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형복의 유럽연합:EU 톺아보기] 리스본조약이 뭔데?

리스본조약 제50조 vs EU조약 제50조

22:44

EU와 리스본조약, 도대체 어떤 관계야?

[사진=http://www.publicdomainpictures.net/]
작년(2016년) 6월 23일 영국이 국민투표로 EU 탈퇴를 묻는 브렉시트에 찬성하자 관련 기사가 쏟아졌다. 브렉시트에 관한 기사를 읽으면서 독자들의 머릿속에 각인된 것이 있으니 바로 ‘리스본조약’이다. 이를테면, 이런 내용이다.

“영국 정부가 오는 29일(현지시간) 리스본조약 50조를 발동해 유럽연합(EU)에 탈퇴 의사를 공식 통보하기로 하면서 2년에 걸친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협상이 개시를 앞두고 있다.”(연합뉴스, “내주 출발하는 브렉시트 언제 어떻게 마무리되나”, 2017.3.21자 기사)

이 기사에 따르면, 영국 정부가 EU에 탈퇴 의사를 공식 통보하면서 그 근거로 ‘리스본조약 제50조’를 들었다. 도대체 ‘리스본조약 제50조’가 뭐길래 브렉시트 관련 기사에 단골 메뉴로 등장할까? 또, 브렉시트 관련 기사마다 ‘리스본조약 50조’를 운운하는데, 과연 정확한 표현일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브렉시트 통보 근거로 ‘리스본조약 (제)50조’ 운운하는 기사들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 아니, 보다 엄밀하게 말하면, 명백한 오류다.

이런 오류는 국내 언론만이 아니라 영국 현지 언론도 마찬가지다. 물론 기자들이 모두 EU법 전문가가 아닌 다음에야 이 정도 잘못은 있을 수 있다. 기사를 읽는 일반 독자도 마찬가지다. 브렉시트에 관한 전체 내용이나 흐름만 읽고 파악하면 그만이지 굳이 ‘리스본조약 제50조’가 정확한 표현인가 여부를 확인하기는 불가능하고, 또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사실 EU법 체계는 복잡하여 전문가들도 그 세부적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EU의 법 제도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 이상 알려면 제대로 알아야 한다. ‘리스본조약 제50조’ 표기가 왜 중요하고, 또 어떻게 표기하는 것이 옳을까?

리스본조약, 어떤 문서인가?

리스본조약은 2007년 12월 13일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에서 열린 EU 회원국들의 정상회의인 유럽이사회에서 공식 서명되어 2009년 12월 1일 발효한 기본조약이다. 이 조약의 공식명칭은 “EU조약 및 EC설립조약을 개정하는 리스본조약”(Treaty of Lisbon amending the Treaty on European Union and the Treaty establishing the European Community)이다. 그 명칭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리스본조약은 기존의 EU 기본조약인 “EU조약”과 “EC설립조약”을 개정하는 조약이다. 이에 대한 세부적인 설명은 다른 글에서 하기로 한다.

1993년 11월 1일 마스트리히트조약이 발효하면서 EU가 설립되고, 기존의 EEC설립조약이 EC설립조약(이하, EC조약)으로 그 명칭이 바뀌었다. 그 후 암스테르담조약(1999년 5월 1일 발효)와 니스조약(2003년 2월 1일 발효)에 의해 EU조약과 EC조약 일부 내용이 다시 개정됐다. 이처럼 EU의 기본조약은 여러 차례 개정돼 내용이 복잡하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EU는 유럽헌법조약 제정을 시도했으나, 무산됐다. 리스본조약은 유럽헌법조약의 비준에 대한 무기한 연기 선언이 있고 나서 그 혼란과 법적 공백을 메우기 위해 ‘미니헌법’ 형태로 채택됐다. 그리고 이 조약에 의해 기존 EU조약과 EC조약을 대폭 개정했다. 이는 이미 검토하였지만, 좀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 리스본조약의 구성을 도표로 정리해본다.

[표1] 리스본조약의 구성
[표 1]에서 보듯이 리스본조약은 ‘EU조약 및 EC설립조약을 개정하는 리스본조약’이란 제목으로 크게 네 부분, 즉 ①EU조약 및 EC설립조약의 개정 ②최종규정 ③의정서 및 ④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핵심 규정은, 리스본조약 제1조와 제2조다. 즉, 제1조에 의해 기존 EU조약이, 그리고 제2조에 의해 EC조약을 개정했다. 그리하여 기존 EU조약은 조약명이 바뀌지 않고 그대로 “EU조약”(Treaty on the European Union: TEU)이 됐으나 기존 EC조약은 그 명칭이 완전히 바뀌어 “EU기능조약”(Treaty on the Functionning of the European Union: TFEU)이 됐다.

