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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은 고대로부터 연극, 음악, 체육 활동 등 사회 전반의 대중 활동이 펼쳐지는 장으로 기능해 왔다. 세월이 지남에 따라 다양한 변형이 일어났지만, 무대와 객석의 조합으로 구성된다는 기본 골자는 유지해 왔다. 여전히 다양한 장르의 문화 공연이 극장에서 벌어지지만, 현대 사회 시민들은 극장이라 하면 영화관을 우선 떠올리게 마련이다. 영화라는 100여 년 남짓한 짧은 시간을 섭렵한 대중예술은 극장 형태에 최적화된 특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무대는 스크린으로, 객석은 편안하고 인체공학적 배려가 투입되지만 영화가 상영하는 동안은 수동적으로 감금되다시피 하는 구조로 계승되었다.
그런 속성 탓에 현재 OTT 스트리밍 서비스나 유튜브 숏폼과 경쟁하며 그 어느 때보다 위기를 호소하는 영화의 위기는 동시에 극장의 위기와 호환한다. 주머니는 쪼들리고 온라인 환경의 편리함으로 굳이 발품 팔아가며 시간을 내야 하는 시간표 작성과 시간 할애가 비능률적으로 보일 정도다. 하지만 극장이라는 유서 깊은 건축학적 완성 형태에 최적화한 영화란 존재가 과연 극장과 떨어질 수 있을까? 이는 오랜 기간 숙의할 필요가 있는 주제다. 게다가 극장업의 불황은 수도권과 비교해 지역부터 ‘공동화’하게 되리란 것쯤은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개인의 문화 소비로 그칠 게 아니라, 뿌리 깊은 수도권 편중과 지역의 문화적 기반이 붕괴되는 사회학적 고려도 수반되는 문제인 것이다.
이런 위기 국면에 관해서 이것저것 해법을 시도하고 있긴 하다. 지방소멸을 막기 위해 제도적으로 주요 기관을 재배치, 분산하고 특별자금과 개발사업을 배정하는 조치는 곳곳에서 목격된다. ‘한류’가 중요하다며 문화콘텐츠에 관심과 투자를 아끼지 않겠다는 소리도 심심찮게 듣고 보게 된다. 하지만 정작 얼마나 그런 노력이 현실화하는지는 의문이다. 단편 <극장 쪽으로>는 그런 미묘한 긴장을 녹여낸 지역 독립영화의 인장처럼 다가오는 작업이다.
단조로운 일상에 찾아온 의문의 설렘
‘선미’는 1층 로비에서 안내업무를 담당하는 회사원이다. 그는 회사 사택 아파트에서 혼자 살며 집과 회사를 왕복하는 일상을 보낸다. 출퇴근 시간을 제외하면 일은 한가롭고, 낮에는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일쑤다. 동료인 ‘수영’은 다른 직원들과 어울리며 점심도 먹으러 다니지만, 선미는 늘 가는 작은 분식집에서 매일 똑같은 점심을 먹을 뿐이다. 퇴근하면 딱히 가볼 데도 없는 터라 그저 잠자리에 들 때까지 영화를 보는 게 소일거리다.
또다시 동일한 일상이 반복되던 어느 날, 잠깐 자리를 비웠다 돌아온 선미는 자신의 자리에 놓인 낯선 쪽지를 발견한다. 옆에서 꾸벅꾸벅 졸던 동료에게 물어봐도 쪽지의 출처가 묘연하다. 유심히 내용을 살펴보니 “6시, 오오극장에서 만나요. 기다릴게요!”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누군가 자신에게 관심을 가진 걸까? 그녀는 그 쪽지에 기대를 품으며 퇴근 후 극장으로 향한다. 과연 대체 누구일까? 은근한 설렘으로 가슴이 싱숭생숭하다.
평소에 잘 다니지 않던 전철에 몸을 싣고 시내에 도착했다. 지상으로 올라와 찬찬히 살펴본 끝에 마침내 이름 모를 상대와 만날 약속의 장소에 이른다. 조용하고 작은 극장, 아직 시간이 제법 많이 남았다. 너무 일찍 왔나 싶어 극장 로비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한 선미는 차를 주문하고 주변을 돌아보며 대기하지만, 처음 보는 남자가 수상쩍은 문의를 거듭 던지자 불편해하며 자리를 뜬다.
