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어느 날 오후, 쨍쨍 마른하늘에 폭우가 쏟아졌다. 성주군청 앞 천막은 바람에 날려 쓰러지고, 천막을 지키던 주민들은 하늘마저 난리라며 혀를 찼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가 성주에 떨어졌다. 사드가 성주군 성주읍 성산포대에 배치된다는 발표 후, 주민들은 하루도 빠짐없이 사드 철회 촛불을 들고 있다.
성주읍에서 플라워 카페를 운영하는 이미현(26) 씨는 사드 배치 발표 후, 하루 5시간밖에 카페 문을 열지 못한다. 카페 안 냉장고에는 잎이 늘어진 꽃이 그대로다. 미현 씨는 벌써 2주째 꽃시장을 다녀오지 못했다고 한다. 꽃을 사러 온 손님을 어쩔 수 없이 그냥 돌려보내야 했다.
미현 씨는 “평소에는 일주일에 2번씩 꽃 장을 보러 가는데 지금 2주째 못 가고 있다. 전화로 주문하는 분들도 많은데, 정말 미안하다”며 “사드 때문에 요즘 장을 못 봐서 죄송하다고 말씀드린다”고 말했다.
지난 7월 13일 성주 사드 배치 확정 발표 후,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바로 다음 날 군청 앞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참석했고, 그때부터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한반도 어디에도 사드 배치 최적지란 있을 수 없습니다’라고 적힌 망토를 제작해 촛불집회에 나왔다. 이후 카페에서 망토를 나눠주기 시작했고, 사드 관련 각종 스티커도 카페에 비치했다.
미현 씨는 “손님들이 카페에 오면서도 오늘도 회의 가고 없으면 어떡하지 걱정했다는 말을 하신다. 매일 회의 간다고 문을 늦게 여니까, 옆에 카페가 하나 더 있어서 다행이지 괜히 여기까지 왔다가 돌아간다고 생각하면 더 죄송한 마음이 든다. 그렇지만 지금은 장사보다 사드 철회가 먼저인 것 같다”고 말했다.
황교안 국무총리가 성주를 다년간 15일 이후, 미현 씨는 매일 회의에 다니느라 오후 2~3시나 돼서야 카페 문을 연다. 외부세력 개입, 지역이기주의 등 주민들과 다른 이야기를 하는 언론, 성주에만 안 된다고 하는 지역구 국회의원이 너무 실망스러웠다. 주민들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뭐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하루에 5시간밖에 가게 문을 못 연다. 오전에 회의 가고, 마을 봉사 가느라 문을 못 열고, 오후 2~3시쯤 열어서 8시 되면 닫는다. 평소에 10시까지 문 여는데 8시 이후에 문 열어도 다들 촛불 가시니까 손님도 없다. 문 닫고 나도 촛불 나가는 게 맘 편하다”고 말했다.
‘한반도 사드 배치 반대’, 망토 제작에 대자보까지
“이제 KBS, MBC 안 본다. 봐도 반대로 생각하지”
사드배치철회성주투쟁위로 확대 개편하기 전 사드성주배치반대범군민비상대책위는 성주 사드 배치를 반대했다. 미현 씨는 사드 배치 확정 발표가 나기 하루 전 ‘한반도 어디에도 사드 배치 최적지란 있을 수 없습니다’라고 적힌 망토를 두르고 촛불집회에 나왔다.
그는 “당시에 두 번째 촛불 집회에서도 우리는 한반도 사드 배치 반대였다. 투쟁위의 목소리가 성주 반대였지 우리는 시작부터 한반도 사드 배치를 반대했다”며 “그 시기에 한창 종북이니 빨갱이니 외부세력이니 이런 이야기가 많았다. 투쟁위도 좀 보고, 언론도 제대로 보라고 대자보를 쓰기로 했다”고 말했다.
