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상가’, 전문가, 일반인 들이 실재성의 느낌을 상실하더라도 아주 용이하게 생존하는 이유는 사유하는 내가 단지 잠정적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상가는 아무리 탁월하다고 하더라도 ‘당신이나 나와 같은 사람’(플라톤)이며, 공통감을 잘 갖추고 생존하기에 충분한 상식적 추론을 이해하는 현상들 중의 한 현상이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정신의 삶>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이 구절처럼 상식 혹은 일반적 공통감을 ‘사상가’들처럼 생소한 ‘이방인의 생활방식’으로 성찰하려는 이들은 참으로 경이롭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여야 하고 잠정적인 것이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그들은 제대로 일상생활을 유지 할 수 없다.
검찰은 뇌출혈 후 혼수상태에 있다가 317일 만에 사망한 농민 故(고) 백남기 씨에 대한 부검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공통감을 상실한 법 이론이 이렇게 가능해도 되는지, 검찰의 그 ‘철학적 의지’는 도대체 무엇을 지향하는지 궁금했다.
종종 본 기자가 있는 2차 병원에 뇌출혈로 인한 심각한 뇌 손상으로 오는 환자들이 있다. 대학병원에서 더는 해 줄 치료 방법이 없을 때 단지 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오는 이들이다. 대부분 오로지 누워있는 상태(bedridden)가 되고, 손상 범위에 따라 혼수상태(semicoma 혹은 stupor) 정도가 달라진다. 경미한 경우에는 약간의 운동 마비 외에 거동도 가능하지만, 대부분 콧줄(레빈 튜브)로 영양식을 공급받으며 소변줄과 기저귀로 배설 문제를 해결한다.
누워 지내는 상태에서 폐렴, 요로 감염, 욕창은 아무리 관리를 잘하더라도 언제든지 생길 수 있는 기회 질병이 된다. 영양 불균형과 약물 사용, 간혹 특발적으로 생기는 수분 불균형은 알부민 단백질 저하나 콩팥 기능 부전을 일으킴으로써 전신 부종과 폐 부종을 야기한다. 이것은 심부전이나 호흡 부전, 간혹 다발성 장기부전을 일으킴으로써 환자를 죽음으로 이끌기도 한다.
사망한 농민 백남기 씨에 대해 생각해 보자. 그가 병원에 온 이유는 두개골 골절과 뇌출혈, 그에 따른 의식 부전 때문이었다. 설령 그에게 고혈압이나 당뇨, 그 외 특이 질병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그의 죽음에 기여한 몫은 부수적일 뿐 가장 중요한 요인은 뇌출혈로 인한 혼수상태와 누워있는 상태 (bedridden) 때문이다. 이 상황은 초기 기록과 CT 등 방사선 기록으로 확인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검찰은 무엇을 더 찾겠다는 것일까? 명시되지 않은 어떤 질병을 찾아내어 그것이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주장하기 위해? 그러나 어떠한 질병을 찾아내더라도 그의 사망 주원인은 두개골 골절에 의한 뇌출혈이다. 그것은 변하지 않는다.
상식적이고 직관적인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설명하려니 난감하다. 특이한 사고를 ‘잠정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해 대고, 또 이를 용인하는 법원을 보면서 나의 상식과 공통감이 근본적으로 틀린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마저 들기도 한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과 동료 의사들 생각이 내 생각과 같은 걸 보면서 나는 내가 상식적이라고 확신한다. 이런 확신을 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지만, 상식적으로 살기 싫어하는 ‘독특한’ ‘법조계’가 웃기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많이 무섭기도 하다. 죽음 앞에서도 반성하지 않는 ‘저들’은 도대체 누구 앞에 서야 반성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