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에서 4시간가량 차를 달려 도착한 교탄고시(市) 탄고정(町) 우카와(宇川)지역. 아나몬주(穴文殊)라는 튀어나온 20m 절벽 위, 엑스밴드 레이더(AN/TPY-2)가 있었다. 레이더가 있는 기지의 공식 명칭은 <교가미사키 통신소>.
마침 8월 10일, 제임스 시링 미 MDA(국방부 미사일방어청) 청장의 일본 방문에 맞추어 일본 언론은 사드 미사일 조기 도입을 보도했다. <미군기지 건설을 우려하는 우카와(宇川) 유지모임(이하 우려하는 모임)>의 사무국장 나가이 토모아키 씨가 언젠가는 사드 미사일이 미군이 아닌 자위대 소유가 될 것이라고 한 말이 떠올랐다.
엑스밴드 레이더 기지는 2013년 2월 22일 미일 수뇌부 회담에서 합의된 후 2월 26일 방위성에서 교탄고 지역에 배치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해 9월 교탄고 시장이 수락했고, 2014년 5월 착공한 후 그해 12월 26일 본격 운용을 시작한다. 성주도 이런 타임라인이라면 내년 12월쯤 성산에 미사일과 레이더가 설치될 것이다.
동해를 바라보는 엑스밴드 레이더. 그 바다와 해변은 일본에서도 아름답기로 소문난 곳이다. 레이더 기지 양옆 1km 정도 떨어진 해변에서는 사람들이 해수욕을 하거나 캠핑을 하고 있었다. 전자파에 대한 두려움이 없을까?
“왜 없겠습니까? 그러나 문제없다고 하니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믿지는 않죠. 어떤 방식으로 측정했는지 알 수가 없으니까요.” 우려하는 모임의 나가이 사무국장이 안타까움을 표했다.
일본 방위성은 전자기강도 조사 계측치를 레이더 운용 전 3차례, 레이더 운용 후 지금까지 4차례 발표했다. 계측 지점은 레이더 양측에 있는 오와 마을(24세대 거주)과 소데시 마을(70세대) 그리고 해상의 세 지점. 최초 계측일인 2014년 3월 19일을 제외하고는 모두 0으로 표시되어 있다. (소수점 세 자리 아래는 버린 0이다) 이 수치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머리가 복잡해졌다.
“관광 지도를 보니 레이더 앞 해상으로 유람선이 오간다는데 사실인가요?”
“주민들이 용돈 벌이하려고 가끔 자기 배로 운항하는 겁니다.”
“전자파 때문에 비행기 운항이 금지되어 있는데 해상으로 헬기가 뜨기도 하나요?”
“며칠 전 바다에 사람이 빠졌는데 레이더 통신소에 연락해서 레이더를 끄고 헬기를 띄웠다고 합니다.”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얘기인가요?”
“미군 시설이라서 확인할 수 없으니 그런가 보다 하는 거죠.”
“근처 주민 중에 인공 심장 박동기를 한 사람은 없나요? 혹시라도 전자파에 영향을 받을 수 있으니까요?”
“글쎄요…들은 바가 없는데요…”
이야기를 들으면서 문득 2011년 3월 11일의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떠올랐다. 후쿠시마 핵연료는 5년이 지난 지금도 멜트다운과 멜트스루를 진행하고 있다. 일본의 많은 지역이 세슘으로 오염되어 있지만, 일본 정부는 안전하다고 주장하고, 일본 기업은 ‘먹어서 응원하자’고 광고하고, 일본 사람들은 ‘방사능쯤이야 내 의지로 이겨낼 수 있다’며 텔레비전에서 파이팅을 외친다.
일본의 상당한 영토가 오염되었다는 객관적인 자료가 있음에도 일본은 평온한 것처럼 보인다. 지극한 공포가 사람들을 대범하게 만든 것일까? 마찬가지로 엑스밴드 레이더에 대한 일본 주민들의 저항도 너무 미약한 것이 아니었을까?
“일본 국민의 특성상 국가가 필요로 하면 대체로 그 결과를 수긍하고 받아들이는 측면이 있죠.” 그렇다면 어느 당에도 속하지 않은 평범한 고등학교 교사인 나가이 사무국장, 그리고 교토에서부터 동행한 이들(교토연락회)는 왜 반대 운동을 지속하고 있는 것일까?
