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효과 / 홍승용

[연속기고] 한반도 사드 배치를 반대한다 (1)

14:39

정부의 성주 사드 배치 결정 발표는 성주주민과 국민을 상대로 한 군사작전인 셈이었다. 군사작전의 생명은 철저한 비밀주의다. 부지 선정 발표 직전까지 성주는 거론조차 되지 않은 채 비밀리에 검토되고 느닷없이 최적지로 선언됐다. 비밀주의가 엄수된 것이다. 돼지를 도축할 때 돼지의 동의를 구하지 않듯이, 적을 공격할 때에도 적과 토론하여 동의를 구하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성주주민들은 일방적 비밀작전의 대상이 됐다. 성주는 전국의 모든 지역을 대표한다. 이러한 의사결정방법이 정당화된다면, 칠곡이든, 음성이든, 군산이든, 평택이든, 포항이든, 그 어느 곳이든 언제라도 제2의 성주가 될 수 있다. 국민을 개, 돼지나 섬멸해야 할 적으로 보지 않는 한, 합당한 의사결정과정을 거치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2016년 7월 21일 서울역에서 열린 성주군민 사드 배치 철회 집회 [사진=워커스 김용욱 기자]
▲2016년 7월 21일 서울역에서 열린 성주군민 사드 배치 철회 집회 [사진=워커스 김용욱 기자]

그동안 정부는 곳곳에서 주민 반대를 무릅쓰고 정책을 밀어붙였는데, 그때마다 가장 애용하는 무기는 반대하는 주민들을 고립시키고 분열시키는 것이었다. 흔히 성공하기도 했다. 사드 문제에서도 정부는 특히, 보수언론을 앞세워 외부 불순세력 개입 운운하며 성주주민들을 고립시키려 했으나 실패했다. 주민들의 내분도 기대했을 테지만 가망이 없어 보인다. 정부에 대한 성주주민들의 압도적 지지성향도 감안했을 테지만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주민들의 배신감만 더 컸고, 정부는 결정 철회로도 회복되기 어려운 심한 정치적 내상을 입었다. 그 효과는 성주에 한정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부담을 떠안으면서도 사드 배치를 밀어붙인 명분, 즉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을 저지해야 한다는 절박성과 엄중성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논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불필요한 논쟁이 아니다. 논쟁의 핵심을 짚어보자. 사드가 수도권 방어에 무용지물이라는 것은 정부도 인정하는 바다.

또, 사드의 요격 능력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도 논란이 분분하다. 반면에 사드의 X밴드 레이더가 미일 미사일방어체제(MD)에 편입되리라는 주장은 신빙성 있다.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 이유가 그것이기도 하다. 사드 배치를 통해 한국은 중국, 러시아, 북한에 맞서 미국, 일본과 함께 새로운 냉전체제를 구축하는 것이다. 냉엄한 안보 문제를 감안하면, 그러한 선택이 불가피할지도 모른다. 정말 불가피하다면 객관적 근거를 바탕으로 그 불가피성을 국민들에게 납득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국민들은 그 불가피성을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사드의 북한 핵 및 미사일 대응력은 미미하고, 한국의 안보에 필요한 수준을 넘어서 중국, 러시아, 미국, 일본의 이해관계와 갈등에 따른 전쟁 부담까지 함께 떠안게 된다는 의견이 더 설득력 있다. 전쟁위험의 증대는, 중국이나 북한의 일차 타격 위협을 받는 성주만 아니라, 전국적 사드 반대의 근거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정부가 이와 관련한 논의를 피하고 막으려 한다면, 미국의 부당한 압력에 정부가 무슨 말 못할 이유 때문에 끌려다니는 것 아닌지 국민들은 합리적으로 의심하게 된다.

일부 보수 인사들은 성주주민들을 향해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라느니, 정부가 고심 끝에 결정한 바니 따라야 하지 않느냐고 협박한다. 자원하지 않은 희생은 부당한 폭력의 제물일 뿐이다. 정부나 지도자들의 말에 순순히 따르는 것이 늘 최선의 길은 아니라는 것을 국민들은 세월호나 메르스 사건에서 생생히 목격하지 않았는가.