이렇게 EU조약, 특히 EU기능조약의 명칭이 완전히 바뀐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러나 본질적 이유는, EU가 기존의 EC를 대체·계승함으로써 이제 EC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1950년대 EC를 구성하는 세 공동체인 ECSC·EEC·Euratom가 출범한 것은 익히 아는 바와 같다. 그중에서 ECSC는 그 존속기한이 50년으로 정해져 있어 2002년 7월 23일 폐지됐다. 이와는 달리 EEC와 Euratom은 별도의 존속기한이 정해져 있지 않아 사실상 무기한 존속할 수 있다. 그러나 EC는 EU가 대체·계승한다고 정하고 있는 리스본조약에 의해 EC는 완전히 폐지되었다. EC의 기존 세 공동체인 ECSC·EEC·Euratom 가운데 현재까지 남아 있는 것은 Euratom뿐이다. Euratom은 원자력에 국한해 운용되고 있어 유럽단일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그리 크지 않다.

리스본조약: EU의 헌법적 문서

이처럼 리스본조약은 EU 전반을 규율하는 헌법적 문서로서 유럽 사회 전반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어 이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아주 중요하다. 리스본조약이 가지는 의미는 여러 면에서 분석할 수 있지만, 무엇보다 독립된 법질서인 EU가 ‘헌법적 문서’인 리스본조약을 정점으로 법적 위계질서를 확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이 존재하는 형식을 뜻하는 법의 연원, 즉 법원(法源 sources of law)이라 한다. 우리 법체계를 예로 들면, 국내법의 존재형식인 법원은 헌법을 중심으로 법률로 구성되어 있다. 법에는 크게 성문법과 관습법이 있다. 헌법·법률·대통령령·총리령 또는 부령 등은 성문법이고, 관습법은 관행이 사회 일반의 법적 확신을 얻어 성립한다. 그리고 이와 함께 법의 일반원칙이나 법원(法院)의 판결 등도 법원으로 인정되고 있다. 모두 국내법을 이루는 법원이다.

이러한 존재형식은 EU법에도 존재한다. EU법에는 그 존재형식으로 1차법원와 2차법원이 있다.

EU법의 1차법원에는 각 공동체를 설립하는 조약(기본조약)과 ‘법의 일반원칙’(general principles of law)이 있다. 전자는 성문법이고, 후자는 불문법이다. ECSC·EEC·Euratom을 설립하는 세 개의 조약, SEA·마스트리히트조약·암스테르담조약·니스조약 및 현재의 리스본조약 등 기본조약은 전자에, 그리고 비례원칙과 법적 안정성의 원칙 등은 후자의 대표적인 예에 속한다. 특히 후자의 경우, 유럽사법재판소(ECJ)의 판례에 따라 형성되므로 성문법인 기본조약과는 달리 확정된 목록이 없다는 특징이 있다.

EU법의 2차법원은 기본조약을 근거로 하여 제정된 2차입법으로써 내용이 상당히 복잡하다. 2차법원은 다섯 종류가 있는데, EU기능조약 제288조가 그 형태와 성질을 규정하고 있다. 즉, 규칙(regulation), 지침(directive), 결정(decision)은 법적 구속력이 있고, 권고(recommendation)와 의견(opinion)은 원칙적으로 법적 구속력이 없다. 모두 채택 후 EU 관보에 게재된다. 2차법원의 상세한 내용은 다음 기회에 설명할 것이다.

따라서 이처럼 복잡하고 방대한 EU법 체계와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정점에 있는 기본조약인 ‘리스본조약’이 얼마나 중요한 법문서인가를 알아야 한다. 또한 어떤 사안에 대한 법적 근거로 원용되는 개별 조문이 어느 조약에 속하는지, 또 그 구체적 내용은 어떠한가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검토할 수 있어야 한다. ‘리스본조약 제50조 운운’의 정확성 유무에 대해 파고드는 이 글이 그저 학자의 단순한 학문적 호기심이나 일종의 호기가 아니라는 점을 이해해주었으면 한다.