무작정 극장 밖으로 나온 그녀는 직원이 알려준 흡연 장소로 향한다. 그런데 담배가 없다. 골목 안쪽 작은 슈퍼마켓에서 담배를 구매한 다음 근처 구석에서 주변을 살피며 담배를 피우지만, 동네 악동들의 물총 장난에 질겁을 한 나머지 정신없이 달아나다 길을 잃고 만다. 열십자로 구불구불 이어진 비좁은 골목은 마치 미로처럼 선미를 가둬버린다. 아무리 헤매도 아까 있던 장소로 회귀할 뿐이다. 과연 그는 쪽지에 예정된 시간까지 극장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공공기관 지역분산 정책의 결과로 대구에 갇힌 주인공
사전에 맞춰둔 시계 알람이 울리면 졸린 눈을 비비며 간신히 일어난 주인공은 아파트 문 아래에 뚫린 작은 구멍으로 배달되는 우유를 확인한다. 주방으로 향해 토스트 한 쪽, 주스 한 잔으로 아침을 때우고 곧장 직장으로 출근한다. 무료한 일과시간이 흐른다. 늘 당연한 듯 선택한 오무라이스로 점심을 먹는 와중에 귀청을 찢는 비행기 소음이 불편한 감정을 일으킨다. 맨날 저 소리를 들으며 어떻게 사냐는 질문에 식당 사장님은 일상이라 괜찮다며 너스레를 떤다. 하지만 당최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항상 복사한 듯 계속되는 나날은 마치 유배지의 형벌처럼 여겨질 정도다.
주인공은 왜 이런 일상을 이어가는 걸까? 그의 근무처는 ‘한국감정원’이라고 웅장한 로비에 아로새겨져 있다. (지금은 ‘한국부동산원’으로 개칭한) 공공기관이 직장이니 나름대로 안정된 삶의 조건을 갖춘 셈이다. 하지만 선미의 일상은 전혀 만족스럽지도, 충만해 보이지도 않는다. 얼핏 봐서는 이해할 수 없는 풍경이다. 하지만 큼지막하게 표기된 주인공의 직장명이 그가 직면한 상황을 단번에 풀어준다. 정부의 공기업 지방 이전 정책으로 서울에 있던 본사가 대거 사방으로 분산된 조치의 결과물인 것이다. 선미는 졸지에 생면부지의 땅 대구로 귀양살이 온 신세다.
한국부동산원 본사는 대구의 동쪽 경계, 신서혁신도시 한가운데 자리한다. 직장 인근 사택에서 홀로 지내는 주인공이 대구 시내로 바람이라도 쐬어볼까 한 번 마음 먹고 나오기도 막막한 위치다. 한국가스공사를 비롯해 대구로 이전한 공기업 임직원이 가족은 두고 혼자 내려와 기러기 가족이 되는 바람에 주말만 되면 도시가 텅 비고 서울로 상경한다는 이야기가 바로 이런 상황인 것. 적지 않은 대구 시민도 극 중에서 주인공이 대부분 시간을 보내는 신서/각산 부근에 가볼 일 없듯이 선미 또한 고립된 일상에 처해 있다.
주인공은 몸은 대구에 머물지만, 이곳에 별다른 애착이 있을 턱 없다. 노력해서 안정된 직장을 얻었건만, 졸지에 지방으로 강제이동된 처지를 원망하며 얼른 다시 서울로 돌아갈 생각만 가득할 테다. 마음속이 그러니 그가 애착을 갖고 뭘 시도하거나 그럴 상태가 아니다. 그저 지금의 (조금 과장하면) 악몽 같은 나날이 빨리 끝나기만 바랄 따름이다. 향상심을 갖고 탈출을 꿈꾼다면 이직이나 다른 공부라도 도전할 테지만, 그게 말처럼 쉬울 리 없다. 묵묵히 참고 견디며 전환점이 얼른 도래하길 기다릴 수밖에. 수도권 과밀화를 염려한 정책의 필요성은 충분히 타당하지만, 일정하게 희생해야 할 당사자들의 마음을 돌리는 건 별개 문제다.
직장 상황이 암울하다면 취미에 몰두하거나, 퇴근 후 일상을 알차게 보내기라도 해야 보완이 가능할 테다. 그러나 한국의 평균적인 직장인은 ‘저녁이 있는 삶’을 온전히 누리지 못한다. 선미의 경우엔 다른 직장인들 처지보다 좀 더 안정된 루틴 관리는 가능해 보이지만, 정작 그의 마음이 식은 터라 향상심을 발휘하지 못하는 중이다. 마음이 닫혀 있으니 새로운 만남이나 출발도 주도적으로 시도하지 않는다. 호의를 보이는 이가 주변에 있는 눈치이지만, 선미는 별달리 능동태로 반응하지 않는다. 그저 로비의 장식품 마냥, 단정한 복장을 차려입고 기계적 응대를 반복하는 복무 상황처럼 먼 타향에서 고립된 주인공은 전시용 정물 같은 신세다.
