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054] 꾸역꾸역 지역주의자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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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5월 정치 커뮤니티 폴티와 뉴스민이 함께 유튜브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비수도권에서 정치 활동을 하는 이들을 섭외해 ‘지역주의자’의 개념을 새롭게 써보자는 게 기획의도였다. 첫번째 패널로 대구의 정의당, 광주의 개혁신당 정치인을 모셨다. 기획부터 촬영, 편집까지 장장 6개월이 걸린 작업이다. 지역주의 담론이 한국사회에서 어떻게 만들어지고 동원됐는지, 우리가 만들 컨텐츠가 기존의 담론을 더욱 공고히 하는 건 아닌지 재고 따지다 보니 수차례 대본이 엎어지고 패널이 바뀌었다. 그래도 올 초 총 8개의 콘텐츠가 무사히 출고됐다.

새로운 공론장을 열고 싶었다. 일당독점의 지역 정치구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든 자원이 수도권으로 수렴되는 대한민국에서 지역 정치인의 역할은 뭔지, ‘보수’와 ‘진보’의 개념이 우리 세대에는 어떻게 통용되고 있는지부터 지방선거 출마에 돈은 얼마나 썼는지, 정당 공천 시스템에는 어떤 허점이 있는지 물었다. 꼭 필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아마도 재미가 없다면 그건 패널이 아닌 기획의 문제일 것이다. 필요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전달하는 능력을 갖고 싶다.

영상은 계속된다. 2월 대구의 진보당 활동가, 광주의 정의당 평론가를 섭외해 촬영을 마쳤다. 비상계엄 이후 기회가 왔음에도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진보정당의 존재감에 대해, 진보당과 정의당의 오래된 감정의 골에 대해서 물었다. 각각의 지역에서 진보정당이 공간을 어떻게 넓혀가고 있는지도 물었다. 시즌2는 시즌1보다 연령대를 낮춰 20대 패널들로 모셨다. 그렇다. 이건 많이 봐주십사 홍보하는 글이다.

▲폴티와 뉴스민이 함께 만드는 ‘새로 쓰는 지역주의자’ 프로그램 장면

폴티는 귀한 커뮤니티다. 비수도권을 기반으로, 특히 대구와 광주를 중심으로 정치에서 정공법이 중요함을 설파하는 곳이다. 함께 정치고전을 읽고 지방자치, 예산, 국제정세를 공부한다. 혐오나 냉소가 아닌 가능성의 영역에서 정치를 말하는 장을 열고, 정치활동가를 선발해 후원한다. 수도권에 비하면 반응이 더디고 여러모로 돈도 안 되는 서비스다. 그럼에도 폴티 최하예 대표는 꾸역꾸역 걸어간다. 약한 아랫단을 단단히 채우는 작업은 고되지만 누군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뉴스민이 폴티와 공동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도 이런 취지에 공감해서다.

냉정한 유튜브 시사 프로그램의 세계에서 뉴스민도 꾸역꾸역 지역을 말하고 있다. 매주 월요일 저녁 6시 30분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뉴스민의 대표 프로그램 ‘강수영의 이바구’는 대구경북의 정치, 사회현안을 평론한다. 모든 시사 프로그램의 입이 용산과 헌법재판소를 향해 있지만, 누군가는 소를 키워야 한다는 일념으로 홍준표의 대구시정과 한국옵티컬하이테크 고공농성을 말한다. 진행자의 구수한 대구 사투리와 덕후 기질 다분한 기자들의 취재기, 다양한 패널 구성은 어디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다. 좋댓구알(좋아요, 댓글, 구독, 알림)은 사랑이다.

봄이 쉽게 오지 않고 있다. 광장의 시간도 길어지고 있다. 다행인 건 광장에 단일한 구호가 아닌 다양한 가치가 등장하기에, 지역뉴스와 광장의 거리도 그다지 멀지 않다는 점이다. 다가올 봄에는 좀 더 적극적으로 지역 콘텐츠를 소비해보는 게 어떨까 제안해본다. 기초의회, 경제, 노동, 교육, 환경 등 어쩌면 더 빠르고 확실하게 변화를 체감할 수 있다. 더 많은 지역주의자가 공론장에 모이길 바란다.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