 빈부격차와 소외로 성난 사람들의 분노가 사회적 약자와 불특정 다수에게 향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길은 사회의 구조적 변화 없이는 불가능하다.
총기 규제론에 회의적인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역사적으로 총기 규제가 인종에 따라 차별적으로 다르게 적용됐다는 점에 주목한다. 미국에서 총기를 가질 수 있는 권리는 수정헌법 제2조에 기반을 두고 있다. 하지만 18세기 제정된 수정헌법 2조 총기 소유의 자유는 시작부터 백인과 흑인에게 다르게 적용된 권리이다. 처음부터 총기 소유는 자유 백인들만의 권리였고, 이후 나온 총기 규제는 주로 흑인 커뮤니티를 타깃으로 했다.
1960년대 흑인민권운동이 전성기일 때 경찰 폭력과 극우 백색테러에 맞서 흑표범당(Black Panther Party) 같은 민권운동 급진 분파는 총기 소유권을 옹호했다. 흑표범당은 “정부가 흑인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 줄 능력도 의지도 없기 때문에” 스스로를 폭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무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총으로 무장하고 흑인 거주 지역을 순찰했다. 특히, 흑인들이 경찰의 검문을 받을 때마다 불법 검문을 하는 것이 아닌지 감시하는 ‘경찰 감시’ 활동으로 유명해졌다.
로널드 레이건이 캘리포니아 주지사였던 시절 통과된 총기규제법은 흑표범당을 무력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는 수정헌법 2조가 보장하는 총기 소유권이 백인우월주의에 저항하는 흑인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권리였음을 보여준다.
총기 소유에 대한 인종주의적 이중 잣대는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총기를 소지한 이유로 처벌받는 이들은 주로 흑인, 히스패닉, 원주민 등 소수 인종들이다. 특히, 겉으로는 중립적으로 보이지만 실제 피부색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는 각종 형사법은 흑인 등 유색인종의 대량 투옥(mass incarceration)을 불러 왔다.
스티븐 패덕은 그동안 신원조회를 아무 문제 없이 합법적으로 총기를 샀다
민주당이 그동안 통과시키려고 노력해온 총기 규제 법안 내용도 기본적으로 인종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다. 민주당이 제시한 규제안은 신원조회를 강화해 ‘테러리스트 감시 명단’이나 ‘비행금지 명단’에 올라 있는 사람들이 총기를 사지 못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비행금지 명단’은 9.11 이후 부시 정권이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핑계로 무슬림을 타깃으로 만든 것이다. 공화당 스스로 비행금지 명단에 포함된 사람 중에 “테러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보통 미국인들이 많다”며 민주당의 총기 규제안에 반대한 것처럼 비행금지 명단은 기준도 모호한 채 무차별적으로 무슬림을 겨냥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지금까지의 대량 사상자를 낸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들이 주로 기독교 우익 백인 남성들이었다는 사실에 비춰보면, 신원조회를 강화하는 규제안이 과연 총기 사건을 막는데 효과적인지 의문이다. 실제로 라스베가스 총기난사의 범인인 스티븐 패덕은 그동안 신원조회를 아무런 문제 없이 통과해 범행에 사용한 총기들을 다 합법적으로 샀다.
또 다른 문제는 정작 경찰이나 군이 ‘합법적’으로 휘두르는 총기 폭력에 대해 민주당을 위시한 자유주의 총기 규제론자들은 침묵한다는 것이다. 해마다 경찰의 총격에 사망하는 사람 수가 지난 50년 동안 있었던 모든 총기난사 사건의 희생자들보다 많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1966년부터 총기난사 사건으로 희생된 사람은 948명이다. 반면 2015년 한 해 동안에만 경찰의 총격에 사망한 사람은 그보다 훨씬 많은 1,185명이다. 그런데도 경찰이 사용하는 총기 폭력은 공권력이란 이름으로 아무런 법적 책임도 지지 않는 게 현실이다.
흑인에 대한 폭력은 흑인을 나무에 매달았던 밧줄 규제로 해결되지 않았다
더 근원적인 문제는 미국이라는 국가가 그 시작부터 원주민 대량학살이라는 폭력으로 세워졌고, 이후 제국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군사주의 확장을 통해 전 세계에서 전쟁과 국가 테러, 군부 쿠데타 등을 지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이제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화염과 분노’라는 원색적인 표현을 쓰면서 한 나라를 ‘완전히 파괴’하겠다는 무자비한 폭력을 선동하고 있는 지금, 미국은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기에 더 위험한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
무고한 시민이 총기 폭력으로 생명을 잃는 것을 막기 위해선 근본적인 폭력을 해결해야 한다. 고질적인 문제를 치료하지 않는 한 총기 규제만으로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총기 규제론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은 NRA나 우파의 더 많은 총기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다. 폭력의 진짜 원인에 반대하는 것이다. 지금 민주당처럼 생색내기가 아닌 효과적인 총기 규제는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회의 더 큰 모순과 폭력을 양산하는 구조적 문제 해결에 나서지 않고, 총기에만 초점을 맞추는 규제 논의는 진정한 문제 해결을 가능하게 하지 않는다. 미국 역사에서 가장 폭력적인 사회 문제 중 하나였던 흑인에 대한 폭력은 흑인을 나무에 매달았던 밧줄을 규제하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