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골짜기 물이 참 좋다. 그 골짜기가 우리 밥그릇이라. 밥그릇 뺏깄지. 우리 논 열 마지기가 다 저기 있어. 그러니까 그 물로 다 농사짓고 했지. 밥하고, 빨래하고. 병이 없잖아 우리가. 우리 마실에 90살 먹은 사람이 열이라. 그러니까 심장이 많이 상하지. 군인들 들오고는 못 가봤어. 오늘 한 번 가볼라고 안 가나.”
사드 배치가 진행 중인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마을회관 앞에서 장경순(85) 할머니는 굽은 허리를 보행기에 의지해 ‘소성리 범국민 평화행동’ 행렬 끝에 섰다. 장 할머니는 사드가 배치된 달마산에서 흐르는 평화계곡을 ‘밥그릇’이라고 불렀다.
13일 오후 2시 30분, 소성리 마을회관 앞에는 한반도 사드 배치 철회를 요구하는 ‘제3차 소성리 범국민 평화행동’이 열렸다. 문재인 대통령 당선 후 처음 열리는 소성리 평화행동에는 전국에서 시민 800여 명이 모였다.
장경순 할머니는 굽은 허리로 사드 부지로 향하는 행렬을 따랐다. 오늘은 진밭교 너머에 있는 논을 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에서다. 할머니는 연신 질서 유지선을 든 경찰들 바라보며 “우리 손자가 보고 싶어. 그래서 내가 자꾸 쳐다본다”며 “내가 무슨 죄를 지었냐면 우리 신랑하고 열을 군에 보냈어. 신랑, 아들, 손자까지”라고 말했다.
장 할머니는 18살에 소성리로 시집왔다. 그동안 군대에 보낸 가족만 열 명이라고 한다. 나라 지키라고 신랑, 아들, 손자들을 다 군대에 보냈는데, 사드라는 것이 나라를 지킨다며 소성리에 덜컥 들어와 할머니의 ‘밥그릇’을 빼앗았다.
장 할머니 앞으로는 전국 각지에서 모인 이들이 늘어섰다. 남쪽 끝 전라남도 해남군에서 올라온 이경숙(53) 씨는 벌써 소성리 방문이 두 번째다.
이 씨는 “문재인 대통령에 기대도 하지만, 후보 시절에 확실히 사드를 철회한다고 말한 적은 없어서 조금 걱정스럽다”며 “오늘 전국적으로 소성리에 집중해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우리가 사드 철회를 원한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팽세현(18) 씨는 경기도 안양시에서 친구와 둘이 평화버스를 타고 소성리를 찾았다. 그는 소성리와 전쟁 무기인 사드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팽 씨는 “소성리는 정말 평화롭다. 초록색도 정말 많고 이런 동네에 전쟁을 위한 무기가 들어오는 게 말이 안 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사드다”며 “선거 결과 때문에 성주를 욕하시는 분들은 굉장히 배려가 없는 것 같다. 분명히 여기 사드를 반대하며 투쟁하는 분들이 계시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날 참가자들은 “사드 원천 무효”를 외치며 마을회관 앞부터 진밭교, 김천 방면 평화계곡까지 인간 띠를 잇고, 평화돌탑을 쌓을 돌을 손에 손으로 날랐다. 이들은 진밭교 앞 원불교 평화교당 옆에 사드 철회를 요구하는 평화돌탑을 쌓았다.
오후 5시부터 열린 본대회에는 정의당 윤소하, 무소속 김종훈 의원이 참석해 국회 차원에서 사드 배치 과정의 위법성과 한반도 필요성을 따지겠다고 약속했다.
참가자들은 결의문을 통해 “문재인 정부는 우선 사드 배치와 관련한 일체의 행위를 즉각 중단시키고 점령군처럼 들어와 불안감을 조성하는 경찰력을 소성리에서 철수시켜야 한다”며 “이어 사드 배치에 관한 한미 간 합의 실체와 비용 부담 논란, 불법 행위 등 전반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와 관련 책임자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고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