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053] 도시빈민과 여성농민의 현실을 기후위기로 연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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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기후활동가와 상주의 여성농민은 어떻게 접속하는가

청년 기후활동가 은빈은 동남아시아에 석탄화력발전소를 수출하는 대기업 본사 앞에서 기습 시위를 감행한다. 국내에선 친환경 행보를 선보이며 사회공헌에도 열심히 선전하지만, 정작 해외에는 거리낄 것 없이 이율배반적 행태로 이윤에만 몰두하는 해당 기업의 ‘그린 워싱’을 규탄하기 위해서다. 본사 앞마당에 설치한 기업 로고 구조물을 녹색 수성 페인트로 덧칠하며 항의하던 일행은 곧바로 제지를 당하고, 기물 훼손 및 임직원에게 정신적 피해를 줬다는 명목으로 (이들로선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를 받는다.

은빈과 동료들은 법원 판결에 항소하고, 기나긴 법정 투쟁이 시작된다. 벌금 내기가 아깝다기보다는, 법정 투쟁을 통해 자신들이 시위를 감행한 절박성, 기후위기가 가져올 재앙과 가난한 이들, 3세계 민중들에게 대기업이 얻는 부의 반대급부로 전가될 파괴적 재난을 고발하기 위해서다. 재판은 2심, 3심으로 흘러가고, 팔짱 끼고 판결만 기다릴 게 아닌 이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대기업을 타격할 행동에 나선다. 해당 기업이 구단주인 스포츠 경기장에서 퍼포먼스를 벌이거나, 주장과 근거를 기업 담당 부서에 전달하며 대화를 시도하기도 한다.

기후위기 활동가들이 단지 대기업 상대 여론전에만 나서는 건 아니다. 이들은 기후위기에 가장 취약한 이들을 찾아 연대하며 자신들이 도전하는 과제의 재앙적 상황을 피부로 느낀다. 서울의 대표적 쪽방촌인 동자동과 돈의동 일대의 기후위기로 인한 수난이 뒤이어 소개된다. 고령의 도시 빈민이 내몰린 끝에 마지막으로 정착한 동자동·돈의동은 거듭되는 무더위 및 예상하기 힘든 기후변화로 고단한 삶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중이다. 사계절에 맞춰 대비하던 이들은 변칙적인 기후변화와 통상적인 예측을 벗어난 극단적 상황에 무기력하게 노출될 뿐이다.

도시 빈민의 참담한 삶과 기후위기의 연결고리를 제시한 카메라는 이번엔 경북 상주로 이동한다. 상주에는 여성 농민들의 생산자협동조합 ‘언니네 텃밭’이 있다. 이들은 농촌 소농과 도시민들의 직거래 연결을 위한 ‘꾸러미’ 배달사업 등을 10여 년 넘게 지속해 왔다. 토종 씨앗 보급에도 힘쓰며 쇠락해가는 농촌을 지키려는 공동체 운동에 매진하지만, 기존 농사 지식으로 해결할 수 없는 기후재앙은 이들을 비껴가지 않는다. 열심히 농사일에 힘써봐도 평생 경험한 적 없던 폭우나 가뭄이 번갈아 그들을 괴롭힌다. 애써 수확한 작물이 느닷없는 폭우에 못쓰게 되거나, 불규칙한 비와 서리 탓에 농사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체 원인은 무엇일까 고심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대도시 구석의 쪽방촌, 시골의 작은 텃밭이라는 동떨어진 조건이지만, 그곳 주민들은 전 지구적인 기후위기 속에서 가장 먼저 그 피해를 뒤집어썼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국가는 이들을 보호할 책임은 저버린 채, 대기업의 이윤 축적에만 충실하게 작동할 따름이다. 기후위기 활동가와 농민들은 그런 위선에 항의하는 직접행동을 벌이는 동시에 상호부조로 해결책 실마리를 마련하려 도전한다. 기후활동가들은 쪽방촌을 방문해 기후재난 관련 대책을 모색하고, 돌봄 활동을 벌인다. 여성 농민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로 도시민이 놓치는 지점을 전달하려 애쓴다. 그런 접속의 현장에서 청년 활동가와 중장년 여성 농민은 필연적으로 만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활동가와 민중의 이분법 설정을 극복하려는 시도

