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의회, 수성구의회가 청소년 노동권 보호를 위한 조례 제정을 앞둔 가운데 가장 먼저 조례안이 발의된 달서구는 상임위에서 부결돼 본회의에서 논의도 하지 못하게 됐다. 인구가 많은 달서구(2017년 5월 31일 기준 58만7천여 명) 특성상 노동하는 청소년 비율도 높기 때문에 조례가 반드시 제정돼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됐고, 조례안을 발의한 김귀화 달서구의원(더불어민주당, 본리·본·송현동)도 조례안을 보완해 다시 발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15일 오후 2시, 달서구의회 2층 회의실에서 ‘달서구 청소년 노동인권 증진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김귀화 의원, 대구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인권운동연대가 주최한 이번 토론회는 달서구, 대구교육청 관계자가 토론에 참여했다. 이날 주민 40여 명이 참석했고, 김해철 달서구의회 의장(자유한국당)과 더불어민주당 소속 구의원들도 참석했다.
김귀화 의원은 “저도 실업계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일찍부터 학업과 노동을 병행해 왔다. 달서구는 61만(2016년 기준) 인구가 살고, 성서공단도 있다. (다른 구보다) 선제적으로 조례를 제정해 당연히 통과되리라 생각했는데, 상임위에서 보류되고 부결되는 상황을 겪었다”며 “인권은 사람이 태어나 가지는 당연한 권리이고, 노동권 또한 마찬가지다. 오늘 토론회에서 많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조례를 다시 발의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참석한 주민들은 지난 14일 달서구의회 복지문화위원회에서 조례안이 부결된 것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장영옥(55, 달서구 도원동) 씨는 “사회 안전망을 만드는 것이 정치인데, 정말 이 조례를 부결시킨 게 달서구 주민으로서 이해가 안 된다”고 지적했다. 장 씨는 토론회 시작 전, 자유한국당 소속 구의원은 오지 않느냐고 묻기도 했다.
장 씨는 “청소년들이 다 사정이 좋아서 일을 안 하면 좋지만 현실적으로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안전망을 만들어 보호하는 게 맞다. 소수의 경제 주체 의견보다 다수 노동자 이야기가 더 중요하다”며 “지역에 인구가 가장 많은 달서구에서 조례를 부결시킨 것은 다수 지역민 의견을 무시한 거고, 반드시 이 조례를 통과시킬 것을 달서구의회에 요구한다”고 말했다.
대구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활동가인 박기홍(37, 달서구 이곡동) 씨도 “달서구의회에서 두 번에 걸쳐 조례안이 파행된 것에 대해 주민으로서 느끼는 자괴감이 크다. 유독 왜 달서구만 역행하는지 다수당의 횡포가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다”며 “달서구는 성서공단이 있기도 하다. 달서구가 더 눈여겨보고 특성화시켜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대구 특성화고 재학생 34.9%가 달서구
학교 밖 청소년 8개 구·군 중 2위
노동인권 실태 파악과 교육도 필요
대구 특성화고등학교 19개 중 달서구에만 6개 특성화고가 있다. 전체 특성화고 재학생 중 달서구민이 34.9%를 차지한다. 특성화고는 졸업과 동시에 취직을 목표로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현장 실습을 시작한다. 또, 학교 밖 달서구 청소년은 지난해 기준 408명으로 대구 8개 구·군 중 수성구(487명)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달서구가 일하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지원은 특성화고 취업박람회 개최, 지역 우수기업 현장 탐방 등 일자리 위주 사업이 대부분이다. 학교 밖 청소년을 대상으로는 경제 기본 용어나 근로계약서 작성법 등에 대한 교육을 년 1회 실시하는 것이 전부다. 이 교육은 향후 반기별 1회로 확대할 예정이다.
황용선 대구교육청 직업교육담당 장학관은 “학생이라는 신분은 학교, 교육청 울타리에 있다. 사리분별이 제대로 서지 않은 상황에서 일자리를 구했을 때 침해받는 것이 있다”며 “교육자 입장에서는 이런 무해한 환경에 노출된 학생들을 보호하는 측면에서 지도한다. 아르바이트 차원이 아니라, 정상 교육과정을 잘 이수하고 제대로된 일자리를 구하는데 필요한 근로관계법, 노동인권 여러 교육을 한다고 하지만 다소 미흡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조은별 대구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조사연구팀장은 “청소년이 미성숙하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을 잘 모른다는 차원으로 본다면 조례가 제정되더라도 실효성이 없다”며 “청소년을 특수하게 바라보는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 노동자를 악용하는 사례가 있기 때문에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 조서환 달서구 복지문화국 평생교육과장은 “노동이라는 부분은 자치단체 사무에는 없고, 국가 사무로서 고용노동부에서 총괄하고 있다. 사실 자치단체는 여기에 관심을 못 두고 있었다”며 “국가가 지방자치단체와 공조해서 할 수 있도록 업무를 확대해 준다면, 지자체에서도 예산을 받아 더 적극적으로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제안했다.
안영신(서울 성북구) ‘시민모임 즐거운 교육 상상’ 공동대표는 “서울시만이 아니라 모든 지방자치단체가 노동행정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며 “행정은 대부분 일자리 접근이고, 청소년의 목소리를 들을 경로가 없다. 인권 침해에 대한 권리 구제나 노동인권 교육을 반영할 경로가 없다. 이건 조례가 부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며 조례 제정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안 대표는 “조례에 청소년을 교육의 주체뿐 아니라 노동의 주체로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 목적을 분명히 하고, 청소년 노동인권 생태계를 알아보는데 중요한 실태조사 및 점검을 몇 년에 한번 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적시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날 토론회는 2시간 동안 이어졌다. 끝으로 김귀화 의원은 “오늘 나온 의견을 모아서 다시 한 번 조례를 꼼꼼히 다지고, 새로운 조례를 발의해서 꼭 조례가 통과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드린다”며 “함께 힘을 실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 14일 달서구의회 복지문화위원회는 전체 8명(자유한국당 5, 더불어민주당 2, 무소속1) 중 7명이 출석한 가운데 1명 찬성, 1명 기권, 5명 반대로 조례안이 부결됐다. 지난 2월 조례안 심사 당시 해당 상임위원들은 ‘상위법을 벗어난다’, ‘청소년 적용 나이가 24세로 많다’, ‘사업주에게 부담이 된다’는 등 이유로 조례안을 보류한 바 있다. (관련 기사 대구 달서구의회, “사업주 부담” 이유로 청소년노동인권조례 심사 보류)
같은 날 수성구의회에서는 석철 수성구의원(무소속, 지산동)이 발의한 ‘대구광역시 수성구 시간제 근로청소년 등 취업보호와 지원에 관한 조례안’이 상임위원회 심사를 통과했고, 대구시의회에서도 김혜정 대구시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이 ‘대구광역시 청소년 노동인권 보호 및 증진 조례안’을 대표 발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