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진 천막, 짝을 잃어버린 신발, 뜯긴 옷가지가 무덤을 이뤘다. 가구 더미로 쌓은 바리케이드 위에서 싸움을 준비하던 영화 <레미제라블>의 한 장면처럼,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마을회관 앞 도로에는 그날의 파편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8일 도금연(80) 씨는 소성리 마을에 온 방송인 김제동(43) 씨를 붙잡고 응어리를 쏟아냈다.
“김제동이도 반갑지도 안 하다. 우짜노 이제. 김제동이가 문재인이한테 우리말을 좀 잘 해줘야지. 촛불하면서 우리 편 되는 척하면서 이래 사드를 들여다 놓느냐. 사드 가지고 가라고 그래. 우리 소원이다. 사드만 다 가져가라.”
애꿎은 김제동 씨만 입을 꾹 다물고, 부아가 난 주민들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다. 소성리 주민들이 제동 씨를 붙잡고 하소연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주민들이 가장 잘 아는 유명인이기 때문이다. 텔레비전에 등장하는 수많은 정치인들은 소성리에 들르지 않았다. 7일 저녁 소성리에 온 정의당 김종대 의원이 유일한 정치인이었다. 사드 발사대를 추가 반입한 정부 욕을 실컷 할 수 있는 상대가 제동 씨였다. 여당 국회의원들은 침묵했고, 발사대 4기를 추가 반입한 문재인 대통령에 화를 쏟아내는 할매, 할배들은 인터넷에서 철저히 조롱당했다. “다 자업자득이다. 홍준표 찍어놓고 할 말 없다”는 식으로. 그렇게 성주는 철저히 고립됐다. 국가가 시키는 대로 평생을 살아온 성주 주민들은,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저항했다는 이유로 시민권을 부정당했다.
1박 2일, 고립된 대한민국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사드 발사대 추가 배치 작전은 누구를 위한 일이었나
6일 오전 8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오늘 준비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국방부 관계자였다. 대구 도심을 벗어나 성주읍을 지났다. 905번 지방도를 따라 25분을 더 가서야 소성리 마을회관 앞에 도착했다. 오후 3시 30분, ‘사드 배치 철회 소성리 수요집회’를 마친 성주·김천 주민과 연대자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사드기지로 향하는 마을회관 앞 도로를 차량으로 막기 시작했다. 차량 사이에 한 사람이 앉을 수 있는 틈을 만들어 놓고, 차량 2대를 철봉을 붙여 용접했다.
오후 4시가 되자, 150여 명이 차량 틈 사이를 빼곡하게 채웠다. 오후 5시 30분께 국방부가 사드 발사대 추가 반입을 발표하자, 타지에서 연대자들이 하나둘 소성리에 도착했다. 경찰도 재빠르게 움직였다. 전국 곳곳의 경찰은 ‘대한민국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로 네비게이션을 찍었다. 마을이 생겨난 이래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순간이 됐다. 마을회관 앞 도로에 4백여 명이 자리했지만, 인원은 더 늘지 않았다. 사방의 도로가 모두 경찰에 막혔다. 사드 반입 소식에 소성리로 달려오던 연대자 1백여 명은 3km 떨어진 도로 위에서 발만 동동 굴러야 했다.
“마을 주민 여러분, 여러분의 주장에 대해서는 충분히 지원하겠습니다.” 오후 9시가 지나자 경찰 방송차에서 해산 경고방송이 시작됐다. 단 한 번도 ‘보상 ‘을 언급한 적 없던 성주·김천 주민들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다 필요 없다 안 카나. 왜 헛소리를 지끼노.” 그러고는 옆에 앉은 이들과 팔을 굳게 걸었다. 경찰의 경고방송과 주민들의 함성이 충돌하는 와중에도, 마을회관 한편에서는 주먹밥을 만드는 손길이 분주했다. 하루 전 배치를 통보한다고 했으니, 밤새 싸워야 했다. 새누리당 당원이었다가 사드를 만난 이후 직업도 바꾼 채 1년 넘게 사드 반대 투쟁에 나선 이민수(38) 씨가 컨테이너 박스 위에 올라가 촬영 중인 기자에게 물과 주먹밥을 건넸다. 대치한 지 6시간이 흐른 자정 무렵, 경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400일 넘게 사드 반대 싸움을 하다가 정치·안보 박사가 다 된 성주, 김천 주민 얼굴들이 보였다. 곧 작전이 시작됐다.
밀고, 당기기가 반복되는 가운데, 경찰이 발 디딘 면적이 조금씩 넓어지고 있었다. 주민과 연대자들은 아스팔트 바닥에 드러누워 저항했지만,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여기저기서 비명이 들렸다. 소리를 내던 구급차는 뒤엉킨 도로를 바라보다가 돌아갔고, 홀로 간단한 약과 진료도구를 챙겨온 성주효병원 노태맹(55) 원장만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흰 저고리와 까만 치마를 입고 바닥에 똬리를 튼 원불교 교무들이 하나둘 끌려 나왔고, 큰 십자가를 들고 경찰 앞에 서 있던 문규현(68) 신부도 끌려 나왔다 다시 연좌하기를 다섯 번이나 반복했다. 농성 중인 시민들을 밀어내던 20대 젊은 경찰 10여 명도 숨을 헐떡이며 신음하고 있었다.