이명박 정부가 그처럼 자신 있게 밀어붙인 4대강 사업이나 자원외교의 처량한 성과물도 이미 나올 만큼 나오지 않았는가. 레이더 전자파의 무해성을 증명하기 위해 직접 레이더 앞에 서겠다는 한민구 국방부장관의 장담이나, 제3의 지역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모호한 언질에는 국민들을 민주적 주체로 대우하여 정보를 공유하면서 문제를 정면 돌파하려는 솔직한 자세가 없다.

솔직히 정부는 이렇게 말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의 안보체계는 미국, 일본과 공조하여 북한, 중국, 러시아에 맞서는 냉전구도를 통해 구축할 수밖에 없다. MD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 이에 따르는 천문학적 비용부담도 감수해야 한다. 중국이나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도 각오해야 한다. 그에 따른 막대한 경제적 손실도 피할 수 없다. 우리의 무기체계가 발전할수록 북한의 핵과 미사일도 경쟁적으로 발전할 것이다. 사드 배치는 성주에 한정되지 않을 수도 있다. 아니 필요한 무기는 사드만으로 한정할 수 없다. 다른 보완 무기체계도 필요하면 갖추어야 할 것이다. 고도로 발전한 핵전쟁 체계 속에서 성주는 물론이거니와 안전한 곳은 어디에도 없다. 그래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더 낫지 않은가. 좀 더 솔직히 말해서 냉전구도로 가는 쪽이 국민들의 안보의식도 높이고 정권의 안정에도 보탬이 되지 않겠는가. 대안이 있으면 내놓아 보라.

대안은 이미 있어 왔다. 우선 국민적 합의부터 도출했어야 했다. 충분한 정보공유 없이 정부가 일방적으로 국민 전체의 생사와 관련한 문제를 결정할 때 국론분열은 예정되어 있다. 지금부터라도 정보공유에 근거한 합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 그로써만 정부의 결정은 정당성과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정보공유와 의사결정 과정에서 새로운 냉전구도에 따른 희생을 막자는 국민의 뜻에 의해 사드 배치가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그것이 국민의 뜻이라면 겸허히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럴 경우 북한과 비교가 안 될 만큼 많은 군사예산을 쓰면서도 한국이 북한에 군사적으로 예속되어야 하는가? 그럴 확률은 사드 배치에 따른 전쟁 위험보다 훨씬 낮다고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사드 배치를 거부하면 한미 동맹이 무너지는가? 미국은 한국의 지정학적 이점을 결코 포기하기 어려울 것이다. 사드를 배치하지 않으면 중국이 갑자기 변덕을 부려 북 핵을 지지하고 한국을 적으로 대하게 될까? 미국이나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서도 한국과 우호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국에 도움이 될 것이다.

사드 배치 결정 이전에 이미 존재해 온 이러한 조건은 공멸과 파괴를 예비하는 냉전체제의 긴장과 다른 평화적 긴장관계이며, 한국은 이를 활용해 평화통일의 이정표를 하나씩 세워갈 수 있었을 것이다. ‘통일대박’은 현 정부가 만든 구호 아닌가. 지금도 이 선택지는 살아 있다. 사드 배치 결정을 철회하는 것이 그 첫걸음이다.

성주는 단 몇 주 사이에 정부의 일방적 의사결정에 맞서는 참여민주주의의 산 교육장이 되었을 뿐 아니라, 한반도 사드 배치 반대와 평화운동의 성지가 되었다. 정부가 전혀 기대하지 못했을 사드 효과다. 정부가 결정을 무리하게 밀어붙일수록 그 효과는 전국적으로 커질 뿐이다. 정부가 성주주민들과 국민의 뜻과 생존권을 존중해 사드 배치 결정을 철회한다면, 이는 정부의 패배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한국사회의 성숙함과 민주주의의 위대성, 한반도 냉전체제의 종식과 평화체제로 향한 새 출발을 전 세계에 알리는 세기적 사건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