독립예술영화에서 스치는 배경으로라도 기후위기를 언급하는 경우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 일로다. 지역의 여름 무더위야 전국적으로도 유명하다지만, 근래 보이는 변칙적 날씨는 단지 예전의 반복과는 분명히 다른 궤적을 그리기에, 다른 사안에는 이견이 많은 세대 사이에도 기후위기가 심각하다는 공감대 형성은 의외로 어렵지 않을 정도다. 농촌과 농민의 붕괴 문제 역시 주로 다큐멘터리 영화를 통해 심심찮게 조명되기 시작했다. 근래 개봉했던 <씨앗의 시간>과 <느티나무 아래> 같은 작품들은 현재 농촌이 처한 위기와 함께 공장화된 농업의 대안으로 전통 종자를 보급하는 농민들의 노력을 소개한다. 기후위기가 심각해질수록 당연한 수순처럼 해당 의제를 다룬 작품도 늘어날 수밖에 없는 셈이다.

<바로 지금 여기> 역시 그런 시대적 반향이란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은 선택이지만, 이 작품의 특출한 점이라면 도시와 농촌을 연결하는, 말로는 쉽고 당위적이지만 정작 실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려운 조합을 기본 축으로 삼았다는 면모다. 환경영화제에서 소개되던 해외 관련 작품에서나 간간이 접하던, 총체적인 접근법이 적용된 사례를 마침내 국내에서도 접하게 된 셈이다. 제한된 조건 아래에서 국내에서 해당 시도는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닌데, 본 작품의 제작진은 시대정신을 포착하고 이를 화면에 구현하고자 분투한 것이다.

언제나 사회적 재앙은 해당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이들에게 먼저 찾아오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 희생양이 이미 기존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이기에 오히려 포착과 조명은 굼뜨기 일쑤다. 근래 시청자들에게 인기를 끈 모 드라마가 강남 명문 사립고교에서 전교 1등을 노린 각축을 다루며 상류층 청소년들이 경쟁을 위해 각성제까지 마다하지 않는 실태를 조명할 땐 큰 관심을 얻지만, 제도교육에서 소외되거나 특성화고 출신 청소년들은 거의 다뤄지지 않는 경우를 보더라도, 사회적 문제를 환기하고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 또한 불평등한 실정이다. <바로 지금 여기>는 그런 모순에 대해 정면으로 파훼하려는 도전인 셈이다.

평범한 시민들에겐 아직 강 건너 불구경처럼 보이는 3세계에 대한 대기업의 수출 성과가 갖는 이면의 진실을 알리고자 분투하는 청년 기후활동가들의 활약은 당장 먹고 살기 바쁜 민중들과 흔히 동떨어진 괴리감으로 드러나곤 한다. 맞는 말이고 바른 주장이지만, 그게 지금 우리 살기 팍팍한 것과 무슨 상관이냐는 퉁명스러운 반응이 적지 않다. 경제성장이 시급한데 남들 다 하는 짓 왜 우리만 스스로 족쇄를 채워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목소리 앞에서 미래세대를 위한 선도적 활동은 금방 위축되기 일쑤다. 그런 답답함을 제작진은 가장 열악한 도시 빈곤의 현장으로 연결해 그들의 활동이 그저 ‘배부른 소리’가 아님을 증명하려 한다.

한여름 무더위로 인한 온열 희생자가 급증하는 현실을 제기하는 이들의 노력, 가족과도 단절된 채 외로운 노후를 보내는 쪽방 주민과의 정서적 유대를 통해 사회적 연대를 통한 돌봄의 가능성까지 조명하며, 기후활동가들은 서울시에 실질적 조치를 요구한다. 그 결과 에어컨 설치 등의 가시적 효과를 이끌지만, 쪽방 건물주는 전기세가 아까워 기껏 달아놓은 에어컨을 작동하지 않는다. 오직 이윤에만 몰두한 자본주의 체제가 개선되지 않고는 단기 대책은 기후위기와 빈곤 문제에 해결책을 낼 수 없다는 싸늘한 경고다.