“일본은 아직도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있지 않아요. 우리는 헌법 9조를 뜯어고치고 나가려는 일본의 군국주의화를 반대하고 오키나와의 미군 기지가 확장되는 것을 반대합니다. 사드 미사일의 한국 배치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동아시아의 문제입니다.”
먼 길을 왕복으로 운전해준, 일주일의 반은 해충 잡는 일로 보내고 나머지는 미군 엑스밴드 레이더 기지 반대 교토연락회 일을 하는 이케다 타카네 사무국장에게 왜 레이더 반대 운동을 시작했는지 물었다.
“학생 때 저를 사로잡은 생각은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것으로 시작한 것이죠. 지금 제가 바라는 것은 평화입니다.”
한국으로 돌아와 그들의 반대 운동을 검색해 보면서 생각보다 많은 운동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횟수는 많지 않지만 수백 명에서 많을 때는 1,200명의 집단 항의가 있었다. 그러나 그 몇 번 되지 않는 집회로 미군 레이더 기지를 막아내는 것은 어려웠을 것이다. 주민도 얼마 되지 않고 바닷가 오지인 곳에 레이더 기지를 세우고 또 앞으로 사드 미사일을 배치하는 것은 별다른 저항 없이 이루어졌고 이루어질 것 같다.
어쩌면 미국에게 성주도 그런 곳으로 비치지 않았을까? 문득 사드의 성주 배치를 발표한 류제승(59) 국방정책실장의 인터뷰 기사가 떠올랐다.
“주한 미군이 2013년부터 독자적으로 부지 조사”를 해왔고, “올 1월 말까지 사드 배치와 관련해 미국으로부터 어떤 요청·협의·결정이 없는 소위 ‘3NO’ 정책이 유지”됐다. 2월 초에야 “사드 배치 가능성에 대해 협의하게 됐다”고 발표하면서 “정책적 협의와 실무적 절차가 진행”됐고 그 후부터 5개월 동안 “한반도는 산악 지형에다 인구가 조밀해…한미 공동조사단은 10여 개 부지를 살펴봤고, 다시 다섯 개로 압축한 뒤 최종적으로 (7월 13일) 성주로 정했다.”는 것. (조선일보. [최보식이 만난 사람] 사드 배치의 ‘幕後 스토리’… 류제승 국방정책실장. 2016.07.18)
5개월 동안 10개 지역을 미군의 사전 조사 결과 없이, 그들의 의견을 참조하지 않고 조사하여 성주로 결정할 수 있었을까? 지관(地官)이 묘 터를 알아보듯이 그렇게. 성주는 인구가 조밀하지 않아서, 문제가 생겨도 최소화될 것이므로 낙점되었다는 뜻일까? 성주와 면적, 인구수가 비슷한 교탄고시, 그중에서도 산 넘어 해변에 있는 오지, 이미 자위대 기지가 있는 곳이므로 엑스밴드 레이더와 사드 미사일을 설치해도 아무 문제없다는 우카와 지구. 그 둘은 많이 닮았다.
저녁 어스름 돌아오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엄청 큰 자귀나무와 백일홍 나무의 붉은 꽃들이 노을을 걷어가고 있는 우카와 지역. 아름답고 조용한 마을. 동행한 한 성주 주민은 우려하는 모임의 주민들을 만나고 나오면서 성주 주민들에게 무엇을 얘기해 주어야 할지 걱정이 앞선다고 했다. 어쩌면 실패의 기억을 전해주어야 할지 모른다는 우려였다.
그러나 수고한 이케다 사무국장과 교토역사 내 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일본의 교탄고는 졌고, 한국의 성주는 지금 싸우고 있다. 교토시와 우카와에서 만난 주민들은 성주를 주시하고 있다고 했다. 해서 지금 ‘사드의 한반도 배치를 반대’하는 성주는 동아시아 평화의 작지만 강력한 발화점 같은 것이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
엑스밴드 레이더가 있는 <교가미사키 통신소>의 한 귀퉁이에는 기지에 귀속되지 않은 땅, ‘평화의 정원’이 있고 그곳에는 역설적으로 ‘주의(WARNING)’라고 쓰인 붉은 입간판이 서 있다. 그 간판에 이런 구절이 있다.
“당신은 여전히 평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장(武裝)을 해야 한다고 믿는가?” 어쩌면 이 말이, 들을 귀가 없는 자에게는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의 가장 큰 비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