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원주주형 협력사’ 포장한 외주화, 반대 노조원 제초·청소 지시

오토인더스트리, 사내협력사 도입 후 본사 직원 생산 라인서 제외

10:01

1999년, 김모 씨(당시 26세)는 생활정보지를 통해 경북 경주 소재 한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에 취업했다. 금융위기로 얼어붙었던 한국경제는 이 무렵 조금씩 활력을 되찾았다. 김 씨는 회사가 두 번 이름을 바꾸는 동안 변함없는 마음으로 일했다. 김 씨 손이 직접 닿아야 가능했던 일은 해를 거듭할수록 자동화됐다. 자동화되는 만큼 회사는 성장했다. 지난해에는 계열사를 통해 코스닥에도 상장했다. 김 씨는 회사를 키웠다는 자부심으로 살았다. 하지만 지난 4월부터 회사는 김 씨에게 부품 생산 대신 공장 청소나 제초 작업을 시켰다. 할 일이 없다는 이유였다.

99년 김 씨가 취업한 회사는 ‘재이스’라고 불렸다. 재이스는 2008년 ‘오토오티오’로 이름을 바꿨고, 2011년 다시 ‘오토인더스트리(대표 김선현, 이하 오토)’로 바뀌었다. 오토는 2010년 충남 예산에 새로운 공장 (주)네오오토를 설립했고, 네오오토는 지난해 코스닥 상장을 마쳤다. 네오오토와 오토는 지난해 각각 1천억, 2천억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 꽤 튼실한 업체이지만 4월부터 뚝, 김 씨가 할 일이 없어졌다.

지난 4월 1일 회사는 이른바 사원주주형 사내협력사를 출범시켰다. 회사가 김 씨에게 일이 없다며 청소나 제초 작업을 시킨 건 협력사가 출범한 직후부터다. 회사는 지난해부터 생산직 지원을 대상으로 라인별 사내협력사 설립을 준비했다. 회사가 노동안정성을 위협한다고 판단한 직원들은 그해 노조를 설립했다. 98명이 노조에 가입했고, 상급단체로 민주노총 금속노조를 선택했다.

변창훈 금속노조 경주지부 오토지회장은 “소사장제를 통해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을 야기할 것이 분명해 보이는 상황이었고, 많은 직원들이 노조의 필요성을 이야기했었다”며 노조 설립 경위를 설명했다.

금속노조 조합원 12명만 생산 라인에서 제외
회사, 협력사 직원과 같은 라인 배치 안 된다는 입장

▲경주 소재 자동차 부품 생산업체 오토인더스트리
▲경주 소재 자동차 부품 생산업체 오토인더스트리

현재 회사가 김 씨와 마찬가지로 청소나 제초 작업을 시키고 있는 직원은 금속노조 조합원 12명뿐이다. 100명이 넘던 직원들은 지난 4월 사내협력사 설립을 전후해 희망퇴직하거나 퇴사 후 사내협력사 소속으로 계속 같은 일을 하고 있다. 일이 없다는 이유로 청소, 제초 작업을 하고 있는 김 씨 등과 달리 협력사 직원들은 여전히 정상 업무를 하고 있다. 협력사 직원은 일이 있는데, 본사 직원은 일이 없는 이상한 일이 발생한 것이다.

회사는 제품 생산을 협력사로 넘겼기 때문에 김 씨 등이 협력사 직원들과 같은 라인에 배치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노조는 회사의 조치가 부당하다며 지난 8월 18일 경북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했고, 지노위는 같은 달 31일 부당한 인사 조치라는 판정을 내렸다. 변창훈 지회장은 “지노위에서 공익위원들도 회사 결정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자기 직원들보다 협력사 직원에게 먼저 일거리를 챙겨줬다는 게 말이 안 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회사 측 관계자는 “부당인사, 부당징계 두 건 다 부당노동행위로 고발했는데, 부당전보와 부당징계는 인정되지만, 부당노동행위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했다”며 “징계는 양정이 과하다는 것이지 징계 자체가 부당하다는 건 아니다”고 밝혔다.

하지만 노조는 회사가 금속노조 조합원만을 대상으로 부당하게 징계를 가하고, 생산 라인에 배치하지 않는 방법으로 압박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변 지회장은 “협력사로 간 직원들은 우리 직원이 아니라 징계를 못 하고, 조합원들은 우리 직원이니까 징계가 가능하다거나, 개별 면담에서 금속노조에 남아 있으면 일거리가 없을 거라고 압박하고 있다”며 회사의 행위가 노조 탈퇴를 회유하는 부당노동행위라고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노조는 조합원들이 용기 세척 같은 동일한 작업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한 명씩 떨어뜨려 놓는 데다 CCTV로 감시가 용이한 위치에서 작업하게 한다고 비판했다. 변 지회장은 “이전까지 본사 직원이 하지 않던 세척 작업을 시키는 데다, CCTV로 감시해서 조합원들을 위축시키려는 의도”라고 지적했다.

▲용기 세척 작업 중인 직원 뒤로 CCTV(붉은색 원안)가 보인다.
▲용기 세척 작업 중인 직원 뒤로 CCTV(붉은색 원안)가 보인다.

문제의 원인, 사원주주형 사내협력사 제도
노조, “언제든지 실업자 될 수 있는 고용불안 야기”
회사, ‘직원 주인 의식 높이고, 많은 이익 가능’ 홍보

노조는 이 모든 일이 회사가 사내협력사 제도를 추진하면서 생긴 일이라고 주장한다. 회사는 사원주주형 사내협력사 제도가 직원의 주인 의식을 높이고, 열심히만 하면 더 많은 이익을 볼 수 있다고 홍보한다. 반면 노조는 언제든지 본사가 계약을 해지하면 실업자가 될 수 있는 위험한 제도라고 지적한다.

노조에 따르면 지난 4월 공식 출범한 사내협력사들은 기본적으로 오토와 3년 계약을 맺은 상태다. 자체적인 생산 시스템을 갖추지도 않았다. 등기부등본을 확인해보면, 현재까지 출범한 오토 사내협력사 5개사 모두 본점 주소가 오토 경주 공장과 같다. 협력사 대표들이 사용하는 사무실도 오토 경주 공장 내에 있다. 생산 시설이 없는 협력사가 하는 일이라곤 직원을 오토에 공급하는 것 뿐이다. 이 상태에서 3년 뒤 계약이 갱신되지 않을 경우 협력사가 생존할 가능성은 낮다.

변창훈 지회장은 “열심히 하면 다른 업체 물량도 따내서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선전하긴 하는데, 지금 상황만 봐도 그게 불가능하다는 걸 알 수 있다”며 “협력사는 자체 생산 능력이 없다. 직원들 임금보다 조금 많은 금액을 협력사에 주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돈으로 어떻게 자본금을 모아서 생산 능력을 갖출 수 있단 말이냐”고 지적했다.

변 지회장은 “직원이 주인이라고 말하는데, 협력사로 넘어간 동료들 이야길 들어보면, 구체적으로 자기 지분이 얼마나 되고, 이익 분배가 어떻게 되는지도 알지 못하더라”며 “말이 주주지 정규직을 비정규직화한 것에 불과하다”고 혹평했다.

<뉴스민>은 사내협력사 제도와 관련한 회사 측 입장을 듣기 위해 인터뷰 요청을 했지만, 회사 측은 “이미 많은 자료가 나갔고, 굳이 인터뷰할 이유를 느끼지 못한다”며 거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