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회노동자운동지지모임(지지모임)은 지난 10월 19일 ‘조선산업 구조조정과 하청노동자’을 주제로 워크숍을 진행했다. 지지모임은 주목받지 못하는 노동의제나 알기 어려운 노동문제를 지역사회로 환기하기 위해 월례워크숍을 개최하고 있다. 1차는 특성화고등학교 현장실습제도를 짚었고, 2차는 성소수자 노동현실을 다뤘다.
대구는 조선산업과 관련된 노조 또는 산업이 전무하다. 그러나 성서공단이나 3공단 재하청구조 계열화라는 산업구조는 현 조선산업 하청노동자 문제와 맞닿아 있다. 또, 조선산업 구조조정은 해당 산업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 산업구조 변화를 알리는 신호탄이다. 노동자를 쥐어짜내는 산업구조 변화로만 가지 못하도록 노동자가 어떻게 노동기본권을 확보해 나갈 것인지, 영향력을 갖출 것인지 고민하면서 워크숍을 준비했다.
워크숍에는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산추련) 이은주 씨가 ‘2016년 조선산업 비정규직 구조조정 실태조사 연구보고’를,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김혜진 씨가 ‘조선업 구조조정과 하청노동자의 삶’을 발제했다. 이은주 씨는 2016년 금속노조와 산추련을 포함한 단체가 조선산업 비정규직 구조조정 실태를 조사하고 결과를 발표했지만, 금속노조 내에서 토론회나 교육 등으로 내용공유가 원활히 이뤄지지 못하고 결과를 주로 국회로만 가져간 점이 아쉬웠다고 한다.
이은주 씨는 조선소 사내하청노동자들에 대한 대규모 구조조정이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지, 임금과 노동조건 변화는 어떠한지, 대규모 구조조정에 직면했을 때 노동자들은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파악하고 대규모 구조조정은 하청노동자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기 위해 조사가 이뤄졌다고 한다.
조선업종 구조조정 1순위에 노동자는 물량팀 노동자임을 확인했다. 임금을 체불당하고 갖가지 부당노동행위에 노출되어있지만, 법적 보호를 받을 길은 없었다. 물량팀 노동자는 법이 빈자리에 서 있었다. 지난해 2만여 명이 일자리를 잃었고, 올해는 3만여 명이 해고될 거라는 전망이 나왔지만, 고용노동부, 지방자치단체는 대책이 없다는 점도 확인됐다.
구조조정은 경쟁격화, 환경변화 등으로 기존 사업이나 제품의 수익성이 떨어지는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중복사업 통폐합 및 축소, 주력사업 교체 등 경쟁력 있는 사업으로 다시 구축하는 과정을 말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구조조정은 노동자 정리해고를 가리키는 단어가 됐다. 그 과정에서 기업은 도의적, 법적 책임마저 회피하기 일쑤였다. 하청 노동자 희생을 바탕으로 이윤을 추구하던 국가와 기업은 무책임으로 일관했고, 위기를 노동자에게 떠넘기고 있었다. 정리해고, 임금 체불, 삭감, 노동조건 악화는 일상이 됐다.
김혜진 씨는 “최근 반월-시화공단 용접단가가 2만 원 정도 하락했다. 울산, 거제 조선소에서 노동자들이 막 쫓겨난다. 쫓겨난 노동자들이 일거리가 있는 곳을 찾아 밀려들다 보니 인건비 하락이 여실 없이 드러나고 있다. 한 지역에서 1만 명이 해고된다는 것은 재앙이다”라고 분석했다.
무책임, 무능력으로 일관하는 정부대책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정부는 2016년 6월 30일 자로 조선소를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했지만, 사업주에 대한 지원이 대부분이었다. 고용창출보다는 고용유지를 위한 지원이 많았다. 사실상 구조조정을 덜 하는 것 외에는 실효성이 없었다. 조선소 하청 물량팀 노동자는 사업주가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아도 업체에서 일한 사실이 확인되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피보험자격 확인청구제도’를 3개월 동안 운영했지만, 신청한 노동자는 조선업 전체 38명이며, 물량팀 노동자는 18명에 불과했다. 업체에서 일한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사업주가 미납된 고용보험을 내야 하는데 이를 꺼리기 때문이다.
