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유일 원자폭탄 피해 자료관이 6일 경남 합천에서 문을 열었다.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된 후 72년 만이다. ‘72년만’, ‘국내 최초’라는 수식어가 원폭 자료관을 설명하는데 사용 됐다. 하지만 ‘72년 만에 국내 최초’로 문 연 자료관은 앞으로 더 많은 숙제를 예정했다. (관련기사=[국내 첫 원폭자료관 개관②] “대한민국 정부가 원폭 피해자에 관심 가져야 해요”(‘17.8.6), [국내 첫 원폭자료관 개관③]“일본 패배 원폭 때문 아냐···‘원폭 신화’에서 해방되어야”‘17.8.7))
6일 오전 10시부터 뙤약볕 아래에 얼굴 가득 주름진 노인들이 자료관 앞마당에 모였다. 30분 뒤부터 열리는 자료관 개관식에 참석하기 위해 찾아온 원폭 피해자들이다. 이날 개관식에는 이들을 포함해 하창환 합천군수, 강석진 국회의원(자유한국당, 경남 산청·함양·거창·합천) 등 정관계 인사를 포함해 약 300여 명이 참석했다.
문종주(62) 씨도 형님 택주(65) 씨와 함께 개관식을 찾았다. 문 씨 형제는 원폭 2세 피해자들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장애를 갖고 태어난 형님은 이제 종주 씨가 없으면 생활이 불편할 정도다. 종주 씨도 몇 해 전 폐암으로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국가가 이들에게 베푸는 혜택은 기초수급자로서 지원하는 것이 전부다.
아버지는 일제의 눈을 피해 낮에는 산에 숨고, 밤에는 집에 내려와 밥을 먹다가 붙잡혔다. 일본으로 끌려가서는 비행기 격납고로 사용할 토굴을 파는 데 투입됐다. 하루가 멀다하고 굴이 무너져 사람이 죽었다.
여기서 죽으나, 도망가다 죽으나 마찬가지란 생각으로 동료들과 달아난 곳이 하필이면 히로시마였다. 그곳에서 원폭을 만났다. 우여곡절 끝에 살아남은 문 씨 형제의 아버지는 밀항선을 타고 조선으로 돌아왔고, 환갑을 채우고 숨을 거뒀다.
“원폭에 대해 취재는 많이들 해갔는데, 앞으로 좋은 일, 좋은 방향으로 갈 거라면서. 법도 만들어졌는데,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셔서 혜택도 받지 못했고,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큰 걸 바라는 게 아니라, 병원이라도 편하게 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자료관만으론 문 씨 형제의 바람을 이루긴 힘들어 보였다.
지난 3일 미국 정부와 록히드 마틴 등 원폭 제조사에 원폭 투하 책임을 묻는 민사조정신청을 낸 김봉대(79) 씨 부부도 개관식을 찾았다. 봉대 씨는 아들 형률 씨가 살아생전에 남겨놓은 자료와 유품을 자료관이 수용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원폭 2세 피해를 증언하고, 원폭 피해자 인권 운동을 펼쳤던 형률 씨는 많은 자료를 남기고 떠났다. 봉대 씨는 “20박스가 넘는다”고 말했다. 자료는 부산 민주공원에 기증돼 있다.
그 때문인지 72년 만에 처음 생긴 자료관은 기대만큼 자료가 풍부하지 못했다. 개관을 준비하는 단계에서부터 자료 수집이 원활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
심진태 원폭피해자협회 합천지부장도 “피해자들이 일제강점기에 못 배운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자필로 자기 피해를 쓸 수가 없어요. 국가에서 예산을 내서 개개인을 만나서 이야길 듣고 기록해야 하는데 그게 아쉽다”고 말했다.
최윤자 합천 주민복지과장은 “전시품목이 적어서 몇 품이 있다고 말하긴 곤란하다. 앞으로 지속 홍보해서 자료를 받고 계속 채워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당장 자료관 운영비용도 문제다. 현재까진 합천군이나 국가 차원에서 자료관 운영비 지원이 없기 때문이다. 심진태 지부장은 “집을 지어주셔서 운영비 이야기까진 못하고 있는데, 제대로 운영을 하려면 아무래도 국가 차원에 지원이 있어야 할 것 같다”며 “내년에는 예산에 반영될 수 있도록 제안해볼 생각”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