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퀴어축제 방해 항소심도 대구시 배상 책임 판결···홍준표 배상 책임은 불인정

홍준표 지시는 인정하지만, 고의나 중대한 과실로 보기 힘들다 판단
퀴어축제조직위, "시장 지시 없는 국가폭력? 머리 자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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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보강 : 25.2.19 오후 5시 20분 (판결문 내용 추가)

법원이 항소심에서도 대구퀴어축제를 방해한 대구시의 책임을 인정했다. 다만 원심과 달리 홍준표 시장의 책임은 인정하지 않고 기각했다. 앞서 원심에서는 퀴어축제 방해에 대한 홍 시장의 중과실이 인정된다며 대구시와 함께 원고인 대구퀴어문화축제 조직위에 7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관련기사=퀴어축제 방해한 대구시·홍준표, 축제 조직위에 700만 원 배상 판결(‘24.5.24.)]

19일 오후 2시 5분 대구지방법원 민사8-2부(재판장 조세진)는 조직위가 대구시와 홍 시장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소송 항소심에서 홍 시장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원심판결을 취소했다. 다만 대구시의 배상 책임은 그대로 인정해, 대구시가 조직위에 7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홍 시장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점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았다. 재판 과정에서 홍 시장 측은 홍 시장이 퀴어축제를 방해하라고 지시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며 홍 시장의 책임에 선을 긋는 취지로 변론한 바 있다.

조직위에 따르면 원심에서 홍 시장의 중과실을 인정한 점에 대해 홍 시장 측은 “피고 홍준표가 대구시 공무원에게 퀴어축제를 방해하라고 지시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 “피고 홍준표는 현장에서 무대 차량이 반월당네거리로 진입하는 것을 저지하라고 공무원에게 지시한 사실도 없다”, “홍준표가 페이스북 등에 도로 위에서 퀴어축제 개최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 하더라도 이를 집회 방해 지시의 근거로 인정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판결 후 확인한 판결문에 따르면 재판부는 홍 시장의 지시나 관여 하에 이뤄진 것으로 판단해, 홍 시장의 주장을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홍 시장이 퀴어 축제에 대해 ‘도로점거 불법은 용납치 않겠다’는 취지로 언급한 점, 축제 방해 현장에 홍 시장이 직접 와서 발언한 점 등을 볼 때 홍 시장의 관여나 지시 하에 방해가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는 설명이다.

다만 재판부는 대중교통전용지구 집회와 관련해 부스를 설치하는 행위와 관련해 도로점용허가 여부는 헌법, 집시법, 도로법 등 관련 법규정의 유기적 해석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라, 홍 시장이 무대와 부스 설치를 위한 차량 진입을 저지하는 조치가 도로관리청의 관리권을 넘어선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 때문에 홍 시장의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있음을 전제로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19일 대구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가 퀴어축제 방해 관련 홍 시장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판결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조직위는 판결 직후 대구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홍 시장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판결에 “머리 자르기”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배진교 대구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은 “시장 지시도 없이 이런 국가폭력이 대구시 한복판에서 벌어졌다는 말인가. 머리 자르기”라며 “대법원에서 다시 다툴 것이다. 그간 퀴어축제를 향한 많은 폭력과 행정 차별이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 대구퀴어문화축제는 꺾이지 않고 행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한희 변호사(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는 “대구시 잘못은 원심과 동일하게 인정됐다. 대구시의 책임은 당연히 최고 책임자인 시장의 책임인데 시장이 아니고 누구에게 책임이 있다는 말인가”라며 “시장 홍준표가 아닌 개인 홍준표의 책임도 있다. 지금 판결대로라면 앞으로 법적 근거도 없이 공무원을 통해 집회 자유를 침해하도록 하면 최고책임자 시장의 개인 책임은 묻지 못하는 것이다. 상식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강금수 대구참여연대 사무처장은 “대구참여연대가 홍 시장의 집회 방해 등에 대해 고발했으나 수사기관은 홍 시장 소환조사 한번 하지 않았다. 이 또한 집회 시위 자유를 보장해야 할 국가기관이 그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오은지 성소수자부모모임 운영위원은 “사랑과 연대의 기운이 가득한 축제이지만 공무원은 도로를 막아서고 마치 우리가 불법을 저지르는 사람처럼 몰아세웠다”며 “성소수자에게 퀴어축제는 살아갈 용기와 희망을 주는 곳이다. 우리가 대구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 결정하는 싸움이다. 우리 존재를 외치는 싸움을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조직위는 올해 대구퀴어축제 일정이나 장소는 아직 확정하지 않은 상황이다.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