미현 씨는 친구들과 함께 읍내 곳곳에 한반도 사드 배치를 반대한다는 대자보를 붙였다. 성주만 아니면 된다는 지역이기주의로 보도하는 언론과 투쟁위 지도부에 군민들의 목소리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는 “이번 사드 때문에 제일 이해가 안 가는 건 언론이 왜 저럴까. 왜 군민들 말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을까였다. 더구나 국회의원조차 군민 의견 무시하고 자기 생각대로 말하는데 왜 저럴까”라며 “그래도 놀란 건 성주군민들이다. 하루하루 새로운 걸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옛날에는 KBS, MBC에서 하는 말은 다 믿었다. 지금은 안 본다. 봐도 반대로 생각하지. 헌법 제1조 2항이 대한민국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데, 개뿔”이라며 “언론이고 대통령이고 모두 헌법을 어기는 행동을 하고 있다. 세월호 사건, 밀양 송전탑 사건에 우리가 무지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언론 탓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성주군민들은 이번 투쟁을 계기로 세월호 노란 리본을 달았고, 최근에는 이화여대 사태에도 주목하고 있다.
미현 씨는 “지금이라도 현실을 바로 보게 됐으니까 한편으로는 다행인가? 사드 사건 터지고 나서 새로운 기사들이 보인다. 석탄발전소, 이화여대, 부산 탄저균도 그렇고 나라 꼴이 꼴이 아니구나 느꼈다”며 “처음에는 사드 기사만 공유하다가 점점 이런 기사들도 공유하고 있다. 부당한 요구에 맞서 싸우는 같은 입장이니까. 서로서로 함께 힘을 모아야 하는데, 연대를 그렇게 싫어하는 사람이 많아 또”라고 말했다.
부모님과 내가 살아갈 곳 ‘성주’ 그리고 ‘대한민국’
“내 생활의 불안정보다 대한민국이 불안정”
미현 씨는 지금도 사드 배치 확정 발표가 나던 날을 생각하면 소름이 끼친다고 한다. 발표 이후 몸무게가 4kg나 빠졌다.
그는 “또 소름 끼친다. 그땐 진짜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먼저 들었고, 그날은 너무 정신없어서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며 “성주 발표보다 더 소름 끼친 건, 오후 2시 45분에 배치 부지 전면 재검토, 발표 무기한 연기란 기사가 떴다. 그 기사를 하필 58분에 봤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1분도 안 돼서 발표한다고 다시 기사가 뜨고 성주 확정이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미현 씨는 태어나 지금까지 쭉 성주에 살았다. 2~3년 내 성주에서 결혼할 계획도 있다. 대도시로 나가 결혼 후 삶을 계획할 수도 있지만, 계속 성주에 살 생각이다.
그는 “사실 이걸(사드 철회 투쟁) 시작하게 된 이유는 나보다도 엄마, 아빠 때문이다. 부모님이 어려운 집안에서 그나마 참외 농사짓고 이제는 남부럽지 않게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만큼 이룬 게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크신 것 같다. 옆에서 바라보는 자식의 마음은 엄마, 아빠를 지켜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사드 들어와도 여기에 살 생각이다. 26년을 살았는데 내가 여기를 벗어나 도망가야겠다는 생각은 솔직히 없다”며 “내 상황이 불안정을 느낀다기보다 지금 대한민국의 불안정을 느낀다. 세월호 사건처럼 또 한 번 나라에 당하는 거다. 국가에 당하는 걸 지금 끊지 않으면 앞으로 더 많은 국민이 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해결책은 보이지 않고 계속해서 언론은 ‘제3부지설’에 집중하고 있다. 국방부 직원이 주민과 함께 카페에 다녀가기도 했다. 미현 씨는 국방부 직원 커피값만 받고, 주민에게는 커피값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국방부 직원이 동료들이랑 왔다면서 민심 들으려고 왔다고 하는데, 그때 같이 왔던 언니가 똑 부러지게 말해서 다행이지. 그렇게 다니면서 회유하는 것 같다”며 “투쟁위 내부에서도 길게 가고 싶지 않은 분위기도 일부는 있다고 들었다”고 걱정스런 마음을 털어놨다.
그럼에도 미현 씨가 투쟁을 멈출 수 없는 이유는 이 투쟁을 통해 알게 된 대한민국의 현실 때문이 아닐까.
미현 씨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달라진 게 없다면 사드 배치가 한반도에서 철회될 때까지 이 싸움이 이어질 거라는 거다. 길어지면 힘들어지지 않을까 싶은데, 다들 스스로 자기가 해야 할 싸움을 스스로 찾고 있다. 나도 함께하는 군민들에게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