체불임금에 대한 체당금을 받으려면 산재보험이 적용되어야 하고, 근로자 퇴직일까지 6개월 이상 가동되어야 한다. 자주 사업장을 바꿔 일한 물량팀 노동자들은 소액체당금 지급 요건에서 제외될 수 있다. 물량팀 노동자들은 여기서도 제외된다. 이에 정부는 국선노무사를 지원해서 체당금 조력지원제도를 운영한다고 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 대상을 30인 미만 사업장으로 제한했다. 하청업체 평균노동자 수가 117명인 현실을 무시했다. 결국 체당금 조력제도 신청자는 0명이었다.
김혜진 씨는 “자신의 권리를 위해 작은 행동을 한 사람들은 이 지역 조선소에 취업할 수 없었다”고 한다. 블랙리스트 때문이다. 노동자에게 침묵과 굴종은 일상이 됐다. 그러나 조금씩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 나타났다. 삼성중공업 하청업체인 천일기업 노동자들은 폐업과 체불임금 때문에 서울로 올라와 싸우고 있다고 한다. 27억이나 되는 체불임금을 포기할 수 없어서 투쟁에 나섰다. 이들은 현재 서울 삼성중공업 회장 집 앞에서 싸우고 있다. 울산은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가 있고, 현재 조합원은 200여 명이다. 목포에서도 서남지역지회가 대불공단 내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100여 명 조직했다고 한다. 거제에서도 20여 명이 모여서 사내하청노조 준비위원회를 구성했다.
거제는 한국 최대 하청도시다. 거제에는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에서 하청노동자 5만5천 명이 일하고 있다. 인근 고성, 통영 하청노동자를 합하면 10만여 명이다. 이들은 한국 최고의 배를 만들어왔다. 그런데 이들이 사라지고 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거제 하청노동자들이 침묵을 깨고 일어서 싸우겠다는 각오로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준)’노동자들이 노조 결성을 시작했다. 조금씩 조직이 만들어지고 있다.
살펴봤듯이 조선업종의 가장 큰 문제는 하청 중심 생산체제다. ‘기업 살리기’가 중심인 정리해고식 구조조정에서 벗어나 원청의 책임성 강화와 고용안정을 통한 숙련인력 확보, 하청 중심 생산구조 개혁이 필요하다. 하지만 아직 대다수 노동자들은 숨어있다. 김혜진 씨는 “싸워보지 않은 사람은, 조직을 가져보지 않은 사람은 위험한 시기에 싸우기가 너무 어렵다. 그렇지만 어떤 계기가 생긴다면 이 노동자들도 조용히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싸울 수 있다”며 조선소사내하청노동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지지하고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지원하기 위해 9월 6일 ‘조선하청노동자대량해고저지시민사회대책위원회’가 구성됐고, 10월 29일 거제에서는 ‘조선소 하청노동자 대행진’을 준비하고 있다. 더 많은 시민이 응원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면 노동자들도 일어설 수 있다. 함께하자. 많은 관심과 참여를 바란다.
<대구출발> ‘조선소 하청노동자 대행진’에 함께해요! 기형적인 하청계열화구조 속에서 최하단에 있는 노동자들은 경제위기, 산업위기 때마다 ‘정리해고’라고조차 불리지 못한 채, 부당하게 전가 받은 책임을 안고 사라집니다. 뉴스에서는 조선산업이 흑자전환 소식이 나옵니다. 이는 노동자 쥐어짜기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노동자들의 희생으로 하청계열화구조를 유지시키는 일을 멈춰야합니다. 대구출발: 10월 29일(토) 오전 11시 30분 |
※덧: 지역사회 노동자운동 지지모임에서 11월 마지막 주부터 4주 연속으로 ‘여성론을 읽자’세미나(교재 아우구스트 베벨 ‘여성론’)를 진행한다. 관심 있는 분들은 노동자운동 지지모임(010-3482-6102)으로 연락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