도시와 농촌을 연결해 풀뿌리 시민들의 연대를 도모하다

여성 농민들은 사라져 가는 농촌을 되살리며 미래를 기약하고자 노력하지만, 그들이 축적한 노동의 지혜로 감당하기 어려운 기후재앙 앞에서 버틸 재간이 없다. 뭔가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과거엔 ‘아스팔트 농사’라 불리던 농민들의 정치적 행동이 소환되지 않을 수 없다. 거리 시위와 국회 토론회 등에서 기후활동가와 농민들의 만남이 필연적으로 개시된다. 세대도 배경도 다르지만, 기후변화가 초래할 파괴적 전망에 대한 공감대를 통해 이들은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그런 교류와 함께 농촌의 미래상에 관한 암울한 전망이 관객에게도 해설된다.

농촌을 지킬 농민은 고령화와 함께 꾸준히 감소 일로다. 귀농·귀촌이 사회적으로 유행하지만, 정작 지방 소멸이 더 가속화되는 현실이다. 과연 국가적으로 농촌의 붕괴를 왜 방관하는지 처음엔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점차 농민들에겐 상상하기도 힘들던 재앙이 수면 아래에서 꿈틀대고 있음을 알아채게 된다.

현재까지는 자영농이 중심인 한국 농업을 자연 감소로 인해 기존 농촌 사회가 붕괴하면 대기업에 넘기면 된다는 정책적 동향이 해설되기 시작한다. 소위 ‘스마트팜’이라 불리는 기술과 자본 투하 농업 경영방식이 그 핵심에 놓인다. 미디어에선 도시 지역 자투리 공간을 활용한 첨단 수경재배 정도로 소개되고 있지만, 요체는 전통 방식의 농업을 공장 형태로 전환하는 데 있다. 대기업이 국내외 막론하고 토지를 매입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고 시장을 독과점하면 먹을거리를 통제해 막대한 이윤을 창출할 수 있다. 해외 초국적 기업의 종자 지배로 엿보듯 파괴적 위력과 지배력이 형성되리란 건 쉽게 예상 가능한 일이다. 찾아보면 이미 이를 겨냥한 정책 전망과 로비가 적지 않게 시도되고 있기도 하다.

고사하도록 방조한 다음, 자신들이 평생을 걸고 지켜온 농촌을 기업의 새로운 이윤 창출 공간으로 넘기려는 배후의 음모를 파악한 농민들이 얌전히 농사만 지을 수 없는 노릇이다. 어차피 기후위기에서 파생된 재해로 제대로 농사짓고 싶어도 어렵다. 그렇게 곳곳에서 만난 활동가와 농민들의 공감이 화면에 소개되고, 연대의 씨앗이 싹트기 시작한다. 농민들은 한국 정부와 기업이 획책하는 농촌의 기업화 사례를 연구하기 위해 해외 여성 농민들을 찾아나선다. 1990년대부터 신자유주의 반대의 상징 중 하나로 활동 중인 ‘비아 캄페시나’ 같은 풀뿌리 국제농민단체에 참가해 교류하는 현장은 흥미로운 관찰 대상이다.

그런 가운데 은빈을 비롯한 활동가들의 소송은 이어진다. 마침내 대법원까지 올라간 재판 결과는 이들이 의도한 목표에 근접하게 ‘9회 말 2사 만루 역전’ 극 형태로 귀결된다. 제작진은 반드시 이 장면을 넣고 싶었을 테다. 극적 효과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영화가 지향하는 목표가 바로 그런 희망의 씨앗을 민들레 홀씨처럼 흩뿌리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미학적 완성도 대신에 사회적 변화에 영감을 주려는 목적의식

영화는 지금 사회운동에 필요한 연결과 희망을 전파하려는 데 선택과 집중을 명확히 취한다. 물론 첫술에 배부를 순 없는 노릇이다. 기후활동가들의 액션에서 출발해 쪽방촌, 경북 상주의 텃밭을 통과하며 대법원으로 향하는 여정은 종종 우리가 여행길에서 겪는 답답함을 닮은 분위기로 정체되곤 한다. 개별 공간은 아직 연결이 헐거워서 별개의 단편을 아교풀로 이어붙인 질감으로 여겨질 때가 발생한다. 너무 많은 내용을 한 번에 소화하려다 보니 생기는 산만함도 적지 않다. 형식 미학적 완성도 위주로만 접근하면 구멍이 제법 되는 결과물이다.

