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하철참사 추모벽은 언제쯤…일방적 추진 진통

    "시민과 전문가 의견 보장해야" 추진위원 사퇴

    08:09

    대구도시철도공사가 시민과 전문가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아 지하철 참사 추모벽 조성이 진통을 겪고 있다. 한 추모벽 설치 추진위원은 “시민과 예술가 참여 기회가 보장되지 않았다”며 추진위원 직을 사퇴했다.

    당시의 화재현장을 그대로 보존한 '통곡의 벽'
    당시의 화재현장을 그대로 보존한 ‘통곡의 벽’

    대구도시철도공사는 2003년 대구 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에서 있었던 화재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고 재발방지 등을 위해 중앙로역 추모벽 조성 사업을 추진 중이다. 공사는 추모벽 디자인과 제작·설치를 수행할 업체를 공고입찰을 통해 선정했다. 입찰가격은 약 5억 원이며, 입찰은 2014년 12월 11일 조달청 나라장터에 공시해 이듬해 1월 21일 마감했다.

    문제는 추모벽 디자인이 전적으로 업체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공사가 입찰을 공시하며 입찰 참가 업체에 주문한 ‘제안요청서’에는 용역업체 선정방법이 나와 있다. 기술능력 80%, 입찰가격 20% 비중으로 평가했고, 기술능력 평가 항목으로는 추모벽 디자인 및 제작·설치(30점), 이해도 및 독창성(10점), 현장보존 디자인·설치(10점), 사업수행실적(6점) 등이 있다.

    공사는 제안요청서에 당선작의 내용은 자문 등을 거치면서 보완될 수 있다고 명시했지만, 일부 추모벽설치추진위원은 “구색을 갖추려는 것일 뿐 시민과 전문가의 참여가 보장되지 않는 졸속 행정”이라고 반발했다.

    김기수 추모벽설치추진위원(비영리 예술법인 OnArt 대표)은 “지금의 추모벽 사업의 접근방식으로는 제대로 된 추모벽을 설치할 수 없다. 역사적, 기념비적 프로젝트인 추모벽 사업은 예술적, 공공적 프로젝트로 추진돼야 한다”며 “시민, 유가족, 관련 전문가들이 참여할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 충분한 기간 동안 공청회나 포럼도 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기수 추진위원은 “한국은 해방 이후 한 번도 기념 조형물을 제대로 만들어본 적이 없다. 업체가 문제 있다기보다는 방식의 문제다. 비용이 더 들더라도 선례가 되기 때문에 제대로 해야 한다”며 “공모 기간도 짧아 설계도 급조됐다. 수익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예술가들의 참여도 보장돼야 하고 국민 성금으로 추진되니 공청회는 필수다”고 말했다.

    윤석기 대구지하철참사 희생자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추모벽은 대구시가 참사도시에서 벗어나기 위한 통과의례다. 조달공고가 나고 나서야 알게 됐고 그때부터 철회를 요구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세월호 참사 당시 팽목항을 방문했더니 우리 유족이 다른 참사를 방지하기 위한 노력을 제대로 못 했다고 느껴졌다”며 “이렇게 졸속적으로 추진되면 좋지 않은 선례로 남을 것이다. 무엇이 옳은지 살펴야 하며 시민 합의는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구도시철도공사 측은 추모벽 설치 사업 재검토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박윤환 대구도시철도공사 건축차장은 “대구시의 승인을 얻어서 하는 사업이고 2008년 추모사업추진위원회에서 추모벽 사업 방향이 결정됐다. 방향이 이미 결정된 사업이라 위원 사퇴로 사업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며 “사업을 추진하며 보완도 할 계획이다. 근본적인 사업 취소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한편 추모벽 설치 사업은 2003년 참사 이후 5월 유가족과 대구시 행정부시장이 합의해 추진됐다. 2008년 3월 추모벽 설치방향이 결정됐으나 사업이 미뤄지다 권영진 시장 당선 이후 대구시에서 사업 추진 의지를 비쳤다. 2014년 8월 사업 추진을 위한 예산 5억 원이 편성됐고, 같은 해 12월 대구도시철도공사가 추모벽 설치 등을 위한 업체 선정을 위해 조달청에 입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