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도 변한다] (1) 수요일엔 ‘평화의 소녀상’ 청소를

8월 첫 주 수요일부터 청소 시작한 시민들
탄핵 촛불 통해 만나···자유한국당 해체 1인시위도
“청소뿐 아니라, 소녀상 의미도 알리고 싶어”

13:11

[편집자 주] 2016년 11월부터 지난 3월까지 대구에서 17차례 전 대통령 박근혜 탄핵 촉구 촛불집회가 열렸다. 연인원 21만 명이 집회에 참여했다. 하지만, 두 달 뒤 대구는 다시 ‘역적’의 도시가 됐다. 탄핵 국면에도 불구하고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가 가장 많은 득표를 했기 때문이다. 손가락질이 빗발쳤다. 요지는 변할 줄 모른다는 거였다. 그러나 대구도 변하고 있다. 다만 속도가 느릴 뿐이다. <뉴스민>은 탄핵 정국을 지나오면서 변화를 맞은 대구 시민들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얼마나 진행될지 알 수 없다. ‘이 사람이 딱 인터뷰 대상이다’ 싶은 독자들의 제보도 받는다.

8월 23일 수요일 저녁 7시. 어스름하게 땅거미가 지기 시작할 무렵 성인 8명이 대구 중구 2.28 기념공원 앞에 모였다. 정확히는 지난 3월 기념공원 앞에 자리 잡은 ‘평화의 소녀상’으로 모여들었다.

이 중 일부는 주섬주섬 가방에서 물티슈와 휴지를 꺼내 들었고, 또 다른 일부는 소녀상 옆에 테이블을 설치했다. 물티슈와 휴지를 꺼내든 이들은 그걸로 소녀상 주변을 닦기 시작했다. 지난 일주일 동안 대도시의 중심가 매연으로 힘들었을 소녀상 얼굴이 밝게 빛났다. 소녀상 우측으로 자리 잡은 테이블에는 세월호 안전공원 설립을 요구하는 서명 판이 놓였다.

▲대구 시민들이 대구 중구 2.28공원 앞 평화의 소녀상을 청소하고 있다.

김혜련(42) 씨를 비롯해 이날 소녀상 청소와 서명 운동을 진행한 대구 시민 8명은 지난 8월 첫 번째주부터 매주 수요일 소녀상 청소를 하고 있다. 이들은 전 대통령 박근혜 탄핵 촛불 집회를 거치면서 서로를 알게 됐다. 지난 6월부터는 ‘자유한국당 해체를 바라는 대구시민들’이란 이름으로 자발적으로 모여 한국당 대구시당 앞에서 해체 촉구 1인 시위도 진행했다.

탄핵 정국을 지나오면서 이른바 ‘각성’한 대구 시민들이 스스로 모여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지난 7월 한 달 넘게 이어오던 자유한국당 해체 촉구 1인 시위를 마무리했다. 새로운 활동을 고민하다 지난 3월 건립 이후 제대로 돌보는 사람이 없었던 소녀상 청소를 시작했다. 8월부터 매주 수요일 별다른 일이 없으면 많게는 10여 명, 적게는 2~3명이 나와 청소를 한다.

청소를 마친 이승욱(50) 씨는 “지난번에 한국당 해체 집회는 정치색이 짙은 운동이었고, 이건 국민이면 누구나 공감하는 문제이지 않냐”며 “대구라는 특수성도 있지만 앞으로도 어떻게 하면 시민들과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고, 그 일환으로 소녀상 청소도 시작했다”고 청소를 시작한 취지를 설명했다.

이들 중 맏언니 격인 혜련 씨는 처음 청소를 시작할 때 지저분했던 소녀상을 기억했다. 혜련 씨는 “담배꽁초나 침을 뱉어놓은 것도 많았고, 술병도 있었다”며 “저희가 청소를 시작한 후부터 좀 덜한 것 같은데, 꼭 저희 때문은 아니고 공원 관리하는 분들도 좀 더 관심을 쏟기 시작한 것 같다”고 말했다.

혜련 씨는 청소를 시작하고 얼마 안 있어서 “대통령이 좌빨이 되니까, 다 좌빨이 되어서 나온다”고 소리치는 할아버지를 만나기도 했지만, “청소를 해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시민들도 있다면서 웃었다.

혜련 씨는 “간혹 애기 데리고 지나는 학부모 중에서 애기가 이거 뭐냐고 물으면 설명해주는 분들도 있는데 ‘몰라도 돼’ 그러고 지나는 분들도 많더라”며 “조만 간엔 청소도 하지만 15~20분 정도 소녀상 의미를 설명하는 발언도 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일단 올해 12월까진 청소를 계속할 계획이다. 애초 소녀상을 건립할 당시 현재 건립 장소가 최종 장소로 확정되지 않았고, 12월에는 이동할 수도 있다는 이야길 들었기 때문이다. 혜련 씨는 “우리가 청소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역사 동아리 학생들이랑 연계해서 청소년들부터 소녀상에 관심 갖는 분위기를 만들었으면 한다”고 바람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