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위령제 열려···첫 국민의례

일부 참가자 국민의례 진행에 항의하며 중도 퇴장

18:05
31일 열린 '한국전쟁 전후 10월항쟁 보도연맹 가창골희생자 합동위령제'
▲31일 열린 ‘한국전쟁 전후 10월항쟁 보도연맹 가창골희생자 합동위령제’

31일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피해자 합동위령제가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가창댐 입구에서 열렸다. 처음으로 국민의례가 진행됐고, 이에 항의하며 퇴장하는 유족도 있었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대구경북유족회와 10월항쟁유족회가 주최한 ‘제65주기 한국전쟁 전후 10월항쟁, 보도연맹, 가창골희생자 합동위령제’에는 70여 명이 모였다.

합동위령제는 1부 봉제와 2부 위령제로 나뉘어 진행됐다. 채영희 회장이 희생자 영정 앞에 분향했고, 능화사 혜강스님의 영가축원으로 봉제를 마쳤다.

곧이어 열린 위령제는 처음으로 국민의례가 진행됐다. 앞선 64주기 위령제까지는 국민의례가 아닌 민중의례로 진행돼 왔다.

31일 열린 '한국전쟁 전후 10월항쟁 보도연맹 가창골희생자 합동위령제'
31일 열린 ‘한국전쟁 전후 10월항쟁 보도연맹 가창골희생자 합동위령제’

국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 제창이 이어지자 참가자 김 모 씨(82)가 중도 퇴장했다. 김 씨는 <뉴스민>의 질문에 “안 하던 국민의례를 한다. 희생자를 모독하는 행위”라며 격한 심정을 보였다.

김 씨는 이모부가 대구형무소에 끌려갔다가 사망한 희생자 유족이다. 그는 “국민의례는 행사 취지와 어긋나는 것이다. 국가 정권에 희생을 당한 것인데, 국가를 상대로 충성을 또 맹세하는 건 말이 안 된다”며 “당시 진상이 밝혀지고 명예를 회복하고 사과를 하고 그런 절차를 거친 다음에 해야 할 일”이라고 설명했다.

김찬수 4.9인혁재단 상임이사는 “앞선 위령제에서는 여러 재야단체나 시민사회단체가 지원을 했었는데, 올해는 유족들이 자체적으로 준비했다”며 “퇴장하신 분도 희생자 유족인데 국민의례가 진행돼 화가 났다. 다른 분들도 국민의례 진행에 의아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채영희 10월항쟁유족회 회장은 “많은 협박과 연좌제로 고통받았지만, 이제는 우리가 화해를 청하고 국민으로 살고 싶다”며 “국가도 더 큰마음으로 우리를 보듬어야 한다. 이제 국가와 손을 잡고 근현대사의 무서운 학살을 치유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의례를 진행한 것은 유족들의 의견을 모아서 반영한 것이다. 아버지들의 명예를 위해 위령탑도 세우고 국가와 화해가 필요하다. 퇴장하신 분도 존경하지만, 자리를 박차고 나가신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31일 열린 '한국전쟁 전후 10월항쟁 보도연맹 가창골희생자 합동위령제'
31일 열린 ‘한국전쟁 전후 10월항쟁 보도연맹 가창골희생자 합동위령제’

합동위령제 취지에 대해서 채 회장은 “연좌제라는 주홍글씨를 버티고 살아왔다. 10월항쟁 당시 민중은 배고픔에 절규하며 폭발했다. 이것이 재판절차도 없이 금수강산에 피도랑을 이룬 이유”라며 “이런 잘못된 국가폭력에 시한이 있을 수 있겠는가. 이렇게 죽어간 아버지의 제삿날을 국가가 7월로 정해줘 오늘 제사를 모신다”고 설명했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추도사를 통해 “유가족에게 진심으로 위로를 전한다”며 “희생자들의 명예를 회복하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뒤늦게나마 국가에서 진실을 밝혀 명예를 회복할 수 있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이라고 밝혔다.

한국전쟁 전후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가창골 등 16개 지역에서는 한국전쟁 전후로 대구 10월항쟁 관련자, 전국보도연맹원 등 민간인 집단 학살이 일어났다.

대구 및 인근 학살터 16곳 중 하나인 가창골은 1950년 7월 7일부터 9일까지 대구형무소에 수감 중이던 제주4.3관련 440여 명, 여순사건 관련 242명이 경찰과 군에 의해 학살된 곳이다. 이후 경찰과 군은 7월 27일부터 31일까지 15년 이상 장기수 1,196명을 추가로 학살했다.

민간인 학살 유족 단체는 현재 ‘한국전쟁 전후 국가의 집단 학살에 대한 진상 규명과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