극장과 영화는 주인공을 구원할 수 있는가
그런 주인공의 현실을 이해하고 나면, 그가 극장에서 잠깐 담배피러 나왔다 겪게 되는 2시간여의 표류가 자연스럽게 이해될 수밖에 없다. 단잠을 깨우고 머리를 지끈거리게 만드는 비행기 소음의 침공만 해도 짜증 나는데, 오랜만에 새로운 공간에서 고즈넉한 오후를 보낼 참에 불순한 의도를 품은 듯 보이는 낯선 남자가 귀찮게 말을 걸어온다. 일단 이 불청객을 벗어나고자 원래 계획과 달리 무작정 극장 밖으로 나섰다. 놀란 가슴 진정할 겸 불편한 심경을 달랠 겸 담배가 고프다. 혹시 뒤를 밟을지 몰라 멀찌감치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한 번 미지의 세계로 진입한 주인공에겐 뜻하지 않은 상황이 거푸 닥친다. 난데없이 무더위에 물총으로 싸움 겸 놀이에 푹 빠진 동네 아이들이 서로 대결을 멈추고 합세해 선미를 공격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이방인 손님을 환대해도 모자랄 판에 마구 괴롭히니 아무리 아이들이라 해도 놀랍고 무서운 건 당연하다. 일단 도망치는 게 도움이 될 상황인 것이다. 정신없이 일단 악동 무리를 피하는 건 성공했지만, 미로 같은 좁은 골목이 사방으로 난 낯선 주택가에서 미노타우로스의 ‘라비린토스(미궁)’에 갇힌 테세우스처럼 어떻게든 이곳을 벗어나야만 한다.
폭염 속 대구의 오후를 주인공은 아무리 노력해도 탈출 불가능한 미로에서 빙글빙글 돌 듯 소용돌이 속에 휘말린다. 이쯤 되면 살짝 공포영화 느낌이 들 지경으로 선미가 체감할 폐소공포증이 관객에게 전이될 참이다. 어찌어찌 간신히 극장으로 돌아오니 벌써 쨍쨍하던 해가 저물고 어둠이 찾아왔다. 부랴부랴 극장에 귀환하자마자 선미는 누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지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과연 쪽지의 진실은 무엇일까? 하지만 정작 그 비밀의 실체는 주인공의 맥이 탁 풀리게 할 의외의 것이다.
어두컴컴한 극장 안에선 한창 영화가 상영되는 중이다. 늦게 도착한 선미는 더듬더듬 암흑 속을 헤치고 예매한 좌석이 아닌 맨 앞줄 구석에 안착한다. 정면 스크린 대신에 주인공은 듬성듬성 자리를 채운 다른 관객의 동향을 살핀다. 혼자 와 있는 누군가를 포착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관객은 다 혼자 와 있다. 잘 보이지도 않으니 실내에서 쪽지의 주인을 찾기란 난망한 노릇이다. 끝내 선미는 기왕 온 극장에서 온전히 영화를 관람하지 못할 팔자다.
주인공이 비록 운명의 상대를 놓쳤을지언정, 지켜보는 이들의 기대처럼 새로운 인연과 만나거나 혹은 뜻밖의 ‘인생 영화’ 체험을 할 수 있으리라 상상할 관객이 적지 않겠다. 하지만 <극장 쪽으로>는 그런 낭만적인 결말로 찰나의 위안을 주려 하지 않는다. 선미는 영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한 마음의 준비도 여유도 갖추지 못한 상태다. 아무리 명작 영화라도, 출중한 시청각 환경이라도, 관객의 마음가짐과 자세가 영화와 동떨어져 있다면, 극장이 구세주가 될 순 없는 노릇이다. 타향에서 외로운 섬처럼 방황하는 이들에게 극장이 피난처로 온전히 기능하지 못하는 주인공과 같은 경우가 혼자만의 상황은 아님을 암시하는 장면이 관객들에게 극장이 구세주가 될 순 없다는 메시지를 선명히 새겨넣는다.
작품 속 극장의 풍경은 삭막한 도시 속 문화적 감수성이 충만한 공간으로 그려지지만, 그렇다고 <시네마 천국> 속 마을 주민들이 세대를 초월해 함께 웃고 울며 공동의 기억을 형성하던 시골 극장의 아우라를 오롯이 재현하는 것과는 동떨어진다. 뭔가 심드렁한 표정의 극장직원, 주민센터 공무원을 괴롭히는 민원인처럼 진상 행태를 부리는 관객,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 타인의 사생활을 침범하는 이들 사이에 시민 공동체, 문화적 공감대도 묻어나지 않는다. 극장 안에는 모두 외로운 사람들, 옆의 사람보다 낯선 영화에 정신을 팔린 타자들만 군데군데 위치할 뿐이다.
대구 영화 본격 ‘개화’의 순간을 기록한 소품의 매력
<극장 쪽으로>의 주요 배경은 올해 2월로 개관 10주년을 맞은 지역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이다. 한국 독립영화 연말 결산의 장이라 할 서울독립영화제가 주도해 극장을 배경으로 하는 3편의 단편 옴니버스 형태로 출발한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그 중에도 <극장 쪽으로>는 “너와 극장에서”의 도입부를 책임지는 소품으로 극장에서 개봉 기회를 얻어 비교적 많은 이들에게 알려졌다.