[사진=europarl.europa.eu]
브렉시트의 법적 근거, 리스본조약 제50조가 아닌 유럽연합조약 제50조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브렉시트의 법적 근거가 ‘리스본조약 제50조’일까, 아닐까? 리스본조약에서 그 조문을 확인해보자.

EU조약 제50조
1. 모든 회원국은 그 헌법상의 요청에 따라 연합으로부터의 탈퇴를 결정할 수 있다.

2. 탈퇴를 결정하는 회원국은 유럽이사회에 그 의도를 통지한다. 유럽이사회의 방침에 따라 연합은 장래의 관계를 위한 틀을 고려하고 당해국과 함께 탈퇴에 관한 협정에 대해 교섭하고, 이를 체결한다. 이 협정은 유럽연합의 기능에 관한 조약 제218조 제3항에 따라 교섭된다. 이 협정은 유럽의회의 동의를 얻은 후 연합의 이름으로 유럽이사회에 의해 가중다수결로 체결된다. (이하 3항~5항 생략)

위 인용문에서 알 수 있듯이 브렉시트에 관한 법적 근거는 ‘리스본조약 제50조’가 아니라 ‘유럽연합조약(EU조약) 제50조’다. (이 조항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는 브렉시트에 대한 글에서 자세히 분석한다.) 물론 EU조약도 리스본조약에 포함되므로 ‘리스본조약 제50조’라 표기해도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리스본조약에는 EU조약뿐 아니라 EU기능조약도 포함되어 있으므로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이를테면, ‘리스본조약 제50조’라고 표기하는 경우, ‘EU조약 제50조’인지, 아니면 ‘EU기능조약 제50조’인지가 분명하지 않다. 우리 민법과 형법이 대한민국헌법에 포함되어 있다고 하여 ‘민법 제50조’나 ‘형법 제50조’를 ‘대한민국헌법 제50조’라고 표기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리스본조약은 EU조약과 EU기능조약의 두 개의 조약을 아울러 일컫는 표현이므로 사안별로 적용되는 조문은 EU조약과 EU기능조약의 해당 조항을 확인하여 표기하는 것이 정확하다.

앞에서도 설명했지만, ECSC·EEC·Euratom를 설립하는 세 개의 조약이 채택된 이후 EC·EU의 기본문서는 현재의 리스본조약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개정되었다([표 2] 참고). 그러다보니 EU법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가 아닌 이상 조약의 체계와 그 세부적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또 일반인에게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도록 요구할 수도 없다. 하지만 기본조약의 채택 경위와 과정, 그리고 그 주요 개정 사항에 대한 이해는 EU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가를 파악하는데 긴요하다.

[표2] EU 기본조약의 변천
비단 리스본조약을 비롯한 기본조약이나 EU의 제도에 대한 이해 부족은 일반인에게 국한되지 않는다. 학술세미나나 전문가 자문회의에 참석하다 보면 나름대로 열심히 EU의 정책과 제도에 대해 발표하고 토론하는 학자들에게서도 이런 치명적인 오류를 발견하곤 한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경제학을 전공하는 어느 선배교수께서 “영국이 EU에서는 탈퇴하더라도 향후 유로존에는 가입할 수 있다”고 하는 게 아닌가? 도저히 듣고 있을 수가 없어 정중하게 오류를 수정해주었다. “교수님, 죄송합니다만, 유로존에는 EU 회원국만이 가입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영국은 이미 별도의 의정서를 통해 유로존에는 가입하지 않는다는 뜻을 분명히 했습니다.” 나보다는 한참 선배인 그 교수께서 후학의 의견을 받아들였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히려 얼굴을 붉히며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고 강변했다. 이런 일을 한두 번 겪다 보면 나 스스로 입을 다물고 만다. 허구와 상상력을 바탕으로 공상소설을 쓰는 것이 아닌 바에야 정확한 사실과 정보를 확인하는 소위 ‘팩트 체크’는 반드시 필요하다.

리스본조약 제50조 vs EU조약 제50조.

개인의 일상사에서 양자의 차이는 그리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엄밀하고 엄정한 논리와 분석을 요하는 학문세계와 국가의 이익과 이해가 첨예하게 갈리는 국제관계에서 양자에 대한 몰이해와 전문지식의 부재는 하늘과 땅 만큼의 손실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따질 것은 꼼꼼하게 따져 묻고, 검증하고, 확인하는 자세가 되어야 있어야 한다. 잊지 말자. 브렉시트의 법적 근거는? 리스본조약 제50조가 아닌 EU조약 제50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