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만 (문제가) 많은 줄 알았는데, 대구도 많네요”
15일 동대구역 앞 광장에서 부당노동행위와 비정규직 차별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현수막을 들고 있던 민주노총 조합원 80여 명을 본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이 꺼낸 첫 마디였다. 김 장관은 전국 9개 도시에 설치된 ‘현장노동청’ 방문을 위해 대구에 왔다. 이날 오전 울산을 방문한 다음 오후 2시 20분께 대구 현장노동청을 찾았다.
금속노조 아사히비정규직지회, 한국OSG분회, 성서공단노조 조합원 80여 명은 이날 오후 1시 30분부터 김 장관을 기다리고 있었다. 노동자들은 “부당노동행위 꼭 처벌해주십시오” 등 바람을 전달했고, 김영주 장관은 80여 명의 노동자들에게 악수를 건넸다.
취임(8월 14일)과 함께 현장 목소리를 강조해 온 김 장관의 모습은 분명 이전과 달랐다. 현장노동청 설치하고 9개 도시를 직접 다니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생소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 7월 5일 노동부에서 ‘고용노동부’로 이름을 바꾼 이후 노동행정은 ‘고용’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복수노조법 시행과 동시에 ‘노조파괴 시나리오’가 작성돼 실제 노동조합 탄압이 이뤄졌음에도 노동부는 ‘강 건너 불구경’하기 일쑤였다.
비정규직·해고 문제 알리려 나온 노동자들 손잡고
“노동부 잘못한 이야기 해 달라” 노동행정 변화 시사
노동자들과 인사를 마친 김영주 장관은 현장노동청 자리에 앉아, 민원을 제기하러 온 노동자들과 직접 이야기를 나눴다.
차차원 금속노조 대구지역지회장은 비정규직 차별 문제로 최근 파업에 나선 한국OSG분회 이야기를 꺼내면서 “복수노조법 시행 이후 교섭창구 단일화가 노조 탄압에 악용되고 있다. 사측은 부당노동행위 근거 자료도 없애 버리기 때문에 부당한 일을 겪고도 해결이 어렵다”고 말했다.
차헌호 아사히비정규직지회장도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원청과 하청업체가 공동으로 부당노동행위 책임이 있다고 판정했는데 행정소송에서 뒤집어졌다. 5천 페이지가 넘는 자료를 노동부에 달라고 요청했지만, 단 한 줄도 주지 않았다. 그러면서 행정소송 결과에 따라 노동부가 처리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며 “그리고 최근 노동부는 2년 동안 쥐고 있던 부당노동행위 사건을 무혐의 처리했다”고 말했다.
김희정 성서공단노조 위원장은 ‘태경산업’이 직장 내 노조 활동 감시를 위해 CCTV를 16대나 설치한 문제를 제기했다.
노동자들의 민원을 들은 김영주 장관은 “근로감독관이 부족하고, 잘못하는 것도 있다. 하나하나 바로 잡도록 하겠다. 회사, 노조 어느 쪽 편을 드는 게 아니라, 회사가 잘못한 것, 노조가 잘못한 것도 있다”며 “문제가 생기고 나서 사후 수습도 필요하지만, 사전 예방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가 야심차게 추진하는 ‘현장노동청’을 노동행정에 반영하는 통로로 활용하겠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김영주 장관은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광화문에서 집회하고 1인시위하는 분들이 있었다. 한 번에 바뀌지 않는다.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위해 9월 28일까지 의견 청취를 한 다음 현장노동청 TF를 꾸려서 국정감사 이후 장기적인 관점에서 문제를 풀어가겠다”고 말했다.
이어 김 장관은 “잘못된 관행, 노사관계로 손실이 있다. 특히, 산업재해는 노동자에게도 손실이지만, 회사에게도 손실”이라며 “한 해 1천 명 이상이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는데, 노사분규와 산업재해를 줄이면 노, 사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중소상공인들과 만나 의견 청취한 김영주 장관
노동자들과 대화를 마친 김영주 장관은 2시 50분께 동대구역 동문 광장으로 이동해 중소상공인들과 대화 시간을 가졌다. 이 자리에는 김도아 파닭 대표, 류미숙 한누리농산 대표, 성격덕 경동어패럴 대표, 박한균 기소야 대표, 김태순 중서부슈퍼마켓협동조합 이사장, 손영미 사회복지법인 숲 대표, 김연창 대구시 경제부시장이 참석했다.
중소기업인들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경영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앞서 현장노동청을 방문한 사용자들도 ‘최저임금 내외국인 차등 적용’, ‘업종별 최저임금 차등 적용’ 등의 민원을 제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김영주 장관은 “고용보험에 가입한 3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는 최저임금 인상분을 지원하기 위해 예산 3조 원을 확보했다. 그러나 언제까지 정부가 임금 보조 등 지원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대기업 중심의 성장이었던 정책을 바꾸는 과정에서 나오는 정책”이라며 “유통하는 중간자, 원청과 하청의 관계 개선을 통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에게도 이익이 돌아가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는 28일까지 현장노동청에서 취합한 민원과 의견을 정리해 행정에 적극 반영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김영주 장관의 의지도 강하다. 그러나 노동자와 사용자 간 입장이 팽팽한 만큼, 현장 목소리도 어디에 중심을 두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노동행정에 대한 정부의 관점이 중요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