오랜 준비 끝에 직전 첫 장편 <수성못>을 공개한 유지영 감독이 연출을 맡았고, 당시 두각을 드러내던 김예은, 문혜인 배우 등이 얼굴을 비췄다. 몇 해가 지나 감독은 두 번째 장편 <나의 피투성이 연인>으로 적지 않은 성과를 거뒀고, 출연 배우들 역시 왕성하게 활동하며 OTT 드라마와 상업영화를 넘나드는 활약 중이다. 독립영화 한계를 넘어선 ‘아웃풋’을 달성한 셈이다.
대구영화판을 경험한 이들이라면, <극장 쪽으로> 구석구석에서 지역 독립영화의 냄새를 듬뿍 맡게 될 테다. 주인공이 스치는 조연과 배경 인물을 유심히 관찰하면, 지역 독립영화 창작자들로 채워져 있음을 포착할 수 있다. 각자의 연대기를 쓰고 있는 주목할 감독들이 직장 로비, 골목 구석, 극장 좌석에서 목격된다. 지역 영화제작 특성상 협업이 보편화한 덕분에 벌어진 현상이다. 조연 출연만 아니라 스태프 롤 역시 그들의 이름으로 채워진다. 극장 개봉작에서 주연급 배우와 촬영감독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분야를 지역 영화인들로 꾸릴 수 있다는 천명 격이다. 여기에 실제 오오극장 관계자들 또한 비범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말 그대로 ‘메소드 연기’를 보인 셈이다.
제작 과정의 흥미로운 구석이 차고 넘치지만, 무엇보다 독립예술영화의 주요 전시장이라 할 극장을 낭만화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 작품의 특색이라 하겠다. 거기에 지역 배경영화로서 그저 풍경으로만 동원하지 않고 지역 사회의 현실 단면을 물과 기름처럼 겉도는 주인공과 대구라는 공간의 부조화를 통해 풀어내려 한다. 전작 <수성못>에서부터 연속하는 고찰의 일환일 테다. 이런 스산한 기운을 극대화하기 위해 한여름 폭염 속 대구라는 시공간의 질감을 과감히 흑백 톤으로 구성한다. 차가운 색감과 명암의 선명한 대비가 계절적 선입견을 독특하게 재구성하며 관객 앞에 펼쳐진다. 단순 표현 대신에 주인공의 심리 상태를 전달하려는 의도다.
그렇게 각각 다른 세 곳(오오극장/이봄시어터/서울아트시네마)의 극장을 무대로 한 3편의 단편 옴니버스 작업이 완성되었다. 다른 2편이 영화 연출자와 애호가의 입장을 형상화한다면, <극장 쪽으로>는 보다 사회적 해석으로 확장 여지와 함께, 수도권에서 제작된 나머지 작업들이 도달할 수 없는 지점을 포착하고 환기하는 데 일정하게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로 몇 해가 지나고 코로나 19라는 천재지변을 겪으며 극장과 영화의 미래는 새로운 불투명성에 직면했다. 위기라 부르는 게 더 직설적인 표현이겠다.
오랜만에 다시 본 영화는 그런 위기의 수면 아래 징후를 예민하게 채집해 제시하고 있었다. 독립예술영화 내에서 분화하는 경향성 가운데 ‘고급문화’로 분류되는 해외 예술영화만 선호되는 우려스러운 상황, 독립예술영화를 상영하는 극장 역시 고급화와 수도권 위주로만 그럭저럭 유지되는 여건, 지역 영화문화 전반에 대한 정부의 몰이해 탓에 현저히 줄어든 공공지원, 스트리밍 서비스와 SNS 쇼츠에 익숙해진 관객의 변심 등이 한꺼번에 두더지 잡기 게임기처럼 튀어나오고 있다.
여기에다 수도권 중심으로만 작동하는 한국 사회의 고질병 가운데 점점 생기를 잃어가는 지역 사회에 대한 근심은 조금도 개선되지 못했다. 그래서 처음 봤을 때보다 한층 더 무겁고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이 영화가 이렇게 묵직한 내용이었나 싶을 만큼.
<작품정보>
너와 극장에서 : 극장 쪽으로
Cinema with you : To the Theater
2017|한국|드라마
2018.06.28. 개봉|36분|12세 관람가
감독/각본/편집 유지영
출연 김예은(선미 역), 문혜인(수영 역), 김판겸(보안남 역), 신숙희(식당주인 역),
팔로(그림남 역), 김창완(극장직원 역), 한종해(극장시비남 역)
조감독 감정원|PD 이승우|촬영/조명 김보라|동시녹음 권민령|음악 구자완
제작/배급 서울독립영화제김상목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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