대개 독립예술영화가 처음 공개되는 영화제 등 현장에선 당연히 본 작품의 그런 면모는 단점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영화를 만든 이들의 목표는 작품성을 평가받아 수상 실적을 얻는 것과는 무관하다는 측면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영화적 평가를 작가로서 의식하지 않을 수 없지만, <바로 지금 여기>는 과감히 이 영화가 교육과 토론에 아낌없이 활용되길 바라는 의도를 취한다. 그런 제작 동기를 고려해가며 작품에 대한 평판을 진행하는 게 온당한 태도일 테다.

영화는 올해 6월 극장 개봉을 목표로 달려가는 중이다. 미디어의 관심을 촉발할 빅이슈나 스타 참여와 거리가 한참 동떨어진 작업이기에 믿을 구석은 영화가 구현하려는 운동의 당사자로 설정한, 도시와 농촌의 시민들에게 직접 호소하는 방식을 노릴 수밖에 없다. 요즘 독립예술영화 개봉 홍보와 동떨어진 방법론이지만 실은 원래 사회운동과 결합한 독립영화가 전통적으로 취하던 방식이기도 하다. 그에 따라 ‘100개의 극장’이란 표어를 통해 대부분 독립예술영화가 개봉관 확보에 애를 먹으며 개봉 첫 주에도 두 자릿수 상영관에 머무는 한계를 극복하려 한다. 물론 특별한 묘책은 없다. 그저 영화가 다루는 내용과 밀접한 관객을 찾는 여정을 우직하게 이어가는 길이다.

3월 8일, 그 출발로 영화 속 주요 배경이기도 한 경북 상주에서 시사회가 있었다. 오랜만에 간 상주, 상영이 예정된 대기업 복합상영관에는 지역의 (아마 화면에 출연했을) 농민과 그 가족들, 서울에서 버스를 대여해 내려온 이들이 한곳에 어우러져 간식을 나누던 참이었다. 엄숙한 독립예술영화 시사회의 일반적인 시사회 현장과는 사뭇 다른 질감이던 셈이다. 가족 동반이 많아서 객석 곳곳에 청소년 비중이 적지 않았다. 주변 대화를 들어보니 선생님이 인솔한 학생도 제법 되어 보였다.

영화 상영이 끝난 후, 공동감독 일원인 문정현 감독, 작품에 등장하는 강은빈 기후활동가와 김정열 농민이 참여한 관객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진행자도 대개 영화 관련 전문가가 아니라 작품 내용을 소화할 수 있는 농촌사회학자가 맡았다. 당연히 현장에서 오가는 문답도 여느 행사와 다른 분위기였다. 객석에서 남태령 시위에 참여한 관객이 즉석에서 호명되어 경험담을 술회하는 풍경도 이채로웠다. 그렇게 보기 드문 시사회가 이어졌다.

상영관을 나선 이들은 흩어지지 않고 차량에 나눠 타고 다른 장소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여성 농민들의 텃밭에서 작물을 수확하고, 언니네 텃밭 단체가 추진하는 농업생태학 연구소 시설을 탐방하는 등의 사전 준비된 계획을 수행하기 위해서다. 영화 관람에서 그치지 않고 작품 속 등장인물과 활동을 현실에서 접속하는 계기로 해당 시사회가 활용된 것이다. 그런 색다른 접근법은 상업적 성공이 아니라 이 영화가 사회운동의 유용한 수단으로 쓰임새를 획득하고자 하는 도전의 작은 일부일 테다.

<바로 지금 여기> 외에도 4.3을 다룬 <목소리들>, 대마초에 대한 색다른 접근법 <풀> 같은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들이 해당 작품과 만나야 할 관객들과 직접 연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도를 궁리하는 중이다. 작품이 궁금하거나 우리 동네에서도 시사회를 열어보고픈 이들은 ‘오마이씨네’ 플랫폼(https://www.ohmycine.com/)을 찾아보자.

<작품정보>

바로 지금 여기
All that saves us
2024|한국|다큐멘터리
2025.06. 개봉(예정)|94분|12세 관람가
감독 남태제, 문정현, 김진열
출연 강은빈, 김정열 외
배급 오마이씨네(미디어나무(주))

2024 16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김상목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