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자들] ㉗ “가부장제 깨부수는 당신 옆의 페미니스트”

"보수텃밭 '경상도'의 가부장제, 대통령의 반여성주의와 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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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12.3 윤석열 내란 사태’로 대한민국은 다시 한 번 민주주의의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무도한 자에게 권력을 내어주었을 때 국가시스템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처절한 경험을 하며, 대한민국은 다시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이야기하고 있다. 21세기의 민주주의는 형형색색, 각양각색의 응원봉처럼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 <뉴스민>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거리에서 응원봉을 든 그들, ‘민주주의자’들을 만나고, 기록한다.

‘가부장제 깨부수는 당신 옆의 페미니스트’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 대구 동성로에서 열린 대구경북여성대회와 윤석열퇴진 대구시국대회에서 단연 눈에 띄는 깃발이었다. ‘경상도’ 지역인 대구에서 자라고, 부산으로 대학을 진학하고 현재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김은해(29) 씨에게 ‘가부장제’와 ‘페미니즘’은 늘상 함께 하는 문제였다. 은해 씨는 12.3 윤석열 내란 사태 이후 지금까지 20번 정도 집회에 참여했다. 은해 씨는 “본가에는 한 두 달에 한 번씩 오다 보니, 대구 집회는 ‘여성의 날’이 처음”이라며 “주로 참여하는 집회는 부산인데, 부산도 토요일마다 집회를 하다가 윤석열이 석방된 후에는 매일 집회를 한다”고 말했다.

3년 차 직장인인 은해 씨는 퇴근시간을 맞추다 보면 집회 시간에 좀 늦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집회 현장으로 향한다. 깃발을 들 수 있을 땐 이 깃발을 든다. 은해 씨를 집회로 이끄는 동력은 바로 ‘죄책감과 부채감’이다. 은해 씨는 “몸은 피곤해도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서, 살기 위해서 나온다”며 “내란 이후 탄핵 선고가 아직까지도 이뤄지지 않았는데, 윤석열 석방이라던가 답답한 이슈들도 중간에 많지 않았나. 그때마다 광장에라도 나와야 해소되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 김은해 씨가 지난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 대구 동성로에서 열린 대구경북여성대회와 윤석열퇴진 대구시국대회에서 들고 나온 깃발

대구와 부산은 같은 ‘경상도’ 지역이다 보니 집회도 비슷한 분위기를 느꼈다. 대표적으로 행진 때 시민들을 향해 지나가는 차량이 불만 가득한 경적을 울린다거나, 탄핵에 찬성하는 것으로 보이는 시민들로부터 욕을 듣는다거나 하는 풍경을 꼽았다.

그러면서 “2030여성들이 남성들 보다 많은 것도 비슷하다”며 “원래 여성 의제에 관심이 많았는데, 페미니즘 리부트가 있었고 또 백래시도 엄청 심해졌다. ‘너 페미냐’라는 질문이 대표적이다. 어느 곳에나 ‘페미’들이 있으니까 저런 질문을 함부로 하지말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깃발의 의미도 덧붙였다.

지금껏 경상도 지역에서 살아온 은해 씨는 윤 정부가 여성가족부 폐지를 대표적 반여성 공약을 제시하고, ‘반여성주의’ 가치를 가진 2030 남성들을 지지 기반으로 당선된 사실도 짚었다. 은해 씨는 “보수텃밭이라는 경상도 지역의 지지기반을 바탕으로 당선된 윤석열 정부도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정부가 아닌가. 반여성주의를 내세웠다”며 “윤석열 퇴진 집회에 여성들이 많은 이유 중 하나도 여성혐오적 행보 때문이 아닐까. 윤석열을 가장 지지하지 않는 연령과 세대가 바로 젊은 여성들”이라고 했다.

광장에 모인 2030 여성들의 목소리가 정치권으로 더 확장되길 바라는 마음도 전했다. 은해 씨는 “여성들이 정치적인 민감도, 감수성이 이전에도 페미니즘 리부트와 맞물려서 높았는데, 이번 탄핵정국을 계기로 더 높아졌다고 생각한다”며 “탄핵 이후 이런 젊은 여성들의 목소리를 정치권에서 잘 받아들여야 한다. 그동안 일부 남성의 목소리가 과대 대표된 경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여성 정치인이 늘어난다거나, 여성 의제를 정치권에서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특히 더이상 혐오와 차별이 정치적으로 무기가 되지 않길 바랐다. 은해 씨는 “여성혐오, 외국인혐오, 지역혐오가 이 정권의 바탕이라고 여겨진다”며 “그런 혐오를 바탕으로 ‘갈라치기’를 하고 세력을 나눠 정치 기반을 형성하는 것을 무너뜨려야 한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그게 없어져야 정치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기본조건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지난 3월 8일 여성의 날, 광장에서 만난 김은해(29) 씨는 ‘가부장제 깨부수는 당신 옆의 페미니스트’라는 깃발을 들었다. 은해 씨는 탄핵정국 속에 지난 1월 만들어진 전국민주일반노조 누구나노조 지회에 가입했다.

은해 씨는 여성 의제 외에도 노동 의제, 성소수자 의제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여성노동자회와 민우회에 후원을 하고, 전국민주일반노조 누구나노조 지회, 부산퀴어행동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광장을 통해 은해 씨의 활동 반경과 관심사도 더 굳건하게 만들었다.

그는 “대학 때 활동을 좀 하기는 했지만 취업준비와 취직을 하고 나서는 후원 정도만 했다. 노동의제는 임금노동자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됐다”며 “그런데 광장이 열리고 나서 조직에도 가입했다. 조직들은 모두 탄핵정국 속 지난 1월에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광장에서 민주주의를 경험한 은해 씨는 광장은 ‘서로의 존재를 눈으로 확인하는 공간’, 민주주의는 ‘서로 목소리를 듣고 설득하는 과정’이라고 각각 정의 내렸다.

“지금 이 사달이 난 이유도 ‘듣지 않아서’ 생긴 문제라고 생각해요. 말할 준비가 된 누구가가 있어야 하고, 들을 준비도 필요해요. 이를 통해 설득하는 과정들로 민주주의가 발전되는 것 아닐까요. 광장은 서로 같은 생각을 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존재도 확인하면서 서로 다른 생각을 확인하는 공간이기도 했던 것 같아요. 광장에서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을 느낄 수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전혀 접점이 없을 거라 생각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거든요. 연대도 하고, 더 나은 민주주의를 위해 토론하고 고민해 나가는 곳이 광장 같아요.”

마지막으로 탄핵선고일이 계속 미뤄지는 상황에 대한 답답함도 호소하면서, 같은 심정일 시민들을 향해 격려의 마음도 잊지 않았다. 은해 씨는 “진짜 답답하다”며 “늦어지니까 탄핵을 반대하는 쪽에서 긍정회로를 돌릴 여지를 주는 것 같아서 문제다. 솔직히 탄핵이 인용될 근거는 차고 넘치지 않나. 이렇게 까지 질질 끌 일인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탄핵은 될 거다. 되어야 한다”며 “지금까지 오는데 많은 분들이 지쳤을 거라 생각한다. 탄핵 이후 우리의 목소리들을 전하고 개혁을 위해 나아갈 수 있도록 모두가 힘을 냈으면 한다. 앞으로의 시간들도 있으니 가늘고 길게, 다들 멈추지 않았으면 한다”고 응원했다.

장은미 기자
jem@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