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방송인 김제동 씨가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반대 집회가 열리는 성주군청을 방문해 ‘헌법학 개론’에 관한 열띤 강의를 하였다. 대본도 없이 헌법조문을 줄줄 꿰고 있는 명강이었다. 명색이 법을 다루면서 밥벌이를 하는 법조인으로서 참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시험에 합격하고 변호사가 된 이후로는 헌법을 들여다본 일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구체적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하여 수많은 하위 법령들을 뒤적이면서도 정작 기본법인 헌법의 정신을 생각해 볼 일은 드물었다.
작년, 대통령 비난 유인물을 제작해 배포한 혐의로 대구에서 구속된 소위 ‘둥글이 사건’으로 대구지방변호사회에서 인권세미나를 연 적이 있었다. 당시 나는 인사말에서 우리가 좀 더 나은 변호사가 되려면 ‘인권’이나 ‘자유’, ‘평등’과 같은 더 큰 개념을 익숙하게 잘 사용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지만, 정작 나부터도 그럴만한 정신적 여유가 없었다.
우리가 헌법에서 관심이 멀어지게 된 것은 우리나라가 민주화된 이후의 일일 것이다. 권위주의 시대의 법정에서는 헌법이 좀 더 자주 인용됐다. 그렇게 본다면 다시 헌법 정신이 논의되고 기본적 인권이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참 불행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영화 ‘변호인’에서 송강호가 ‘국가는 곧 국민입니다’라고 외쳤지만, 국가가 국민으로부터 분리되고 그 사이에 긴장 관계가 생기는 현상이 이 정부 들어서 현저해지고 있다는 생각이다.
나는 그쪽으로는 지식이 없어 ‘사드(THAAD)’가 어떤 무기인지 설명을 들어도 잘 모르겠다. 대통령은 이것이 당장 설치되지 않으면 국민의 안전에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말한다. 어떤 이들은 북한 핵 위협으로부터 크게 효용이 있지도 않다고 말한다. 그 지역 주민들이 입게 되는 피해에 관하여도 서로 말들이 다르다.
문외한으로서 내가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고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이렇다. 북한과 우리 사이의 전쟁 발발 가능성은 사드의 존재 여부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 전면전이 발생할 때는 사드가 있든 없든 쌍방이 거의 괴멸적인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된다는 것, 한반도 평화는 고성능 무기의 경쟁적인 배치가 아니라 대화와 교류에 의하여 유지된다는 것, 사드의 성산포대 배치는 전자파 유무나 인체의 유해성 여부를 떠나서라도 인근 주민들에게 끼치는 피해가 크다는 것 등등이다.
특히, 최근 대통령이 사드를 성주군 내 다른 지역에 설치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언급한 것은 사드 배치 입지 선정이 얼마나 졸속으로 결정되었는가를 잘 드러내는 것이어서 안타깝다. 정부가 사드 배치를 결정하고 지역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행태는 국민의 기본적인 인권을 보호하는 민주국가의 면모는 아니다. 문제의 중대성에 맞추어 마땅히 거쳐야 할 절차적 정당성 없이 급속하게 결정하고 결정한 이후에는 일체의 논의나 반박을 허용하지 않는 권위주의 정부의 모습을 띠고 있는 것이다.
사드 문제에 대하여는 이제라도 원점으로 돌려 배치의 필요성부터 공론화했으면 좋겠다. 매년 북한의 10배가 넘는 국방예산에다 미군까지 주둔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그렇게 급하게 사드를 설치하지 않아도 국민들이 국가 안보의 위험을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폭염이 계속되고 있는 이때 매일 반대 집회를 열고 있는 성주군민들의 고통과 열정에 공감과 지지를 보낸다. 지금 성주군민들의 가장 큰 걱정은 자신들이 겪고 있는 고통이 국민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것일 것이다. 지금 열리는 리우 올림픽에 대한 열광이 그런 결과를 초래하지 않기를 바라며, 우리 가족은 이번 올림픽은 보지 않는 것으로나마 성주군민들의 항의에 동참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