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의자 20개와 대형 태극기, 주차를 위해 밀려드는 차량 사이로 태극기를 손에 든 이들이 박근혜 대통령 이름을 연호하며 모여든다. 스피커에서는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강원 춘천) 음성이 쉴 새 없이 흘러나왔다. 박사모 2차 총동원령이 내려진 대구 중구 서문시장이다.
26일 오후 1시, 대구시 중구 서문시장 주차타워 앞은 한산했다.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는 대구·경북본부와 중앙지도부 등 전국에서 1천 명이 모일 것으로 예상했으나, 실제론 500여 명이 모이는 데 그쳤다. 그런데도 박사모 관계자는 참여 인원을 묻는 말에 “5천 명이 모였다”고 호언했다. 타지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전세 버스는 박사모 울산본부 버스 한 대가 유일하게 눈에 띄었다.
박 대통령이 대구를 방문하면 찾곤하던 서문시장이지만, 대통령 지지자들에 대한 상인들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았다. 주차타워 바로 옆에서 어묵과 호떡을 파는 한 상인은 몰려드는 사람들에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그는 “장사도 안돼서 죽겠는데 왜 여기 와서 이러는지 모르겠다”며 “주말에 여기 원래 차가 많이 들어오는데, 오늘은 저 사람들 때문에 차도 못 들어오고 있다”고 짜증 섞인 말을 내뱉었다.
1시 20분 국기에 대한 경례로 집회가 시작했다. 집회장이 온통 태극기로 가득 차 어느 태극기에 경례를 해야 할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애국가 4절 완창,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까지 마치고서야 본 행사가 시작됐다.
정광용 박사모 중앙회장은 “하나라도 잘못한 게 나오면 책임져야 됩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1원이라도 해 먹었습니까”라며 “여론을 사기 쳐서 탄핵을 진행하는 것은 정상적인 탄핵이 아닙니다. 선동 탄핵이고, 왜곡 탄핵이고, 인민재판입니다”고 주장했다.
이어 서문시장상인연합회장, 새마음포럼회장, <뉴데일리> 기자 등이 발언대에 올라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하야를 반대한다고 전했다.
집회에서는 비영남권 참가자 뿐 아니라, 경북권 참가자도 보기가 힘들었다. 박사모 소속이 아니라는 참가자들도 다수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은 임기도 안 끝난 대통령을 끌어내리는 건 공산주의적이라거나, 대통령이 여자라서 비난 받는 것이라고 항변했다. 심지어 조선일보, 동아일보를 끊고 뉴데일리를 본다는 참가자도 있었다.
정서연(43, 대구 중구) 씨는 “대통령 임기도 다 안 됐는데 이렇게 끌어내리는 건 공산주의 방식이다. 민주주의 방식이 아니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말을 못한다고 욕하는데, 전자공학과 나와서 그렇다. 성격도 순수하고, 이과생들은 말은 잘 하는 게 이상하다”고 말했다.
김 모(70, 대구 동구) 씨는 “나는 박사모 회원도 아니고 진정한 애국자다. 여자 나이 육십에 보톡스도 좀 맞고 예뻐지고 싶을 수도 있잖아. 조선일보, 동아일보 신문 보던 거 다 끊었다. 이제 뉴데일리 본다니까. 대통령이 돈 챙기려면 왜 재단에 775억을 놔두노. 자기 주머니에 넣지. 그런 사람 아니”라고 대통령을 감쌌다.
장을 보러 나왔다는 한 시민(66, 대구 중구)은 “하야도 반대하고 탄핵도 반대한다. 대통령이 자기가 대통령 하고 싶다고 된 게 아니라 국민이 뽑아서 된 건데 정치인들이 다 나쁘다”며 “여자라서 더 뭐라고 한다. 너무 여자라고 무시한다. 세상에 여자가 없으면 돌아가는 게 있나”고 말했다.
지난 25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구⋅경북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은 전국 평균(4%)보다 낮은 3%였다. 그 3%의 시민들은 대통령을 맹목적으로 감싸기도 했지만, 수사 결과에 따라 대통령 임기를 마친 후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아내와 함께 집회에 나온 한 시민(65, 대구)은 “당연히 법대로 처벌하는 게 맞는데, 언론에서 지금처럼 인민 재판하듯이 하면 안 된다. 벌써 수사하기도 전에 언론에서 다 까발리고, ‘카드라’ 방송 다 하고 이거는 아니”라며 “대통령 잘못은 수사 결과보고, 임기 마치고 나서 처벌받으면 된다”고 말했다.
생전 처음 집회에 나왔다는 이 모(60, 경북 경산) 씨는 “대통령 개인적인 문제로 나라와 민족을 흔들면 되나. 최순실법 만들어서 처벌하고, 박근혜 대통령은 임기를 마치고 그 이후에 처벌을 받아야지. 대통령 사생활까지 들춰가면서 이렇게 하는 게 어디 있나”며 “나도 처음에는 대통령이 많이 잘못했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이건 아니다”고 말했다.
이들은 2시간가량 집회 후, “탄핵 반대”, “하야 반대”를 외치며 서문시장에서 큰장네거리를 거쳐 대구 만경관 앞까지 약 1km를 행진한 뒤 다시 서문시장으로 돌아갔다. 애초 CGV한일극장 앞까지 행진할 계획이었으나, 인근에서 열리는 시국집회와 충돌을 우려해 대구중부경찰서는 주최 측과 협의해 행진 경로를 조정했다.
박사모 대구본부는 매주 토요일 오후 2시, 대구시 중구 국채보상공원에서 박근혜 대통령 하야와 탄핵을 반대하는 집회를 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