아수라장이었다. “너희들은 어느 나라 경찰이냐”는 호통과 함께 “미국 경찰 물러가라” “사드 가고 평화 오라”는 구호만이 소성리 새벽하늘에 흩어졌다. 새벽 2시께 독일로부터 국제 전화가 걸려왔다. 받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가 세 번째야 전화를 받았다. “나중에 전화하세요.”라고 말했는데, 수화기 너머로 “Do you speak English?”가 흘러나왔다. 무조건 “OK”만 반복했다. 전 세계가 소성리를 보고 있었다. 순간, 러시아 순방을 떠난 문재인 대통령은 이 장면을 보고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졌다.
새벽 5시 30분, 동이 트기 시작하자 주민들은 도로 밖으로 밀려났다. 경찰 구난차가 들어와 차량을 한 대씩 끌어내기 시작했다. 차량 안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저항하는 주민들도 이내 끌려 나왔다. 마을회관 옥상에 오르자 60대의 한 남성이 줄담배를 피우며 도로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하…어쩜 4월 26일이랑 이렇게 똑같노. 또 못 막았어. 1년 넘게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싸웠는데…다 들어오겠어”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오전 8시 11분께 사드 발사대 4기와 공사 장비 20여 대가 순식간에 지나갔다. 옥상에 올라와 있던 마을 주민은 사드 발사대가 들어가는 모습을 바라본 후 눈꺼풀을 닫았다. 밤샘 작전에 지친 경찰 수십여 명도 고개를 푹 숙이고 눈을 감고 있었다. 정부가 바뀌기 전 4월 26일 새벽 2시께 배치된 사드가 문재인 정부에서는 해가 뜨고 난 다음이었다는 게 차이라면 차이였다. 국방부는 곧바로 “잔여 발사대 4기의 경북 사드 기지 임시 배치를 완료했다 “고 발표했다.
상처와 분노로 일상을 빼앗긴 사람들.
그래도 국방부 시계는 돌고, 평화 바라는 이들의 시계도 돈다
8일 소성리에서 만난 얼굴들은 하나같이 굳어 있었다. 그리고 소성리 마을회관 앞 도로에 다시 세워진 천막에는 ‘사드적폐 수용, 문재인은 박근혜가 되려는가!’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100m 떨어진 소성보건소 앞 경찰의 모습도 여전했다. 오후 5시께 소성리에서 10분 거리의 초전면사무소 건너편 식당에 들어가려 차를 세웠다. 외지에서 온 승합차가 멈추더니 “여기, 사드 설치된 곳이 어딥니까?”라고 물었다. 창문 너머 차 내부에는 태극기와 성조기가 실려 있었다.
성주읍으로 나와 ‘한반도 사드 배치 반대’ 현수막을 내걸고 장사하는 한 식당에 들어갔다. 식당 주인이 물었다. “이제 어쩝니까?” 기자가 말했다. “밀물이 있으면 썰물도 있지요. 들어왔다가 영영 안 나가겠습니까.” 밥을 먹다가 전화 한 통을 걸었다. 7일, 사드 발사대 추가 배치를 막다가 갈비뼈에 금이 간 성주 주민 배미영(38) 씨였다. 웃지만 않으면 괜찮다며, 아직 끝난 게 아니라던 그는 며칠 뒤 병원에 입원했다.
16일 소성리에서 열린 범국민평화행동에서 임순분(64) 부녀회장은 “사드 배치 이후 우리 주민은 서로 보기만 해도 울었습니다. 한밤중에 자다가 꿈에서도 사드가 들어오는 걸 보고 새벽 4시 마을회관에 뛰쳐나온 할머니도 있습니다. 그날 이후 수면제를 먹지 않고는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주민 고통은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여러분이 우리 손을 잡아준다면 나약함을 떨치고 긴 싸움을 하려고 합니다. 사드가 철거되는 그 날까지, 단시간이 아닌 긴 싸움을 준비해서 사드가 뽑혀나갈 때까지 싸우겠습니다. 저희들 손을 잡아주시겠습니까“라고 말했다.
곧 추석이다. 지난해 추석에도 성주 주민들은 하루도 쉬지 않고 촛불을 들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촛불을 든다. 성주에서 참외빵을 만드는 가게 ‘빵야 ‘를 운영하는 방민주(39), 김상화(38), 이민수 씨는 추석을 앞두고 바삐 일한다. 그러면서도 안산, 서울, 군산 등 전국 각지를 누비는 ‘파란나비 원정대’ 버스에 몸을 실을 계획이다. 국군 병사 생활에 스트레스를 받는 이들이 자조하면서 하는 말이 있다. ‘그래도 국방부 시계는 돈다고.’ 그렇다. 사드를 배치한 국방부 시계도 돌지만, 평화를 바라며 시민 저항권을 발동한 이들의 시계도 돌아간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던 대영제국도, ‘해방될 줄 몰랐다’며 일본제국에 부역한 역사도 저물어갔다. 성주군청 앞 파란나비광장과 소성리 마을회관 앞에는 “사드 배치 반대”와 “문재인 정부 성공”을 기원하며 분신한 故 조영삼 씨의 분향소가 설치됐다. “사드 가고 평화 오라.”
*이 기사는 워커스 35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